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이 된 정주민 출신작가 서도호의 ‘집’이야기
의•식•주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라고 이야기하는 세 요소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필요한 듯하면서도 인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주’ 즉 집이다.
주거는 공간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유목민이든 정주민이든 본인의 활동 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집이다. 인간은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에 돌아온다. 그렇기에 집의 위치에 따라서 사람은 삶의 방식이 변화한다. 하다못해 여행을 가서도 저마다 여행 계획에 맞춰진 숙소 위치를 정하고, 결국 숙소와 목적지를 왕복하며 생활을 한다.
그렇다면 이 집 자체가 고정되지 않은 사람인 유목민과 고정된 정주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 사람은 익숙한 것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정주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집이라는 것에 대해 익숙함을 느끼고, 집이라는 대상에 대한 담론제기가 자주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유목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이라는 요소가 인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정체성을 보여주는 요소이지만, 유목과 정주라는 정체성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우리는 집이 지닌 정체성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후천적 유목민들의 등장으로 새로이 집에 대한 정체성의 측면을 이야기한다.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한 한국작가를 우리는 ‘노마드’ 즉 유목생활을 하는 작가로 부른다. 한국이라는 정주 문화 국가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 작가들은 국가와 국가를 넘나들며 유목하는 생활을 지낸다. 여기에 더해 it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은 국가와 국가를 이동하며 생활하는 ‘디지털 노마드’생활을 하기도 한다. 유목과 정주, 두 가지 주거를 모두 경험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주거의 등장인 것이다.
이런 주거에 대한 고민을 하는 작가가 바로 서도호이다. 후천적 유목민인 서도호는 본인의 런던 집의 치수를 모두 잰 작업,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틈새호텔’ 그리고 한옥을 서구의 빌딩•건물에 박아 넣는 작업과 같은 여러 주거에 관한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중간정리와 같은 전시가 바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하는 개인전 ‘스페큘레이션’에서 정리되어 있다.
서도호는 본인의 주거에 대한 생각 정리과정을 이미지를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전달한다. 특히 2층에서 볼 수 있는 서도호의 영상과 모형들은 집, 즉 공간이라는 요소에 대한 작가의 탐구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각 작품 옆에는 작품의 구상•제작•퍼포밍과정이 담겨있는 영상이 존재했는데 이는 작가의 집에대한 이야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작품과 영상의 퀄리티 역시 단순히 ‘현대미술’을 넘어서 깔끔한 만듦새가 관람객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만 3층의 영상작업의 경우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전체적인 전시 주제의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작품 선정이었으나 상영 방식이 다소 안일했다. 두 개의 영상이 차례로 나오는 방식으로 진행된 전시는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너무나 긴 러닝타임, 그리고 영상을 다 보지 않아도 되는 회화적인 영상이 주는 긴 시청시간의 피로감은 3층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국내와 국외라는 다른 장소를 담은 영상을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전준호•문경원의 전시처럼 두 영상을 스크린 양면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처럼 장단이 존재하는 전시지만, 주거•유목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서도호에 대한 정리로서는 훌륭했다. 우리도 이 전시를 보면서 한 번쯤 본인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집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