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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ul 15. 2024

강소웅 교장 선생님

계간 <지구문학> 2024년 여름호(통권 106호) 발표작

이 글은 오래 전 초등학교 초임교사 시절 제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강소웅 교장선생님께 대한 감사를 표하고, 명복을 빌고자 쓴 수필 작품입니다.


“강소웅 본인 사망. 발인 10월 OO일. OO대학교병원 장례식장.”


  가로수에 단풍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던 9년 전 10월의 어느 날, 예기치 않게 받았던 문자메시지다. 문자메시지는 내가 20대 초중반이었던 초등학교 초임교사 시절 모셨던 교장 선생님의 부고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이미 초등교단을 떠난 지 5~6년가량 지난 시점이었고, 초등교사가 아닌 대학 강사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지만 교장 선생님과는 1년에 한두 차례 정도 안부 인사를 주고받던 터였는데, 적은 연배는 아니었지만 얼마든지 더 사실 수 있는 연 세셨던 교장 선생님의 부고는 꽤 충격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안부 전화를 드린 게 부고 메시지를 받기 두어 달 전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강소웅 교장 선생님과의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정확히 21년째다. 21년 전 나는 대구교육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구광역시의 어느 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새내기 교사였다. 마침 교장 선생님도 다른 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를 하시다가, 내가 발령받던 그 날에 교장 승진을 하셔서 나와 함께 근무를 시작한 분이셨다.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채 교사 생활을 시작했던 20대 초중반의 내게, 60세가 넘으셨던 데다 첫인상이 다소 근엄해 보이기도 했던 강소웅 교장 선생님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출근해서 교장 선생님을 뵈면 괜스레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 무서움이 사라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부임하기가 무섭게 남교사들은 물론 학교 주사님, 운동부 코치 등 남자 직원들을 모조리 불러모아 ‘불사모’라는 모임을 조직하셨다. 처음에는 ‘불사조’라고도 들렸던 그 모임 이름의 뜻은, ‘불알을 사랑하는 모임’이었다. 남자 교직원들의 모임을 그 당시 큰 화제가 되었던 정치모임인 ‘노사모(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의 명칭을 따서 우스꽝스럽게 지은 이름이었다. 이런 모임을 왜 만드셨냐 하니, 본인이 워낙 애주가셔서 남자 교직원들 간의 친목을 ‘빙자’한 술자리 모임을 조직하신 거였다. 남자 교직원들은 불사모 모임에 꼭 참석하라는 교장 선생님의 엄명이 있었고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 선배 남교사들도 그 모임엔 참석했으니, 내가 빠질 명분은 없었다. 나 역시 술을 즐기는 터라, 교장 선생님이 아직은 어려웠던 점을 빼고는 딱히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술자리에 두어 번 참석해서 겪은 강소웅 교장 선생님은, 처음에 받았던 근엄하고 다소 무서운 듯도 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직은 학교에서 교장의 권위가 상당했던 시절이었지만, 교장 선생님과의 술자리에서는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술자리를 빌려 학교 운영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건네시면, 동석했던 선배 남교사들이 때로는 교장이라는 상사가 아닌 동료를 대하듯 직설적으로 의견을 표출하고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에 반박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아직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했던 그때의 나는 그런 대화가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교장 선생님의 술자리는 그저 마시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 그분 나름의 민주적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나 싶다.

  군 복무도 마치지 않은 젊디젊은, 어린 남교사가 마음에 걸리기도 하셨던지, 교장 선생님은 내게 유독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고 이야기도 많이 건네셨다. 학교에 적응은 잘 되는지, 업무나 학생 지도에 어려움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하셨지만, 유독 나만 보면 ‘나이가 스물 몇 살이 된 사지 멀쩡한 남자가 왜 결혼할 신붓감을 못 찾느냐?’라는 타박처럼 들릴 말씀도 무척이나 자주 하셨다. 그때는 솔직히 무슨 교장 선생님이 저러냐 하는 생각도 적잖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만큼 나를 많이 아끼셔서 그러시지 않았나 싶다. 아니, 내가 술자리를 좋아하는 게 눈에 들어오니 그해 늦은 봄부터 교장 선생님은 유독 나를 많이 찾으셨고, 권위의식도 격의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분과의 술자리는 내게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나중에는 학생 지도, 학교 업무 때문에 힘들 때마다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술 한잔하자는 말씀을 먼저 건넸다. 학교 업무에 미숙했던 내가 실수나 시행착오를 거듭해도, 교장 선생님은 술자리 덕담으로 받아주시며 조언까지 건네주셨으니까.

