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봄은 언제인건가
이력서 길이는 이직과 퇴사 수에 비례한다.
유학 전 짧은 2년 반 경력에 이미 이직 1번이 포함되고
유학 후 일을 시작한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이직이 2번째 라니.
평생 직장을 선호하진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잦은게 아닌가.
핑계를 대자면 전적으로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닌
상황이 자꾸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음 직장의 기회가 때마침 나타났다.
나 혹시 나만 모르는 계획된 시나리오 대로 이직하는거야? 트루먼쇼 같이?
당시 국내 유명 스포츠마케팅 대행사 국장과의 커피 면접,
이후 비밀스러운 듯한 본부장, 국장과의 맥주 면접.
그런 스타일의 면접이 처음 이기도 했고
면접은 자고로 쌍방이 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평가와 별개로 내가 본 그들은 기준 미달이었다.
그런데도 이직을 한 건
작디작은 회사에서 결혼 후 계속 같이 일하기 불편했고
(핑계다)
그 회사에 계속 일하다간 눈에서 진짜 레이저가 발사될 거 같았고
비영리재단 업무 자체는 괜찮았지만 사방에서 괴롭히고 정부기관의 갑질 같은 업무 프로세스의 비효율성을 더 이상 버티기 싫었다.
(도망친거다)
이직하고 2개월 후 결혼.
각자 판단하는 건 다르겠지만
인생 큰 이벤트를 앞두고
이직까지 하는 건 사실 부담스런 일이었다.
국장에게 얘기했고 문제된 거 없다고 했다.
어떤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을까.
입사한 첫날부터 업무 파악하기도 전에
달려가는 기차에 올라타라고 강요받는 기분이었다.
입사한 주말 유럽으로 대회 출전가는 선수 수행하러 출장가야했고
선수가 부상으로 복용하는 약이 도핑에 걸리는지 안걸리는지
출근한 첫날부터 대회 조직위에 전화해서 물어봐야했고
선수와 선수 부모와 제대로 인사 나누기도 전부터
정신없이 몰아쳐댔다.
근로계약서 쓰지도 않고 시작했으니 마무리 하겠다고 했지만
주말에 결국 출장을 떠났고
선수 매니저로서 자질이 없던? 성향이 맞지 않았던?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들이 쌓이고 쌓였던 10개월이었다.
대행사의 야심작이었던 선수 매니저로 잘만 버텼으면
지금의 모습은 또 달라져 있겠지.
"나"를 포기하지 못함이 강했던 30대 초.
선수 매니저로서는 자질이 부족했던 시기였고
그 부대낌으로 그동안 쌓였던 상처들이 터져버린 시기.
시름시름 아프고 증상은 있는데
대학병원 검사까지 받아도 알 수 없었던 원인.
몸도 마음도 열정도 지쳐버린 시기였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이직이 아니었다.
그냥 퇴사.
도망갔다.
그렇게 10년 같이 길게만 느껴진 10개월을 보내고
첫 경력 단절 기간을 보냈다.
그리고 난
잠만 잤다.
호주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할 땐
봄을 준비하는 줄 알았는데
봄이 시작한 줄 알았던 첫 취업부터 2번의 이직, 3번쨰 회사까지 3년 반.
봄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