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지제스트 Oct 16. 2024

왜 그러는지 묻고 싶었어

Ep.12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가 그 사람이다... 생각하면 이해가 될까?


왜 그러는 걸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려고 시도는 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모르겠다.

이미 곱지 않은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의 온전한 "입장"이 되겠냐만은.

결론은 어차피 '내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일지언정.





방식의 차이


애정과 사랑의 크기를 비교할 수는 없다.

가족이라도 각자의 크기와 방식은 다를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모라는 이유로,

일방적이고 내 기준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부모로서, 아이 보호자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서로를 옥죄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와 아이의 관계 정립도 있지만 부. 모.이다 보니 관계 정립이 복잡하다.

상대가 내 아이에게 어떤 "부"가 되기를 바라는 나의 기준이 있으니까.

부모가 되기 전에, 결혼 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필수이다.

그 필수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출발해서 호흡 맞추기 힘들다.

2인 3각으로 달릴 건데 어떤 발로 출발할 건지, 어떤 구호로 서로 합을 맞춰 뛸 건지 협의 없이 다리 묶고 출발부터 하다니!

그 레이스는 ... 안타깝네.


"결혼"이라는 것은 이성에 대한 호감, 사랑이라 불리는 감정이 커져서 굴러가다 도달하는 결승점이 아니니까.

둘 만 살아갈 수 있지 않다.

기존 가족과도 연결되고 아이도 생기면 또 다른 연결이 만들어진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나와 아이의 관계가 있듯이 아이들과 아빠의 관계 또한 기대치가 있다.

하고 싶은 걸 큰 고민 없이 할 수 있는 경제적 부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아직도 커리어로 헤매고 있으니(.... 미안하다).


다만 내가 지키고 싶은 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엄마는 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자산을 물려줄 일은 없을 거고 자부심은 부모로서 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남편에게도 바라는 부분이었다.

가치관이 맞지 않아 힘들지는 않을 것 같은 믿음으로 결혼을 한 것이니까.


남편은 남들이 인정하는 좋은 대학, 대학원을 나왔지만 '번듯한 직장'이 아닌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하고 다녀야 하는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해서 항상 바빴다.

신혼 때도 도보 거리에 직장을 다니며 칼퇴하는 나와 달리 강 너머의 직장을 다닌 남편은 거의 매일이 야근이었다.

그래도 신혼 매직으로, 바다 같이 넓은 이해심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임신기간 동안의 혼자 시간은 서글픈 감정으로 요동치는 시간이 많았다.

출산 후 찾아온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과 우울함, 외로움은 더 커졌다.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 노력했음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순간순간마다 기대하는 결론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가중치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야근과 출장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엄마인 나에게 많았다.

엄마가 아무리 한다고 해도 아빠의 자리도 있는 것이니까.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일상을 보내는 나는 잔소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함께 하는 시간이 적은 아빠는 아이들과 활동을 많이 하거나 "기분 좋은" 경험을 나누길 바랐다.

훈계가 필요할 때도 잔소리보다 좀 더 강력한 한방이 필요할 때 아빠가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엄마 아빠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역할분담이 있어야 혼선이 없지.




끼어들기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멘탈이 탈탈 털리는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조각조각 떨어진 멘탈을 부여잡고 스스로 챙기고 있다.

수행 준비를 하고 이상한 곳이 없는지 물어본다.

공부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깊이 관여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의견을 던져준다.

나 나름으로 아이가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질문한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면 남편이 끼어든다.

내가 말하고 있는 중간에 가로챈다.


내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져서 본인이 해야겠다고 하는 건가?

같이 해주고 싶어서 관심을 표현하는 건가?


싹둑 잘리는 내 말의 뒷모습을 보는 기분이 어떤지 냐고.

원하면 얼마든지 양보할 테니 아이에게 알려주는 역할 하시라고요.

그래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려"는 하셔야지.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 말할 때는 기다렸다 말하라고 훈계하면서 그렇게 끼어들면서 말 끊으면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고려하지 않고 직진하는 건가?


도대체 원하는 게 뭔지, 왜 그러는 건지 물어보고 싶은데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화.

겨우 잠잠해진 불씨를 건드리기 싫어서 피한다.

또 한 겹의 불편함이 쌓인다.


"배려"를 바닥에 깔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가 필요하다.

가능하려나.









매거진의 이전글 변한 건 나일까... 사과부터 할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