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감당하고 기쁨을 발견하기

'그린 파파야 향기'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by 게으른 여행자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다. 오래된 목조 가옥을 둘러싼 무성한 풀, 새소리와 빗소리, 풀벌레 소리, 여름의 빛. 사람의 말소리는 극히 제한적이고 자연의 소리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풍경이 이야기를 대신한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건 일상을 바라보고 삶을 대하는 무이의 태도다.

무이의 시선이 멈추는 곳엔 늘 작고 꼬물거리는 것들이 있다.

무이는 열 살 남짓 먹은 보조 하녀로 오랜 프랑스 지배를 받아온 피식민국 베트남에서도 가장 낮은 신분이다. 가족들 품을 떠나 홀로 식모살이를 하는 중에도 무이의 태도는 시종 담담하다. 주인집 꼬마들의 짓궂은 장난을 겪어 넘기고 매일 매 순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밥 짓기를 돕고 마루를 닦는다. 더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거나 특별한 꿈을 품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무기력하거나 무지해 보이지 않는다.



무이를 빛나게 하는 건 그녀가 바라보는 것들이다.
그린 파파야 알갱이

무이의 시선은 자신만큼이나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소한 것들을 향한다. 풀 위를 기어가는 개미와 귀뚜라미, 세차게 땅을 때리는 빗방울, 파파야 익어가는 향기와 열매를 가득 채운 작은 알갱이들. 영화는 주로 무이의 시선을 통해 작고 사소한 것들을 아름답게 비춘다. 무이는 지나간 것, 다가오지 않은 시간들 대신 현재에 살아 있는 존재들을 본다. 그 순간 무이 또한 현재에 녹아든다. 능동적으로 현재를 사는 무이에게 현재는 곧 기쁨이다.

무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는 기쁨보다 혼란과 절망에 가깝다. 나라는 어지럽고 여성들은 대를 이어 고통받는다. 주인 나리는 하루 종일 만돌린만 튕기고 주인마님은 딸을 잃은 고통을 안고 산다. 집 안의 분위기는 무겁고 고요하다. 이젠 침묵이 된 고통. 집은 더 이상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익숙한 고통에 잠겨있지만 고통을 담당하는 여성들 역시 어딘가 담담하다. 이런 걸 순종이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내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지만 끝내 받아들이게 된 자들의 품위 있는 태도.

주인집 마님에서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감독은 대사를 거의 두지 않음으로써 인물들이 품은 구구한 사연을 간접적으로만 드러내고 제국의 횡포와 이데올로기, 그로 인한 인간, 특히 착취 구조의 맨 밑바닥에 있는 여성들의 고통을 아름다운 풍경과 버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현재를 감당하는 동안 일상의 기술을 터득하고 삶에 강해진 여성들은 영화를 가득 채운 자연을 닮았다. 이때의 자연은 살랑살랑 아름답고 자애롭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엄정한 이치에 따라 절대적이며 무자비하기도 하다. 무자비는 순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책의 구절을 인용해 끝맺는데. 무이의 삶을 그대로 비유한 자연에 대한 묘사이다.

바위틈에 고인 물이 봄을 예고하는 듯
잔잔한 바람에도 살랑댄다.
힘찬 대지의 고동은 강한 파문을 낳고
그들의 부딪힘은 더 큰 파문을 낳지만
그것은 생명을 위한 준비
조화로운 움직임을 위한 준비
동사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늘에 우뚝 선 버찌 나무는 가지를 힘차게 뻗어내고
물의 리듬에 맞춰 가지의 굴곡을 정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변화가 심하다 해도
버찌 나무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의 품위는 시대와 계급이 결정짓지 못한다. 무이가 영화 속 결말처럼 부르주아 계급의 남자와 맺어지지 않았더라도 무이는 현재의 기쁨 속에 살아가는 고상한 여성으로 남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