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ne 2의 사유

사라져가는 깊은 생각에 대하여

by 두둥실

러닝이 유행이다. 큰돈이 들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며 몸 이곳저곳이 삐걱거리는 걸 느끼는 나도 최근 조금씩 달리기를 하고 있다. 예전에 오래 자전거 여행을 하며 무릎을 혹사한 탓에 오래 뛰지는 못한다. 고작 1.5~2km 정도 달리는 수준이지만, 뛰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컨디션은 확연히 다르다. 짧은 거리지만 어떻게 하면 무릎에 무리를 덜 주고, 또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인 운동이 될지 찾다 보니, 문득 세상의 많은 일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몸을 단련할 때 “Zone”이라는 말을 듣는다. 특히 Zone 2라는 말은 요즘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이들에게 익숙하다. 이는 심박수 기준으로 설정된 하나의 구간으로, 숨은 조금 가쁘지만 대화가 가능하고, 힘겹지 않게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운동 강도를 뜻한다. Zone 2는 유산소 지구력을 기르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히 근육을 키우거나 순간적으로 기록을 단축하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몸의 기초 체력과 장기적인 건강을 지켜주는 영역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이 강도를 외면하거나 귀찮아하지만, 의도적으로 Zone 2 운동을 생활에 포함시킬 때 몸은 눈에 띄게 건강해진다.


사실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이와 비슷한 구분이 가능하지 않을까?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를 두 가지 체계로 나누었다. 하나는 빠르고 직관적인 System 1, 다른 하나는 느리고 분석적인 System 2다. System 1은 우리가 매일 의지하는 기본적 모드다.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거나, 길에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몸을 피하는 순간적 반응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System 2는 더딘 계산과 숙고가 필요할 때 작동한다. 세금을 계산하거나, 논리적 추론을 전개하거나, 새로운 개념을 배우는 순간에 우리는 System 2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System 2를 꺼린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뇌는 신체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기관인데, System 2는 그 에너지 소모를 극대화한다.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System 1에 머무르려 하고, System 2를 작동시키는 일은 마치 귀찮은 숙제를 미루듯 회피한다. 결국 우리의 정신은 ‘Zone 1’에 가까운 상태에 오래 머물고, ‘Zone 2’는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불편한 영역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운동의 Zone 2와 사고의 System 2가 겹쳐진다. 몸도 마음도, 본능은 귀찮은 영역을 피해가려 한다. 그러나 피한 만큼 우리의 건강, 나아가 삶의 품질은 서서히 깎여나간다. 몸이 Zone 2 운동을 통해 근본적인 건강을 다지듯, 마음 또한 System 2의 사유를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한다. Zone 2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당장은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심장과 혈관이 약해지고 노화가 빨라지듯, System 2의 사고를 게을리하면 우리의 정신은 얕아지고,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단순화되며, 쉽게 조작당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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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가상의 System 3를 상정하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분석적·논리적 사고를 넘어서는 사유의 영역이다. System 2가 수학 문제를 풀고 확률을 따지는 차원이라면, System 3는 존재 그 자체를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묻고,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곱씹는 차원이다. 다시 말해, 사유와 철학의 영역이다.


System 3는 철학자나 사상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 아이를 키우는 부모, 하루하루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 모두가 이 영역에 접근할 수 있다. 그것은 특정한 학문적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세계를 깊게 바라보려는 태도의 문제다. 왜 우리는 바쁘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나와 타인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시험 문제의 정답처럼 명확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우리를 더 깊고 넓은 차원으로 이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System 3의 사유를 점점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빠른 정보, 즉각적인 반응, 효율과 실용을 숭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속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뉴스, 속도만을 추구하는 노동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점점 생각을 멈추게 된다. System 1의 자동반응만으로도 하루를 버티는 데 아무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때때로 System 2의 논리적 사고가 요구되더라도, 그것은 업무의 효율을 위한 계산이나 전략적 판단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삶의 근본을 묻는 System 3의 사유는 “쓸모없는 사치”로 치부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의 몸은 왜 Zone 2 운동을 요구하는가? 그것이 없으면 단기적으로는 문제없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약화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 또한 다르지 않다. System 3의 사유가 사라진 사회는 결국 정신적 근육이 위축되고, 삶의 의미를 잃으며, 허무와 불안 속에서 흔들리게 된다.


철학적 사유는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토양과 같다. 토양이 부실하면 어떤 꽃도 오래 피지 못하듯, 사유가 사라진 삶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내면에서부터 부식되어간다. 현대인이 불안과 우울, 공허에 시달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System 3의 결핍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용기를 내어 이 귀찮고 느리고 무겁게만 느껴지는 Zone 2, 나아가 Zone 3의 사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철학자의 책을 읽고 위대한 사상을 논하는 일이 아니어도 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 것,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내가 한 선택은 정말 내 것이었는가?” 그 질문 하나가 이미 System 3의 문을 두드리는 행위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 Zone 2 운동을 요구하듯, 마음 또한 건강하기 위해 System 2와 System 3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깊은 생각이 사라진 사회는 결국 방향을 잃고, 외부의 자극에 끌려다니는 군중으로 전락한다. 반대로 각자가 작은 사유의 시간을 확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를 주체로 세울 수 있다.


사유는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 오늘 하루에도 우리는 System 1의 자동적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System 2의 분석을 시도하고, 더 나아가 System 3의 사유로 향할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의 삶은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우리의 정신적 심장을 강하게 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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