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기분

by 게으른 여행자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마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십 대 시절 글쓰기는 철저히 멋져 보이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십 대 때의 글쓰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여정이자 정돈되지 않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늦은 밤마다 일기장을 펴놓고 바쁘게 세상의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꿈꾸거나 조용히 한 포기 화초처럼 물 흐르듯 사는 삶을 동경기를 번갈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날엔 다음날 늦잠 자느라 오전 수업을 늘 빼먹었고.(뭐 하는 애니?)


그러다 삼십 대 들어서서 블로그를 만들고 한창 유행하던 것을 나도 했다. 남자 친구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 사진을 올리고 호캉스 경험을 올리고 책을 읽고 시니컬한 독후감을 남기기도. 그러다 한동안 잊고 지낸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건 삼십 대 중반을 다 보낸 후였다. 한여름 태풍 같은 계절이 한 번 지났음을 느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삶에는 새로운 사건을 품은 다양한 계절이 펼쳐지겠지만 한여름의 태풍은 분명히 지났다. (제 구독자분 연령층이 다양한데 여름 한가운데 계신 분들, 이 글을 읽고 조금만 더 힘을 내셨으면 좋겠어요.)


태풍이 지나고 나니 내게 주어진 하루가 그저 귀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몸을 보전하느라 보지 못했던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던 걸까. 아무튼 하늘이 보였고 버스 정류장에 드리운 나뭇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그 별것 아니지만 완벽한 풍경의 일부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때부터 나와 내가 속한 세계를 자연스럽게 긍정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중에 많이 읽히는 글들이 생기면서 계속해서 쓸 동력을 얻었고 책 출간이라는 선물 같은 일도 생겼다. 일이 년 전에 초고를 써 두었던 글들을 묶었지만 사실상 처음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이십여 년 전부터 시작된 글들이다. 나만의 시절을, 그때의 태풍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쓰기는커녕 보지도 못했을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들에게도 기분이 있다면 지금 내 책은 어떤 기분일까. 어리둥절하면서도 떨릴 것이다. 내 기분은, 미덥지 못한 조카를 처음 놀이 학교에 보내 놓고 노심초사하던 기분과 비슷한 것도 아닌 것도 같다. 어려운 출판 시장에서 자기 몫을 하기엔 아직 여러모로 허약할지 모를 책이다. 부디 많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기를.


*알라딘, 교보문고, 예스24 등 모든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이 가능합니다. 알라딘에서는 너무 귀여운 카드 뉴스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자님들께 가장 먼저 알리고 싶어서 간단히 책에 관한 근황을 남깁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3225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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