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언어 구사자들의 공통점
영어책은 점점 많아지고 공부방법론은 다양하게 알려지고 있는데 정작 많은 초보자들의 영어실력은 계속해서 제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느 순간부터 정체되는 것 같은 말하기 실력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요. 이제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구할 수 있는 영어교재가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영어회화책 딱 하나밖에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십중팔구는 한국인들의 평균적인 영어 구사능력이 지금보다 조금은 좋아져 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을 찾아보려 해도 구할 수가 없으니, 본 것을 또 보고 또 말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내용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극단적인 비유이긴 하지만 외국어 습득의 원리를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나 다중언어구사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언어의 핵 Language Core'입니다. 영어를 익히는 학습자라면 당연히 '영어의 핵 (English Core)'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영어 멘토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사실 이러한 개념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비법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수의 영어 정복자나 언어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언어적 개념입니다. 다만 그것을 설명하는 용어와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현재 '언어의 핵'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알리고 교육하는 랭귀지 코치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루카 람파리엘로 Luca Lampariello라는 사람인데요. 루카는 자신의 모국어를 포함해서 총 9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다중언어구사자입니다. 서너 개의 언어만 쓴다고 해도 대단한 건데, 9개 국어를 자유롭게 쓴다니 믿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5~6개 이상의 언어에서 20여 개에 달하는 외국어를 구사하는 다중언어구사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이도 십 대에서 20,30대에서 많게는 60대 이상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는데요.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많은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요?
그들의 방식은 각자가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외국어를 익히는 초창기에 아주 단단한 '언어의 핵'을 만드는 과정을 꼭 밟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언어의 핵'에 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를 간단히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나만의 '영어의 핵'을 가지고 싶나요? 영어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초보자이신가요?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 보세요. 영미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화 상황 수백 개를 보고 듣고 따라 하면서 완전히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세요. 한편을 통째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도 좋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따로 선정해서 연습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선정한 영상물에 나오는 스토리, 대사, 감정, 몸짓, 표정 등을 똑같이 재연할 수 있도록 외워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시작해도 곧바로 대사들이 쭉 이어질 수 있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의 '영어의 핵'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 '영어의 핵' 위에 다양한 표현과 어휘를 차곡차곡 붙여가고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는 언어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빠짐없이 녹아 있습니다. 프로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 있는 몸짓과 소리를 전해 줍니다. 다양한 캐릭터의 다양한 말투와 감정이, 다양한 상황에서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대사 자체도 훈련된 프로 작가들이 쓰는 것들이라 사용되는 대사의 품질도 구어체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이렇게 고품질로 이어지는 대사들은 자연스럽게 영어의 언어 규칙을 몸으로 익히게 도와주게 됩니다.
물론 '영어의 핵'을 만들기 위해서 꼭 영화나 드라마를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여러 가지 교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형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국인과의 교류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단연코 영화와 드라마가 최고의 교재가 되어 줄 것입니다.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환경에 놓여 있는 초보자가 꼭 가져야 하는 언어적 기초역량을 충분하게 채워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그냥 보는 것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입니다. 단 한편을 다양한 각도로 활용해서 완벽하게 익힌다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이 '영어의 핵'이지만, 수십수백 편을 그저 보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영어의 핵'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재료들을 이용해서 '영어의 핵'을 만들어 가면서 회화나 문법, 어휘를 따로 공부해도 되냐는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어에 노출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런 시도를 하는 분들은 보통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편입니다.
왜냐 하면, 앞에 언급한 것처럼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다양하게 공부하는 것이 왜 좋지 않겠습니까? 자신에게 가용한 시간과 에너지만 있다면 하십시오. 하지만 하루 한두 시간 정도밖에 나지 않는 학습자라면, 우선 한 가지 공부 재료로 '영어의 핵'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후에는 그 핵을 활용하면서 빠른 속도로 그 이상의 영어실력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