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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해변, 호스텔 루프탑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by 레이지마마


와이키키 해변에 있는 호스텔 루프탑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나는 40대고, 이 호스텔 여행객들의 평균 나이는 20대다.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를 찾아 밤마다 파티를 벌이는 청년들 사이에서 살짝 고립감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가 말을 건네면 길게 말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다. 요즘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럼 호텔에 가지 왜 호스텔에 갔냐?


20대의 기억 속으로 한 번쯤 돌아가 보고 싶어서...


배낭을 메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시절. 그때는 프라이버시가 특별히 필요하지도 않았고, 침대가 삐걱대고 시트에서 냄새가 나도, 화장실에 곰팡이가 잔뜩 피었어도 불만이 없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낯선 세계에 섞이고 싶은 열정이 충만했다. 더듬거리는 영어로도 친구가 되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며, 새벽마다 농장에서 일을 하고, 그날 벌어 온 돈과 농작물로 요리를 해서 매일 저녁 파티를 했다.


25년 전 나와 비슷한 에너지를 품은 젊은이들을 이제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본다. 언젠가부터 말만 꺼냈다 하면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내가 더 잘 아는 사람처럼 구는 걸 깨닫고 되도록이면 말을 아낀다.


내가 머무는 방은 2층 침대가 두 개 있는 4인용 도미토리다. 나는 그중 한 침대의 1층을 차지했는데, 아무런 배려 없이 쿵쾅대며 2층을 오르내리는 아가씨 덕분에 자다가 깜짝 놀라 몇 번씩 깼다. 새벽에 더웠는지 누가 에어컨을 틀었는데 그 소리가 천둥 같아서 (그리고 너무 추워서) 또 깼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었다. 다시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결국은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8시 45분이다. 다들 나가고 없다.


두 개의 도미토리에 묵는 여덟 명의 여행객들이 화장실 한 개와 샤워실 한 개를 나눠쓴다. 다들 부지런하고 바빠서, 내가 어슬렁 돌아다니는 시간에는 아무도 샤워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천정에 고정된 샤워기는 낡고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따뜻한 물이 콸콸 잘 나왔다. 머리를 감고 나니 눈에 잘 띄지 않는 얇고 고운 금발 머리카락들 사이에 까맣고 굵은 내 머리카락이 하수구에 잔뜩 쌓여 있다. 일곱 명의 금발 머리카락이 서로 섞여 익명성의 혜택을 누리며 치워지지 않는 사이, 빼도 박도 못하게 나를 가리키는 까만 머리카락.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며 휴지로 모두의 머리카락 뭉치를 집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도미토리의 20대 친구들은 인사할 때 입꼬리만 의례적으로 살짝 올렸다가 금세 차가운 표정을 짓는다. 내가 있는데도 독일어로만 얘기한다. 살짝 얄미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른이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스스로를 타이르며 한국에서 가져온 동물 마스크 팩을 하나씩 돌렸다. 작은 선물 하나에 다들 너무나 기뻐하며 친절한 미소를 건네온다. 계집애들…



벌써 3년 전, 5월

하와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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