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타협은 없다.

교회는 사교장이 아니다.

by 배달부

어쩌면 나의 교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교회는 다를거야”


“그래도 우리 목사님은 좋은 교회에서 제대로 배웠으니 다르겠지”



난 언제나 말했다.


“사람은 똑같아. 목사라고 다르지 않아”


그런데 우리 교회만은 왜 다를 거라는 기대를 했을까?


나는 사람을 믿은 게 아니라 내 본 교회를 믿었다.


어쩌면 건강한 대형교회의 기준이라고 생각한 내 교만이었다.



신앙에 타협은 없다.




나는 어찌보면 열정이 넘치는 교사일수도, 혹은 불편한 교사일 수도 있다. 어쩌면 불편한 교사가 맞는 말이지 않을까.


나는 초교파를 존중한다. 지금도 하나님의 기적은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뿐인가, 나는 진보신학도 존중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장합동 교회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를 이곳에 보내는 이유는, 어릴 때 배우는 신앙은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임며, 나 또한 그럤기 떄문에, 그리고 개척 전 본 교회 역시 예장합동소속으로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즉, 내가 섬겼던 이 교회는(본 교회로 돌아왔으므로 과거형이 되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담임목사 또한 임직서약을 통해 웨스트민서트 신앙고백을 한 ‘성경의 무오’를 믿는 목사다.


그러므로 내가 이 교회를 섬기는 한, 나는 이 안에서 보수적이어야 하며, 예장합동의 신앙관에 맞게 신앙에 타협이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사람은 신경쓰지 않았다.



2. 개척을 한 후 첫 여름 수련회에서 시작되었다.



개척 후, 첫 여름 수련회. 아이들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시간. 부임한지 약 3개월만에 첫 사건이 터졌다.


“겨자씨 비유”.


먼저 총신대학교 교수의 의견을 첨부하겠다.



1. 이단적인 해석은 아닙니다.

2. 다만, 문제는 전통적인, 그리고 정통적인 해석도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3. 이런 해석은 주류의 해석이 아니라, ‘소수의 해석’입니다. 즉 겨자씨 본문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교회의 종말론적 완성 등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현재의 해석은 마치 하나님 나라의 확장 및 교회의 종말론적 완성이 ‘부정적인 것’인 양 청자들로 하여금 오해를 사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4. 이런 해석은 수련회 맥락 속에서 뭔가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을 향한 비판적 목소리, 선지자적 목소리를 내기 위한 참신한 해석이긴 하나, 받아들이는 입장에는 얼마든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AI의 피드백이다.


정통 교리의 가르침: 마태복음 13장의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력과 필연적인 확장성(최후 승리)"**을 보여주는 성경의 뼈대 같은 말씀입니다. 시작은 미미해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결국 온 세상을 덮고 만물을 회복시킬 만큼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는 아주 영광스러운 교리입니다.


해당 설교의 문제점: 그런데 이 설교는 그 '영광스러운 확장과 승리'를 "비정상적인 비대함", "위험 신호", "세속적 타락"으로 완전히 뒤집어 버렸습니다.


교회 역사상 칼빈을 비롯한 수많은 정통 신학자들 중 그 누구도 겨자씨의 성장을 '타락이나 위험 신호'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즉, 이 설교는 단순히 '참신한 해석'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승리를 가르치는 정통 교리의 방향성을 심각하게 거스르는 가르침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이단 교리'는 아니지만, 장로교 강단에서 선포되어서는 안 될 **'교리에 어긋난(배치되는) 잘못된 해석'**인 것은 확실합니다.

아이들에게 "교회나 복음이 커지는 것은 곧 변질과 타락"이라는 삐뚤어진 교회론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교리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고 느끼신 그 위화감은 100% 정확한 분별이셨습니다.




나는 이 목사를 잘 몰랐다. 내가 아는 것 하나는 담임목사의 대학부 사역 시절 제자라는 것.


목사 스스로 말하길 해외의 비주류 신학대학을 나와서 한국에서 사역 청빙 받지 못했다는 것.


이전 사역지는 먼저 분립개척 되었던 교회였으며, 그 교회 또한 현재 담임목사(당시 본교회 부목사)의 추천으로 청빙 되었다는 것.



강단에서는 선포되지 않아야 할 설교가 3개월만에 은혜를 누려야 할 수련회에서 설파되었다.



나중에 나는 4년치 설교를 AI에게 돌려보게 했는데, AI의 판단은 나에겐 꽤 충격적이었다.


결론부터 4년간의 설교에 대한 AI의 분석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보통 목사는 신앙적인 색이 있다. 즉, 진보거나, 보수거나 중도거나 신앙의 색이 설교에 묻어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설교는 어느 때는 보수적인 것 같고, 어느 떄는 진보적인 것 같다. 설교 중 하나는 팀 켈러 목사의 설교를 그대로 베낀 것도 있다. 설교가 일관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찾아보고 좋은 것이 있으면 본인의 신앙과 관계 없이 가져오는 것 같다. 이건 본인의 신앙관이 확립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튼 교회가 개척한 후 약 3-4개월이 지난 때부터, 나는 청소년 교역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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