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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Apr 24. 2024

나의 불완전한 20대

Feeling lost in my 20’s


20대 초반 - 끝없는 진로고민


어렸을 적엔 눈에 멋져 보이는 이렇다 할 직업들은 다 꿈꿔봤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인문계와 실업계 사이의 기로에 놓이면서부터 꿈이라는 것의 무게를 좀 더 진지하게 감당하기 시작했다. 남들 따라서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길을 선택할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회생활에 빨리 뛰어들게끔 하는 것이 시간을 덜 낭비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특성화고 진학을 선택했다. 더불어 그다지 넉넉지 않은 집안의 경제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 대학은 남들처럼 당연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물론 이와 상관없이 내가 공부에 깊은 뜻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막상 그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엔 끝이 맺어져 있을 것 같았던 진로고민은 스무 살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여차저차 취업은 해서 내 밥벌이는 하고 있지만 그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나의 진짜 꿈, 열정을 찾기 위해 꽤나 많은 시도를 거쳤다. 직업박람회에 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전문인도 만나보고 내일희망카드를 통해 자격증도 따고 취업연계도 받아보는 등 나름 시도는 많이 해봤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선택하는 직종이 대부분이 다 남들이 선택하는 말 그대로 레드오션, 흔하디 흔한 분야이었기 때문에 신선함 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높고 단단한 벽에 막힌 듯한 기분이 든 나는 점차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애써 되지 않는 일을 붙잡고 있을 바엔 그냥 이 시기를 즐기자. 어른들이 누누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엔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다시 오지 않을 20대를 가장 20대 답게, 후회 없이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 결심이 가능했던 건 젊음에서 온 패기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망쳐도 내일의 내가 만회하면 된다는 다소 안일한 생각으로 뒤덮여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다소 부족했다. 일이 조금이라도 적성에 맞지 않고 힘들면 미련 없이 놓아버렸다. 더군다나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었기에 먹고사는 문제는 내가 아직 감당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20대 중반 - '나'라는 사람의 재발견


24살 무렵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획에도 없던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들은 자취의 로망을 한껏 안고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을 찾을 때까지 심사숙고한다면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다 건너뛰고 급하게 구한 6평 남짓 원룸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첫 자취는 이루어 말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시작했다. 매달 꼬박꼬박 지출해야 되는 월세와 공과금 그 밖의 생활유지비들을 생각하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 인생이 벼랑 끝에 서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에 일에 대한 책임감을 다 잡으며 함께 혼자 사는 삶에 나를 적응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이내 곧 만족감으로 바뀌었다. 가족의 그늘 밑에 있을 땐 수동적이었던 내가 혼자 지내게 되면서 점차 능동적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선 발견하기 힘들었던 나의 취향, 성격, 독립심 등이 자취를 통해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었다.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라는 말이 나의 자취여정을 가장 잘 표현해 낸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와는 상극이라고 생각했던 요리를 막상 해보니 나 한 명 정도는 충분히 먹여 살릴 만한 수준은 된다는 깨달음과 청소, 빨래 등 귀찮아서 미룰 줄만 알았던 집안일이 온전히 나의 몫이 되니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고는 못 배길 수준이 되었다.


그 밖의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단단한 생활 습관을 다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중 가장 혈안이 된 항목은 바로 취미 찾기였다. 그저 머리 식힐 겸 친구와 짧게 다녀왔던 일본여행을 통해 우연히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24살에 비로소 영어공부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매년 한국인들의 새해 목표 부동의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진부하게 여겨지지만 이 작은 움직임은 나를 미국 어학연수길에 오르게 했고 이 선택은 내 삶에 꽤나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자취’란 어떤 의미로 내 삶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는 것. 이제부턴 그 누구도 내 입에 밥을 떠먹여 줄 수 없다는 것, 앞으로의 내 미래는 온전히 내 손아귀에 달렸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건 확실하다.



20대 후반 - 불완전함 속에서 찾은 안정감


누군가 나에게 다시 20대 초반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면 아마 난 한사코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기가 지난날들과 비교했을 때 정신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흩어졌던 가닥들이 하나둘씩 서서히 잡혀가고 있는 느낌, 그 느낌이 주는 왠지 모를 평온함이 있다. 그렇다면 내게 평온함을 주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첫 번째, 어디론가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의 여부를 떠나 내가 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매일 규칙적인 루틴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매일매일 습관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때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일 덕분에 내가 다른 길로 새지 않게 되며 잡생각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불면증 타파는 덤으로.


두 번째, 취미생활


일 외적으로 내가 해야 될 것, 오히려 시간이 부족해서 다 끝마치지 못할 정도로 나의 to-do list를 채워줄 무언가가 있다는 자체가 삶의 큰 만족감을 준다.


첫 번째 취미로 시작한 영어공부를 선두로 최근에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외국어 공부야 말로 남녀노소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자기 계발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하루하루 배울 때마다 그 나라를 여행하며 한 마디라도 입 밖으로 꺼내어보는 나 자신을 상상할 때면 벌써 뿌듯해진다.


또 다른 취미 팟캐스트는 마치 오랫동안 헤매던 미로 속에서 찾은 단 하나의 탈출구와도 같다. 항상 머릿속에서만 되뇌던 크고 작은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줌과 동시에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과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게 될까? “, ”누가 듣기나 할까? “라는 0에 가까운 기대감과 ”그냥 한번 해보는 거지,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줄 알고?”라는 긍정의 결합이 첫 발을 내딛게 해 주었다.


단지 ‘취미생활’에 불과하다고 여긴 것들이 당신의 삶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줄 수 있다.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작은 생각의 씨앗들에 물 주는 셈 치며 가꾸고 성장시키다 보면 뜻밖의 결실을 맺게 해 줄 것이다.


세 번째, 혼자 있는 시간


여가 시간을 온전히 혼자 보낸다는 개념이 크게 와닿은 적 없었던 지난날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만큼 이제는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이 시간의 주인은 오직 나라는 사실이 매일마다 소소한 기대감을 북돋아줌과 동시에 이 시간이 가치 있게 흘러갈지 낭비될지 또한 나 하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 또한 꽤나 큰 책임감으로 작용한다.


나는 이 책임감을 ‘시도’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내가 가진 환경,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일 때문에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왔던 것들을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하나씩 도전해 봄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었다.




20대의 끝자락에 서있는 지금, 무엇하나 완벽하게 정착된 건 하나도 없다. 고연봉 직장, 내 집마련, 결혼 등 아직 남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준에 나를 비교하자면 많이 부족하지만 또 그 기준도 옳다고만도 할 수 없다. 인생의 타임라인은 각자 저마다 다르기에.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남들의 인생 시간표에 나를 대입하는 것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시간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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