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날의 아수라장
만약 내일 아침, 국회에서 ‘자기소개 시 직업 언급 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 법의 골자는 간단하다.
“저는 삼성전자에 다닙니다”, “저는 의사입니다”, “저는 7급 공무원입니다” 같은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즉시 체포되어 징역 1년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명함은 마약류로 분류되어 전량 소각된다. 또한 사람을 부를때 김박사, 박부장, 이사장 같은 타이틀을 모두 못쓰게 한다면?
상상해 본다. 광화문의 점심시간, 소개팅 자리.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3대 로펌의 변호사다.
예전 같으면 명함 한 장을 테이블 위에 툭 던지며 게임을 끝냈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을 설명할 단어를 찾는다.
“어… 안녕하세요. 저는… 남의 싸움을 대신 해주는 걸 좋아하고요. 논리적으로 말대꾸하는 걸 즐깁니다. 그리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남자입니다.”
맞은편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네. 저는… 남의 몸을 칼로 째는 걸 잘하고요(외과 의사), 피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 여자입니다.”
소개팅은 엉망이 된다. 사람들은 이제 상대방의 연봉이나 안정성을 가늠할 척도가 사라져 혼란에 빠진다. “저는 건물주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남자는 결국 “저는… 숨만 쉬어도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구축한 운 좋은 놈입니다”라고 둘러대다 사기꾼으로 오해받아 차인다.
뉴스에서는 대기업 임원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고 울부짖는 모습이 보도된다.
“내가 상무가 아니라니! 내가 그냥 ‘배 나온 김 씨’라니!” 반면, 직업이 없거나 변변찮았던 사람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를 친다.
“저는 비 오는 날 파전 굽는 냄새를 기막히게 맡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루에 12시간을 자도 허리가 안 아픈 튼튼한 척추의 소유자입니다.”
세상은 잠시 거대한 혼란에 빠지겠지만, 곧이어 기묘한 평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제 ‘명함’이라는 빳빳한 종이 뒤에 숨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 결국 남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 말투, 눈빛, 그리고 냄새뿐일 테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앞선 상상은 내 찌질한 투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내세울 만한 직함 없이 살았다. 남들이 명함 지갑을 채울 때 나는 배낭을 채웠고, 남들이 '대리', '과장'으로 불릴 때 나는 그저 '저기요', '아저씨', 혹은 이름 뒤에 어색하게 붙은 '씨'로 불렸다.
재미있는 건, ‘김’이라는 흔해빠진 성 뒤에 마땅한 직함이 없다는 사실이 나보다 오히려 타인을 더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텅 빈 내 이름 뒤를 견디기 힘들어했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어이 무언가 그럴듯한 꼬리표를 찾아 붙여주고서야 비로소 안심했다.
그렇게 '무제(Untitled)'의 삶을 살다 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낯선 이를 만나면 불안해한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상대방의 '라벨'이다. 명함을 주고받는 행위는 인사가 아니라, 일종의 ‘스캔'처럼 보였다. "아, OO 다니시는구나." 이 한마디가 떨어져야 비로소 사람들은 안심한다.
상대에게 존댓말을 써야 할지, 얼마나 정중한 말을 써야할지, 아니면 적당히 하대해도 될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이 그제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직함이 없는 나를 대할 때 사람들은 종종 고장 난 기계처럼 굴었다.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거나, 최대한의 자제심을 발휘해 나의 정보를 알아내려 애썼다.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연습'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직업이라는 포장지를 뜯어내고 나면, 그 안에 든 알맹이와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낯가림쟁이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진짜 만남은 시작된다. 직업이나 타이틀을 떼고 나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말을 섞어야 한다. 효율성의 세계에서 명함은 상대를 설명하는 가장 빠른 '압축 파일'이었다. 그 파일이 삭제된 순간, 우리는 상대를 알기 위해 비효율적이고 긴 대화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무슨 일 하세요?"라는 가성비 좋은 질문 대신,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요즘 무엇에 마음을 뺏기셨나요?" 같은 낯간지럽지만 본질적인 물음들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제야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의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이기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사회 시스템이라는 운영체제에 입력된 대로 출력값을 뱉어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감정과 고유한 서사를 지닌 ‘진짜 사람’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배경이나 소득 수준으로 필터링되지 않은 날것의 존재.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눈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인간 대 인간으로 악수할 수 있다.
타이틀을 떼고 남은 당신은 누구인가?
설명하기 어렵다면, 억지로 뭔가를 갖다 붙일 필요는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의 상태가 당신이다.
"나는 푹신한 걸 좋아하고, 지금 몹시 피곤한 사람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그냥 하나의 존재 그자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