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행복한 추억을 팔 수 있다면?

by 두둥실


"낙찰되었습니다. 3억 5천만 원." 경매사의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나무망치가 책상을 내리친다. 방금 팔려나간 것은 어느 40대 가장이 아홉 살 때 겪었던 '생애 첫 가족 여행의 기억'이다. 구매자는 막대한 부를 가졌지만 정서적으로 빈곤한 노신사였다. 그는 타인의 뇌에서 추출된 생생한 행복의 데이터를 자신의 뇌에 이식하기 위해 거액을 지불했다.

햇살 부서지던 해변의 따스함, 젊은 부모님의 웃음소리, 입안에서 녹던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감각까지. 구매자는 그 기억을 자신의 것처럼 만끽하며 메마른 내면을 채우려 한다. 반면 판매자의 뇌 속에서는 그날의 기억이 영구히 삭제되었다. 대신 그의 통장에는 빚을 다 갚고도 남을 거액이 입금되었다.


여기, 엉뚱하고도 서글픈 상상을 해본다. 이름하여 '추억 경매장(Memory Auction)'. 타인의 행복을 사서라도 공허함을 채우려는 부자들과, 당장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도려내 파는 빈자들이 만나는 곳. "어차피 지나간 과거일 뿐이잖아요.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판매자들은 그렇게 자위하며 매대에 기억을 올린다. 과거를 팔아 현재의 안녕을 사는 셈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거래처럼 보인다. 추억 따위 없어도 사는 데지장 없고, 당장 해결된 빚과 두둑한 지갑은 현실의 고통을 덜어주니까.


하지만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일찍이 '기억이 곧 인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정체성이 육체가 아닌 의식과 기억의 연속성에 있다고 보았다. 즉,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는 기억이다. 로크의 말대로라면, 기억을 파는 행위는 단순히 데이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일부를 도려내는 자해 행위다. 3억 원에 팔아버린 것이 단순한 가족 여행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지탱하던 영혼의 기둥 하나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 <프렌치 수프(The Taste of Things)>에는 미식가 도댕이 천부적인 미각을 지닌 소녀 폴린에게 복잡하고 섬세한 요리를 맛보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소녀는 낯선 맛에 당황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재료들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때 도댕은 이렇게 말한다. "입맛은 문화와 좋은 추억이 필요한 법이란다." 그의 말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각과 취향은 단순히 혀끝의 세포가 반응하는 생물학적 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오며 쌓아온 수만 가지 경험과 기억의 총합이다. 추억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0'과 '1'의 데이터 파일과는 다르다. 그것은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 지층이 되고, 현재의 반응과 감정을 이끄는 나침반이 된다.


가령 차가운 겨울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알 수 없는 쓸쓸함이나 혹은 묘한 안도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건 단순히 그날의 일만으로 생기는 감각이 아니다. 그 차가운 공기 속에 수년 전 겪었던 이별의 아림이나, 혹은 언젠가 잡았던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기억을 팔아버린다는 건, 바로 이 감각의 뿌리를 잘라내는 일이다. 기억을 판 당신은 따뜻한 수프를 먹어도 그 온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겨울바람이 왜 시리도록 아름다운지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잃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에 이런 경매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뇌 속의 기억을 추출해 사고파는 기술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상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현실판 추억 경매'를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판다. 야근 수당을 벌기 위해 아이의 학예회를 포기하고,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해 가족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시간을 반납한다.


더 좋은 스펙을 갖추고, 나를 성장시키려고 시간을 아낀다는 미명하에 좋은 영화와 책들을 유튜브 요약본이나 설명으로 대체한다. 훗날 추억이 될 수도 있었을 '오늘'을 돈과 맞바꾸는 행위. 이것이 기억을 팔아치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렇게 우리는 '만들어지지 않은 추억'을 경매장에 올리고 있다. 그 대가로 통장 잔고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먼 훗날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텅 빈 공허함뿐일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의 자서전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삶은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기억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의 통찰처럼, 우리가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기억뿐이다.


오늘 내가 겪는 고난을 버티게 하는 힘은, 미래의 숫자가 아니라 과거 언젠가 나를 지탱해 주었던 단단한 기억의 조각들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고 내게 좋은 추억이 있다면? 아마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하지 않을까? 당장 돈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면 추억 따위 아무 가치 없을지도 모른다. 팔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한다. 당장의 오늘을 지나갈 수 있겠지만 앞으로 또다른 추억을 가질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좋은 기억은 지난 날의 좋은 기억 위로 쌓인다. 그 바탕이 사라지면 이 순간의 아름다움이 그저 공허하게 지나갈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햇살,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퇴근길의 밤공기. 이 모든 것은 억만금을 줘도 다시 살 수 없는, 당신이라는 우주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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