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아니 꽤 자주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가 서성인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이미 닫혀버린 문고리를 잡고 흔들어보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가령 대학 입시 때 합격한 두 곳 중 다른 학교를 택했다면 인생의 항로는 어디로 꺾였을까? 혹은,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지금 곁엔 누가 잠들어 있을까?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잔인한 것은,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머지 문들은 영원히 벽으로 변해버린다는 점이다.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들은 '가지 않은 길'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되어 평생 우리 뒤를 쫓아다닌다.
여기 흥미로운 상상을 하나 해보자. 만약 이번 여름휴가 때 하와이나 발리 대신, 이 유령들을 만나러 가는 여행사가 있다면 어떨까? 이름하여 '가지 않은 길 여행사'. 이곳에서는 3박 4일짜리 기묘한 패키지여행을 판다. 상품명은 '꿈을 좇아 유학을 떠났던 삶' 혹은 '첫사랑과 결혼한 삶' 같은 것들이다.
이 상상에 가장 적절한 가이드북이 되어줄 영화가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 맨>이다. 주인공 잭은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투자 전문가다. 펜트하우스와 페라리, 최고급 슈트를 가진 그는 "필요한 건 다 가졌다"고 자부하는 남자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 기묘한 사건에 휘말린 그는 다음 날 아침 전혀 다른 곳에서 눈을 뜬다. 그곳은 13년 전 그가 성공을 위해 떠나보냈던 연인 케이트와 꾸린 소박한 가정이다. 그는 그곳에서 낯선 타이어 가게 세일즈맨으로 살며, 자신이 버렸던 선택지가 가져다준 뜻밖의 따뜻함을 맛본다.
여행이 끝난 후, 잭은 다시 원래의 삶, 즉 펜트하우스의 고독한 부자로 깨어난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돈이 주는 안락함에 안도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현실의 케이트를 찾아 공항으로 달려간다. 영화는 그들이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것으로,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삶도 과연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뒤늦게 '가지 않은 길'을 쫓아간다고 해서, 그 끝에 반드시 영화 같은 재회나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어쩌면 그 길은 이미 끊겨 있을 수도 있고, 막상 가보니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흙탕일 수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체험판'을 통해 정답을 미리 보고 움직였지만, 현실의 우리는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영영 알 수 없는 채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 잔인한 딜레마를 정확히 꿰뚫었다.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뿐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인생이란 리허설 없이 무대에 오르는 연극과 같다고 했다. 비교할 대조군이 없기에 우리는 늘 '선택하지 않은 삶'을 막연한 유토피아로 포장하거나, 혹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상상할 뿐이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가지 않은 길'은 최상의 천국과 최악의 지옥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그 미지의 세계를 영원히 확인하지 못한 채, 오직 내가 선택한 이 하나의 길 위를 걸어가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함이자, 동시에 운명이다.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니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고 외쳤다. 이것은 알 수 없는 미래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접고, 지금 필연적으로 닥쳐온 나의 삶을 긍정하라는 적극적인 주문이다. 다른 삶을 기웃거리는 대신, 지금 내 발밑의 땅을 단단히 딛고 춤추라는 것이다.
그러니 굳이 '가지 않은 길 여행사'의 문을 두드릴 필요는 없겠다. 상자 속의 가능성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손에 쥔 것은 오직 '지금, 여기'라는 상영관의 티켓뿐이다. 환불도, 교환도 되지 않는 이 단 한 번의 상영회에서, 나는 스크린 밖의 화려한 예고편을 부러워하는 대신 내 영화의 밋밋한 장면들을 사랑해보기로 한다.
비록 극적인 반전도, 눈물겨운 재회도 없는 편집 없는 롱테이크의 다큐멘터리일지라도. 발밑에 닿는 이 투박하고 거친 질감이야말로, 수만 가지의 달콤한 '만약에'를 이기는 유일한 '진실'임을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