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엥카레. 페렐만. 윗트니 트릭. 고차원
한때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안에 구멍이 전혀 없는 3차원 공간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구와 같은 것일까?” 단순해 보이지만, 이 질문은 인류가 한 세기 동안 붙잡고 씨름한 퍼즐이 되었다.
이름하여 푸앵카레 추측 — “모든 단일 연결된 3차원 공간은 결국 3차원 구와 위상적으로 같다.”수학자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증명하려 애썼지만, 100년 가까이 아무도 완벽히 풀지 못했다. 이 문제는 결국 ‘밀레니엄 7대 난제’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었고, 그중 유일하게 완전히 풀린 문제가 되었다. 문제를 푼 사람은 러시아의 괴짜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
그는 홀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세기의 난제를 풀었다. 그의 논문은 인터넷에 조용히 업로드되었고, 전 세계 수학자들이 그것을 ‘이해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마치 한 사람이 혼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든 셈이었다. 필즈상과 백만 달러의 상금이 그를 기다렸지만, 페렐만은 둘 다 거절했다. “나는 이미 필요한 걸 가졌습니다.”라고 말하고 고양이와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냉장고에는 사과 몇 개와 말린 빵이 전부였다고 한다. 수학사에서 보기 드문 ‘천재의 퇴장’이었다.
그가 완성한 증명은 리처드 해밀턴의 리치 플로우(Ricci flow) 이론을 발전시킨 결과였다. 하지만 푸앵카레 추측의 긴 역사 속에는 이미 여러 선구자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스티븐 스마일(Stephen Smale). 그는 1960년대에 “5차원 이상의 공간에서는 푸앵카레 추측이 성립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차원을 높이면 문제가 오히려 단순해진다는 뜻이었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고차원에서는 공간이 넓어져, 얽힌 매듭을 푸는 여유가 생긴다. 3차원에서는 두 개의 끈이 서로 엉키면 손으로 풀 수 없지만, 5차원에서는 그냥 “살짝 들어 올리면” 된다.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은 그걸 윗트니 트릭(Whitney Trick) 이라고 부른다. 한 차원만 올라가도, 복잡하게 꼬였던 문제들이 마치 다른 규칙의 세계로 옮겨간 듯 단순해진다.
이건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종종 3차원 안에서, 아니 어쩌면 2차원 평면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마치 개미 한 마리가 바닥 위 나뭇가지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이 선은 왜 이렇게 꼬여 있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처럼. 하지만 한 발 위에서 보면 안다. 그것은 단지 그림자일 뿐이며, 나뭇가지는 3차원의 공간 아래 위, 좌우로 곧게 뻗어 있다. 이해란 종종 ‘차원을 바꾸는 것’이다.
수학자 스마일이 고차원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문제의 성격이 달라졌듯, 우리도 가끔은 ‘위에서 보기’를 연습해야 한다. 화가는 캔버스를 한 발짝 물러서서 보고, 바둑의 고수는 돌 한 알이 아니라 판 전체의 흐름을 읽는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언제나 1차원적인 직선 위에서 헤맨다. (이건 거의 모든 인간이 반복해서 입증한 정리다.)
결국 차원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스마일은 차원을 높여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페렐만은 같은 문제를 끝내 풀기 위해 전혀 다른 언어로 사고했다. 한 사람은 ‘수학적 차원’을 바꾸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유의 차원’을 바꾸었다.
삶도 그렇다. 길이 너무 복잡해 보일 때는, 아마도 우리가 너무 평면적인 차원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보이지 않는 길을 열심히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시선을 들어 다른 방향에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문제의 복잡함이 꼭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세상은 때로 놀랍도록 단순하다. 다만 그 단순함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