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한계효용과 부(富)의 할당량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돈이 부족한 건 아닌지 확인해 보라." 어느 자본주의 맹신론자의 농담 같은 이 말은, 씁쓸하게도 현대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격언이 되었다. 우리는 믿는다.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는 그래프와 내 인생의 행복 그래프가 정확히 우상향의 정비례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하지만 이 믿음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착각이자, 비극의 씨앗이다.
경제학에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이라는 차가운 진리가 존재한다. 사막을 걷던 사람에게 물 한 잔은 생명이지만, 열 번째 마시는 물은 고문에 가깝다. 돈도 마찬가지다. 1738년, 스위스의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는 100원을 가진 사람이 50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100억을 가진 사람이 50원을 얻었을 때의 기쁨은 천지 차이라고 증명했다.
현대에 이르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은 이를 구체적인 숫자로 못 박았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연 소득이 7만 5천 달러(약 1억 원)를 넘어서는 순간, 소득이 늘어도 일상의 정서적 행복감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돈은 행복의 연료가 아니라, 그저 통장에 찍힌 숫자, 혹은 남과 비교하기 위한 데이터 쪼가리로 전락한다.
상상해 보자. 이 ‘한계효용의 법칙’이 법제화된 세상을. 매년 12월 31일, 국가가 관리하는 초고성능 AI가 전 국민의 뇌파와 호르몬, 심박수를 정밀 분석해 각 개인의 ‘연간 행복 효용성’을 측정한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 사람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 상한선(Income Cap)’을 강제로 지정한다면 어떨까?
원칙은 간단하다. 돈이 행복으로 치환되는 효율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수백억 자산가인데도 매일이 짜증과 불안으로 가득 찬 A회장이 있다고 치자. AI는 판결한다.
"당신에게 투입되는 자본 대비 행복 산출량이 극히 저조합니다. 자원 낭비입니다. 내년 당신의 소득 한도는 최저생계비로 제한됩니다." 반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컵라면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하는 청년 B에게는 통보한다. "당신은 적은 돈으로도 막대한 행복을 생산해내는 고효율자군요. 당신에게 1억 원을 지급하면 행복 총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내년 소득 한도를 10억으로 상향합니다."
이 시스템 하에서 세상은 기묘하게 뒤집힌다. 부자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돈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복해져야’ 한다. 그들은 최고급 요트 위에서 샴페인을 터뜨리지만, 뇌파 측정기는 속일 수 없기에 억지웃음 뒤의 공허함까지 감지해낸다. 돈이 주는 쾌락에 무뎌진 그들에게 부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입증해야 할 과제가 된다. 반대로 소시민들은 희망을 품는다.
나의 소소한 행복이 곧 자산이 되는 세상. 적은 돈으로도 기뻐할 줄 아는 능력, 일상의 작은 틈새에서 감사를 발견하는 능력이 곧 경제적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의 평정)’가 곧 부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이 가상의 시스템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탐욕’을 치료하는 가장 강력한 백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부가 소수에게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세금을 걷고 규제를 만들지만,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구멍을 찾아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으면 돈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대전제 앞에서는 그 어떤 탐욕도 무력해진다. 수천억을 움켜쥐고 있어 봤자, 그것을 누릴 행복의 그릇이 종지 그릇만 하다면 AI는 가차 없이 그 돈을 빼앗아 행복의 그릇이 큰 사람에게 흘려보낼 테니까.
결국 이 상상이 우리에게 묻는 것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을 담을 그릇의 상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에겐 행복을 측정해 줄 AI도, 소득을 제한해 줄 법도 없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고속도로 위에서 우리는 ‘7만 5천 달러’의 포화점을 지나치고도 멈추는 법을 모른 채 질주한다. 이미 배가 부른데도 끊임없이 음식을 탐하다 탈이 난 사람처럼, 우리는 행복으로 환전되지도 않을 잉여의 부를 쌓기 위해 오늘의 기쁨을 땔감으로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닷물은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갈증을 해결하는 건 바닷물 전체가 아니라 내 목을 축일 물 한 컵이라는 사실이다. 1년 뒤, 당신의 행복도를 검사하러 올 가상의 심판관 앞에서 당신은 당당할 수 있을까?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당신의 웃음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쩌면 진정한 부자는 100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떡볶이 한 접시에서도 100억짜리 미소를 길어 올릴 줄 아는, 뛰어난 ‘행복 연금술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