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화폐 유효기간이 1년이라면?

by 두둥실


상상해 본다. 모든 돈에 우유나 달걀처럼 ‘유통기한’이 찍혀 나오는 세상을.

설정은 구체적일수록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내가 오늘 땀 흘려 아르바이트를 하고 5만 원을 벌었다고 치자. 이 5만 원의 수명은 딱 1년이다. 현재 내 통장에 찍힌 잔고가 총 100만 원이라 해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 당장 내일 아침이 되면, 정확히 1년 전 오늘 벌어두고 미처 쓰지 못한 1만 원이 공중분해 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모래시계처럼, 위에서 돈이 들어오는 동시에 아래로는 끊임없이 돈이 빠져나간다.

이런 세상이 오면, 우리는 더 불안해질까? 매일 아침 "오늘 사라질 돈이 얼마지?"를 계산하며 쫓기듯 백화점으로 달려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이와 비슷한 예고편을 경험한 적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몇 년 전 팬데믹 시절의 재난지원금뿐만이 아니다. 최근, 그 혼란스러웠던 ‘내란 사태’ 직후 민심을 수습하고 얼어붙은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풀렸던 ‘민생회복지원금’을 떠올려보자. 그 돈들엔 공통적으로 강력한 제약이 걸려 있었다. ‘사는 지역에서만 쓸 것’ 그리고 ‘지정된 날짜까지 다 쓸 것.’

결과는 어땠나? 사람들은 그 돈을 아끼려고 금고에 넣는 대신, 평소라면 손이 떨려서 못 샀을 값비싼 한우를 사 먹고, 안경을 바꾸고, 시장에 가서 양손 가득 장을 봤다. 유효기간이 찍히는 순간, 돈은 ‘저장 수단’의 지위를 잃고 즉각적인 ‘경험’과 ‘삶’으로 치환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단기 부양책이나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1932년, 대공황으로 파산 직전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뵈르글(Wörgl)’은 실제로 매달 가치가 1%씩 떨어지는 화폐를 발행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가만히 쥐고 있으면 휴지 조각이 되니 사람들은 돈이 생기는 즉시 사용했다. 결과는 기적에 가까웠다. 폭발적인 회전율 덕분에 실업자가 넘쳐나던 마을은 순식간에 완전 고용을 달성했고,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며 나 홀로 호황을 누렸다. 돈이 썩어서 사라지는 시스템이 오히려 죽어가는 마을을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이 기적은 불과 1년여 만에 강제로 막을 내렸다. 시스템이 실패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이 전국으로 번질 것을 두려워한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 독점권’을 앞세워 법적으로 금지해버린 것이다. 결국 뵈르글의 돈은 다시 '썩지 않는 돈'으로 돌아갔고, 마을은 다시 실업과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만약 이 시스템이 영구적으로 정착된다면, 돈에 대한 인류의 오랜 믿음도 송두리째 뒤집힐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류학 책에서나 보던 북미 원주민들의 축제, ‘포틀래치(Potlatch)’가 현대판으로 부활할지도 모른다.

북미 태평양 연안에 살았던 콰키우틀(Kwakiutl)족에게는 기이한 전통이 있었다. 그들은 경쟁자를 초대해 성대한 잔치를 열고, 자신이 평생 모은 담요와 그릇, 카누를 모조리 선물로 내주었다. 심지어 어떤 족장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멀쩡한 집을 태우거나 귀한 구리판을 바다에 수장시키기도 했다.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투자였다. 그 사회에서 존경과 권위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풀었느냐'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창고가 텅 빌수록 족장의 명예는 하늘을 찔렀고,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그에게 빚진 마음(부채감)을 가지게 되어 그의 지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즉, 부를 '축적'하는 자는 경멸받았고, 부를 '탕진'하는 자만이 왕이 되었다. 인색한 구두쇠가 되는 건 사회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화폐 유효기간이 생긴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부의 척도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Stock)’에서 ‘얼마나 잘 흘려보내는가(Flow)’로 완전히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의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만큼, 혹은 그보다 아주 조금 더, 잘 쓰기 위해 노력할지도 모른다. 적재적소에 잘 쓰면서 그 돈을 없애기 위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닐 것이다. 움켜쥘 수 없기에 나누어야 하고, 쌓을 수 없기에 지금 써야 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본다. 우리의 돈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100년도 못 사는 주제에 천 년을 살 것처럼 돈을 쌓는다. 내일 사라질 1만 원은 그토록 아까워하면서, 정작 흘려보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 하루’가 사라지는 것에는 무감각하다. ‘미래’라는 오지 않은 시간을 위해 ‘현재’라는 확실한 시간을 담보로 잡힌다.


우리는 불안해서 쌓는다. 늙어서 비참해질까 봐, 아플 때 돈이 없을까 봐. 그러면서 한편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과 내게 정말 좋은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될 일이지만 돈을 버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다 쏟아버리고는 정작 잘 쓰는 것엔 신경을 덜 쓴다. 돈은 결국 쓰기 위해 버는 것인데, 잘 쓰는 것보다 잘 버는 일에만 다들 관심을 기울인다. 그 불안과 불균형이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강력한 연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에는 유효기간이 없지만 그것을 쓰는 ‘우리’에게는 유효기간이 있다.


죽음 앞에서 통장 잔고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옛말처럼, 우리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그 견고한 숫자의 성벽은 내가 눈 감는 순간 무너져 내린다.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진짜 화폐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리고 그 진짜 화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차없이 유효기간을 향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다.


돈이 썩어 없어지는 세상을 상상하는 건 꽤나 통쾌한 일이다. 그 상상이 끝난 자리에 질문 하나를 남긴다.

"당신은 지금, 썩지 않는 숫자를 지키기 위해 유효기간이 임박한 당신의 오늘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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