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게 힘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by 두둥실


어떤 지혜로운 말도 세계의 모든 모습을 담지는 못한다. 짧고 멋진 아포리즘은 진리의 한 조각을 비추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모순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어쩌면 그 말들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확장할 때 비로소 진정한 답에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서로 정반대이면서도 모두 옳은 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는 게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 두 문장은 완전히 반대의 방향을 가리키지만, 둘 다 진실을 품고 있다. 진실은 하나의 선이 아니라, 언제나 상황의 곡선 위에 놓인다. 그래서 한국어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FOMO — Fear of Missing Out — 라는 말이 흔하다. 한때 ‘벼락거지’가 유행하더니, 이제는 또 다른 단어가 우리의 불안을 자극한다. 이런 시대에는 “아는 게 힘이다”가 더 맞는 말처럼 들린다. 주식이 오른다는데 나만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다. 더 좋은 종목, 더 좋은 시기를 알고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친구가 이미 일찍 투자해 수익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알았다면 벌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이때 ‘아는 것’은 분명 힘이다.

하지만 동시에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누가 얼마를 벌었는지 아예 모른다면 불안할 이유도 없다. 비교할 대상이 사라지면 마음은 고요해진다. 문제는 세상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말 ‘모른 채’ 살려면 뉴스도, 사람도 멀리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은 주로 나쁜 일에 쓰인다. 세상에 일어나는 불행을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의 하루는 버거워질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 세상의 부조리, 멀리서 일어나는 재난까지 하나하나 알고 나면 마음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사람은 본능적으로 일정 부분을 ‘모른 척’하며 산다. 그 무지 덕분에 하루를 버티고, 그 둔감함 덕분에 웃을 수 있다. 모든 진실을 껴안는 것은 인간의 구조상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무지는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다.


이처럼 앎의 영역은 인간의 한계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알베르 카뮈는 “나는 이 세계를 알 수 없으니, 나의 유일한 진실은 바로 그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 세계의 근본적인 부조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가 완벽한 진실을 '다 안다'는 환상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 즉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 불가능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평온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은 언제나 연쇄적인 결과를 낳는다. 나에게는 평온이지만, 타인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이 이기적인 줄 모른다. 그것이 진짜 이기심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이미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앎’은 의식의 시작이다.

자신이 이기적인 걸 모르면, 어떤 행동을 해도 스스로의 입장과 상황에만 더 집중한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세상에 불균형을 만들어도, 그 결과를 보지 못한 채 ‘나는 나대로 산다’며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는 것은, 비로소 자신의 무게를 자각한다는 뜻이다. 그때부터는 같은 행동이라도 망설임이 생기고, 그 망설임 속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비슷한 예로, 무지한 낙관주의가 있다. 세상의 고통을 모르면 모든 게 다 괜찮아 보이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착각 속에 머문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 위에 내 평안이 놓여 있음을 알게 되면,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이 곧 책임의 씨앗이다. 모르고 있을 때는 평화롭지만, 알고 난 뒤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앎은 불편함을 낳지만, 그 불편함이 인간을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든다.


최재천 박사는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엔 막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깊어진다. 내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이기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더라도 스스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는 곧 타인을 이해하는 문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이해할 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을 이해할 때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아는 만큼 우리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모른 채 미워하거나 막연히 동경하는 세상은 환상 속에 머물 뿐이다. 어두운 모습이든 아름다운 모습이든,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면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진실은 알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된다. 아는 것이 세상을 확장시킨다면, 모르는 것은 그 확장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모르는 게 약이다’는 말은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지혜의 한 형태다.


결국 삶은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모르는 게 좋은가’를 구분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욕망, 내게 오지 않은 기회와 운, 그런 것들은 몰라도 된다. 그것들은 어차피 내 삶의 바깥에서 흘러가는 일들이다. 중요한 건 나 자신과 내 곁의 사람,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는 일이다.

그 앎은 힘이자, 동시에 사랑이며, 때로는 약이 된다.


좋은 삶이라는 건,

끝없이 알고자 하는 노력과 몰라도 되는 일을 모를 수 있는 운이 동시에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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