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1년중 한달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면?

by 두둥실


"잠은 죽어서 실컷 자면 된다."

우리는 이 말을 반쯤은 농담으로, 반쯤은 비장한 각오로 주고받는다. 각자의 삶을 대하는 방식과 철학이 있다지만, 내게 그 말은 매우 무섭게 들린다. 잠은 그리 단순한 '정지'가 아니다. 그것은 신체와 뇌, 정신이 흐트러진 정렬을 바로잡고, 내일을 위해 스스로를 수선하는 생명의 가장 치열한 유지 보수 과정이다. 잠과 죽음은 누워서 눈을 감고 있다는 겉모습 외에는 그 무엇도 같지 않다. 아니, 비슷하지도 않다. 생명을 위한 활동과 생명의 소멸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이상하다 못해 무섭다.


물론 삶 중에서 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걸고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기회가 온다면 그건 소중하다. 그런 때가 오면 누가 뭐라고 말하든 인간은 자연스럽게 그에 맞게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잠을 아끼고 조금이라도 뭔가를 더 하라는 식으로 흐르면 그건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모두가 "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치며 질주하지만, 그런 사회는 속도만큼이나 깊은 상처를 남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자기 착취'라 진단했다. 과거에는 타인이 나를 억지로 착취했다면, 성과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은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과잉 속에서 스스로가 자신을 끝없이 몰아세우며 소진시킨다는 것이다.


여기, 이 지독한 각성 상태를 강제로 끊어낼 엉뚱하지만 절실한 법안을 상상해 본다. 이름하여 '전 국민 안식월 의무제'. 1년 중 딱 한 달, 시기는 개인이 정하되 규칙은 엄격하다. '생산적인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된다. 회사 업무는 물론, 자기 계발서를 읽거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불법이다.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며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안 된다. 멀리 해외로 나가 관광 명소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바쁜 여행도 지양한다. 그저 집이나 한적한 곳에서 자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심심해 죽을 것 같은 지루함을 견디는 '무위(無爲)'의 30일을 보내야만 한다.


처음 일주일은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도파민 중독에 절여진 현대인들은 스마트폰과 업무가 사라진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해 금단 증상을 일으킬지 모른다. 17세기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일찍이 "인류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고 간파했다. 우리는 고독이 두려워 끊임없이 소음을 찾아 밖으로 나돈다. 멈춰 있으면 도태될까 봐, 혹은 내면의 공허와 마주하는 게 두려워서 스스로를 바쁨이라는 감옥에 가둔다.


하지만 뇌과학은 이 '멈춤'이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조건임을 증명한다. 워싱턴대학교의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 교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우리가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평소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때 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흩어진 기억을 통합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성한다.

즉, 우리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그 멍한 시간이, 사실은 뇌가 스스로를 청소하고 리부팅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인 셈이다. 컴퓨터도 과부하가 걸리면 재부팅이 필요하듯, 인간의 뇌도 '멍 때리는 시간' 없이는 고장 나고 만다. 현대인들이 겪는 번아웃과 창의력 고갈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뇌의 DMN을 켤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강제적인 멈춤이 가져올 변화는 개인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거대한 예고편을 목격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 시절이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활동을 강제로 멈춰 세웠던 그해, 아이러니하게도 지구는 가장 깊은 숨을 내쉬었다. 공장 가동이 멈추자 인도 북부에서는 수십 년 만에 히말라야의 설산이 육안으로 보였고, 베네치아의 운하에는 물고기가 돌아왔다.

인간에게는 재앙이었던 그 시간이, 지구에게는 회복과 정화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드니 비로소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그 '강제된 멈춤'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돌려대던 성장의 톱니바퀴가, 사실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갉아먹고 있었던 건 아니냐고.


나는 지금 제주에서 나만의 안식월을, 남들보다 조금 길게 갖고 있다. 서울에서의 나는 내일 쓸 에너지를 미리 가불해 쓰는 채무자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곳 제주라는 굴 속에서 나는 빚지지 않는 삶을 배운다. 아침에 눈 뜨면 바다를 보고, 낮에는 읽고 싶던 책을 읽고, 밤에는 별을 본다. 생산성이라곤 1도 없는 하루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다. 이것은 통장 잔고나 커리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력 그 자체의 밀도다.


만약 '안식월 의무제'가 시행되어 전 인류가 1년에 한 달씩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그해의 국내총생산(GDP)은 조금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총행복량(GNH)'과 지구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멈춤은 후퇴가 아니다. 더 높이 뛰기 위한 도움닫기도 아니다. 멈춤은 그 자체로 삶의 필수적인 리듬이다. 악보의 쉼표가 음악을 완성하듯, 우리 삶에도 의도적으로 비워두는 여백이 필요하다.


그러니 부디 죄책감 갖지 말기를. 오늘 하루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지금 뇌의 '디폴트 모드'를 켜고, 가장 중요한 일인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일'을 수행하는 중이니까. 하늘이 가장 맑았던 그해 봄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미세먼지를 걷어낼 고요한 시간이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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