  그런 교장 선생님은 술안주로 간처녑, 생고기, 돼지껍데기, 막창, 대창 같은 요리를 무척이나 즐기셨다. 원래부터 먹성이 좋고 술자리도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런 요리는 사실 생소했는데, 몇 번 술자리에 참여하다 보니 내 식성도 그런 요리를 즐기는 쪽으로 변해 갔다. 한 번은 부모님께 교장 선생님 덕분에 돼지껍데기 맛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부모님 반응이 직장생활하면서 상사에게 스트레스 안 받는 것만 해도 큰 행운인데 너는 교장 선생님은 정말 잘 만났다는 탄성이다. 그해 추석에 교직에 계셨던 어느 집안 어른이 ‘동민이 교사 생활 처음 하며 고생하는 거 아니냐’라고 농담조로 이야기를 건네시니, 그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께서는 쟤는 미식가 교장을 만나 호강하고 있다며 웃으시면서 답을 하신 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듬해 군 복무를 위해 학교를 휴직하면서, 교장 선생님과의 연락은 일단 끊겼다. 입대한 그 다음 해에 교장 선생님은 정년퇴직하셨고, 나는 복무기간이 3년을 넘어가는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했다가 보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던 강소웅 교장 선생님과의 재회는 군 전역을 하고 2년 뒤에 열린 학교 운동회에서 일어났다. 마침 그때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강소웅 교장 선생님과 막역한 사이기도 했고 본인이 교장으로 재직했던 학교이기도 해서였는지, 강소웅 교장 선생님이 운동회에 내빈으로 오셨다. 나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얼른 가서 인사를 드렸고, 나를 기억하던 교장 선생님은 반갑다며 앞으로 연락을 이어가자며 본인의 연락처를 주셨다. 퇴직하신 지 여러 해가 지나서였는지 그분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귀가하셨지만, 그다음 해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초등교사 경력이 사실상 끝난 뒤에도 교장 선생님과는 1년에 두세 번 정도의 연락을 이어 갔다. 다만 아쉬운 점은, 통화할 때마다 대구 오면 연락하라는 말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부고를 받을 때까지 직접 만나 뵙고 인사드리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하고 대학원생, 시간강사라는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 갔으니 마음의 여유가 크게 줄어든 탓이 아니었나 싶다.

  부고를 받은 그해 겨울에 나는 결혼을 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살아 계신다면 80대 초반일 강소웅 교장 선생님이 들으셨다면 본인 일처럼 기뻐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부고를 들었을 무렵 나는 초등교단을 떠난 지 여러 해 지난 데다 여러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던 터라 조문을 가지 못했는데, 그게 아직도 내게는 마음의 빚처럼 남아 있다.

  부고를 받고 나서 교장 선생님의 성함을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고인은 퇴직하고 나서도 퇴직교사들의 봉사단체 사무국장을 지내고 사범학교 동기회 총무로 오랫동안 봉사하시는 등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나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다 명이 다해서 가니, 달리 여한이 없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는 인터넷 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은 일찍 세상을 떠나시기는 했지만, 보람 있고 즐거운 삶을 살다 가셨으니 그래도 행복하게 살다 가셨다고 봐도 될 듯하다. 비록 조문을 가지 못하는 결례를 저질렀지만, 뒤늦게나마 이 글로 초임교사 시절의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 나중에는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내게 전화통화로 응원을 해 주셨던 강소웅 교장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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