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인공지능이 내게 완벽한 연인을 골라 준다면?

by 두둥실


"너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라(Listen to your heart)." 수천 년간 인류의 연애사를 지배해 온 이 낭만적인 격언은,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 앞에서 처참하게 부서진다. 그는 단언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화학적 작용에 불과하며, 머지않은 미래에 알고리즘이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운명'이라 착각하며 저지르는 숱한 선택의 오류들을 비웃듯, 데이터는 가장 합리적인 정답을 내놓을 준비를 마쳤다.


현실을 직시하자. 우리는 내게 맞는 샴푸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수십 개의 리뷰를 검색하면서, 정작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배우자를 고를 때는 '느낌'이라는 모호한 도박에 의존한다. 소개팅 주선자들은 "너랑 딱이야"라고 호언장담하지만, 그들이 아는 나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가면을 쓴 모습일 뿐이다. 내 무의식 깊은 곳에 똬리를 튼 기질, 새벽 2시의 우울,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취향까지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나 자신도 아니다.


상상해 보자. 지금의 인공지능(LLM)을 넘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초개인화된 AI 비서'가 보편화된 세상을. 유발 하라리가 예언했듯, 미래의 AI는 내 모든 이메일과 검색 기록은 물론, 매 순간의 심박수와 혈압, 동공의 미세한 떨림까지 데이터로 축적해 '나'라는 인간을 완벽하게 재구성한다. 내가 어떤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지, 어떤 말투에 안도감을 느끼는지 나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AI가 내게 제일 잘 맞는 짝을 왜 못 찾겠는가? 내가 잠든 사이, 나의 AI는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유영하며 다른 사람들의 AI와 접촉한다. 마치 중매쟁이처럼 서로의 주인에 대한 데이터를 교환하고, 수만 번의 관계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그리고 어느 평화로운 오후, 스마트폰에서 조용히 알람이 울린다.


"주인님, 당신과 아주 잘 맞는 짝을 찾았습니다. 상대방의 AI와 정밀 데이터를 대조해 본 결과, 두 분의 대화 코드가 일치할 확률은 99%, 관계가 10년 이상 지속될 성공률은 97%입니다. 상대방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습니다. 연락하고 만나보시겠습니까?"


이토록 정중하고 과학적인 제안을 거절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시스템 하에서 인류의 고질병인 '관계의 실패'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50%에 육박하던 이혼율은 0%대로 떨어지고, 고독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할키고 상처 주는 소모적인 감정 노동은 옛말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퍼즐 조각이기에, 만남은 곧 완성이자 안정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류 없는 매칭'이 곧 '사랑'일까? 통계적 무결점이 관계의 영원성을 담보할까?


과거로 눈을 돌려보면, 자유연애가 없던 시절의 이혼율은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다. 얼굴 한번 못 보고 가문이 정해준 짝과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 시절, 그들이 헤어지지 않은 건 '잘 맞아서'가 아니었다. 억압적인 가부장제와 사회적 시선, 생존을 위한 인내가 그들을 묶어두었을 뿐이다. 낮은 이혼율이 곧 행복의 증거가 될 수 없듯, AI가 보장하는 높은 매칭률이 곧 사랑의 깊이를 증명하진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불일치' 속에서 피어나는 기이한 꽃이다. 20세기의 지성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보라. 그들은 결혼 제도 밖에서 서로의 다른 연인을 용인하며, 끊임없이 질투하고 고뇌하면서도 50년 넘게 지적 동반자로 남았다. 만약 AI에게 이 두 사람의 데이터를 넣었다면? 아마도 "매칭 불가: 관계 위험도 최상(Critical)"이라는 붉은 경고등과 함께 즉시 격리 조치를 내렸을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서로를 갈구하는 그 모순적인 역동성, 데이터를 초월한 그 지점을 알고리즘은 '오류'로 분류했을 테니까.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에서 통찰했다. "호환성(Compatibility)은 사랑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 사랑의 성취 결과여야 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내 영혼의 단짝을 데려다 놓는다 한들, 그것은 관계의 시작일 뿐이다. 완벽하게 맞는 사람도 내 밥상에서 쩝쩝거리는 소리를 낼 수 있고, 안 맞는 사람도 내가 아플 때 밤새 내 곁을 지킬 수 있다. 관계의 본질은 서로 딱 맞는 요철(凹凸)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서리를 가진 두 존재가 부딪치고 깎여나가며 기어이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지난한 의지의 과정이다.


물론, 나는 인공지능이 "이 사람이 당신의 짝입니다"라고 추천한다면 기꺼이 그 서비스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의 좁은 식견과 게으름을 보완해 줄 효율적인 비서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다음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데이터가 보증수표를 써줬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에게 실망할 것이고, 때로는 지독하게 안 맞을 것이며, 꼴도 보기 싫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손을 놓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AI가 영원히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 '사랑'이라는 이름의 비효율적 위대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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