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규범의 무게

숨 쉴 틈 없는 사회

by 두둥실


나는 지금까지 7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그 중에는 흔히 잘 사는 나라로 불리는 선진국도 있었고, 저개발 국가로 분류되는 곳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선진국보다 저개발 국가에서의 여행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물가와 같은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편안함 때문이다. 소위 선진국에 있을 때는 늘 눈치를 보게 된다. 사회가 더 고도화된 만큼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지고, 단순히 법을 따르는 문제를 넘어 에티켓과 매너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무언의 규범이 존재한다. 그 규범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다가와, 마치 언제나 나의 행동을 누군가 평가하는 듯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반면 저개발 국가에 머물 때는 그 복잡한 규범의 그물망에서 벗어난다. 그곳에서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만 어긋나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은 차이들은 대체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지고, 사소한 실수는 곧잘 웃음으로 넘겨진다. 물론 불편한 점도 많다. 행정은 느리고, 교통은 엉망이며, 때로는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느슨한 공기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누군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도 그것이 곧 집단적 비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 아닌 원칙들은 경제적·문화적 고도화가 이루어질수록 더 촘촘하고 복잡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회가 정교해질수록 사람들의 생활은 더 긴밀하게 얽히고,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규범은 필연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이 규범들은 동시에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동남아의 많은 관광지들에는 유럽인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느슨한 자유’를 만끽하고자 한다. 흥미로운 점은,그 중 일부는 그 자유를 과용해 지나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억눌린 규범에서 잠시 해방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선을 넘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떨까. 오늘날 한국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당연함’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법이나 제도와 같은 공식 규칙이 아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양심에만 맡겨진 느슨한 권고도 아니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말들이, 몇 번의 입소문과 SNS의 증폭을 거쳐 금세 ‘지켜야 할 것’이 된다. 결혼식에는 절대 흰 옷을 입으면 안 된다,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갈 때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식당에서는 무조건 1인 1메뉴를 시켜야 한다, 웨딩 촬영을 할 때 스태프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규범들은 법전에 적히지도 않았고, 누구도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그것들은 강력한 압박이 되어 사람들의 행동을 조율한다.


물론 이런 규범들은 애초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겼을 것이다. 공연장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보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는 규칙이 필요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하나의 상황적 배려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절대적인 원칙인 듯 순식간에 변하고, 경우를 막론하고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으로 굳어져 버린다는 데 있다.


어느 식당에서 목격한 일이 있다. 제주도의 한 작은 식당에 노부부와 아들 부부가 들어왔다. 아마 아들 부부는 미리 제주도에 와 있었고, 부모님은 늦게 합류해 공항에서 만나 모시고 온 듯했다. 이미 저녁을 먹은 아들 내외는 따로 음식을 시키지 않고, 부모님만 메뉴를 주문해 드셨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맛있다고 하시며 아들에게 “너도 맛 좀 보라”며 수저를 더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장이 화를 냈다. “원래 1인 1메뉴인데, 그래도 두 분만 시켜서 드시는 걸 눈감아 드렸는데 수저까지 달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얼굴을 붉혔고, 아들은 불필요한 언쟁을 피하려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났다. 그 장면은 옆에서 지켜보던 나까지도 무안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돈이 없어서 네 사람이 둘이 먹을 음식을 나눠 먹으려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 상황은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할 일일까?


이처럼 한국 사회의 규범 아닌 규범들은, 애초의 취지를 넘어 일상적 상황을 불필요하게 긴장시키고 관계를 서먹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 규범을 어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행동하고, 혹여 잘못 어기면 불편한 시선이나 노골적인 지적을 받는다. 결국 이런 환경은 단순한 생활 규칙의 차원을 넘어, 안 그래도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 쉴 자리를 조금씩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이런 현상을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이라 불렀다. 사회적 사실은 법이나 제도처럼 명문화된 것이 아니더라도, 개인 외부에서 작용해 거부하기 어려운 힘을 발휘하는 집단적 규범을 뜻한다. 한국 사회의 규범들이 바로 그렇다. 합리적 토론이나 제도적 합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 아니지만,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렇게 해’라는 말만으로도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다. 문제는 이 규범들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고, 제도적으로 확립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SNS와 대중의 불안심리가 빚어낸 즉흥적이고 가변적인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불투명하고 압박적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규범들이 단순히 개인의 행동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이미 충분히 팍팍한 현실에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짐을 얹는다. 직장에서의 경쟁, 경제적 불안, 불확실한 미래만으로도 벅찬 삶 속에서, 사람들은 매 순간 "이건 하면 안 되지 않나?"라는 자기검열에 시달린다. 그렇게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는 사람들을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때로는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하게 한다. 규범 아닌 규범이 쌓아 올린 압박이 결국은 우리의 관계를 어둡게 물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것이 사회 갈등과 혐오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무관하지 않으며 반드시 성찰해야 할 문제다.


푸코는 현대 사회를 ‘감시와 규율의 사회’라 불렀다. 그는 과거 감옥이나 학교, 병원 같은 제도가 사람들을 규율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 사람들의 행동을 교묘하게 통제한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만들어내는 규범들은 푸코가 말한 ‘내면화된 감시’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법의 처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해 스스로를 검열한다. 결혼식에서 흰 옷을 입지 않는 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물론 예절과 규범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문제는 그 밀도와 성격이다. 오늘날 한국의 규범들은 안정된 합의보다는 불안과 경쟁, 그리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규범을 더욱 불투명하고 무겁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압박감이 사람들의 삶에서 ‘숨 쉴 자리’를 점점 더 빼앗고 있다.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단순히 착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스로 분별력을 갖추고, 원칙과 융통성 사이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현명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일 것이다. 공자의 ‘중용(中庸)’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규칙에 매이지도 않고, 무질서로 흐르지도 않는 길. 오늘날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가 아닐까. 규범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규범이 필요할 때는 지키되, 그것이 불필요하게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스스로를 옥죄지 않도록, 각자의 지혜와 판단을 발휘해야 한다.


여행을 다니며 나는 종종, 사회가 반드시 규범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동남아의 어느 시장 골목에서,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 광장에서, 혹은 남미의 낡은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사람들은, 놀랍도록 따뜻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한국에서 마주친 그 누구보다 밝고 순수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마다 힘든 노동의 흔적은 깊게 새겨져 있었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편안함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경제적으로는 분명 더 가난했지만, 오히려 더 가볍고 행복해 보였다. 그곳에서는 법도 제도도 느슨했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규범의 빈자리가 반드시 혼란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빈자리가 인간다운 여유와 자율성을 낳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 내일이면 또 다른 ‘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규범이 정말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와 타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가, 아니면 그저 불필요한 압박일 뿐인가? 현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를 단속하되, 불필요한 규범의 속박에는 휘둘리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란 규범의 부재가 아니라, 규범 속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규범을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규범을 덜어내는 용기다. 현실의 무게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삶에, 보이지 않는 규범이라는 짐까지 얹는 것은 결국 모두를 더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숨 쉴 틈 없는 삶 속에서,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예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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