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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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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ジョゼと虎と魚たち」 91/100


그녀는 지쳐, 그녀에게 남은 앨런에 대한 사랑과 도망치려는 욕망을 분리할 수 없었다.

Epuisée, elle ne parvient pas a dissocier ce qui lui reste d’amour pour Alan de son désir de fuir.

프랑수아즈 사강 (Françoise Sagan, 1935-2004) - 《신기한 구름 (Les Merveilleux N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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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 딜러로 일하는 츠네오. 손님들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한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벌써 십여 년째 유모차를 끈다는 노파의 유모차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이야기. 츠네오가 개를 산책시키던 어느 날인가, 그 소문 속 할머니의 유모차가 내리막길을 굴러 츠네오의 앞에 멈추어 서고, 열어본 유모차 속에는 한 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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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이름은 쿠미코. 그녀는 고등어를 구우며 자신을 조제라고 소개한다. 츠네오는 그런 그녀를 조제라고 부른다. 그녀는 의외로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은 것들을 안다. 할머니가 주워놓은 누군가가 버려둔 책들을 그녀는 전부 외워버린 정도로 탐독했고, 《한 달 후, 일 년 후 (Dans un mois, dans un an)》의 속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누군가가 그 책을 버려주기만을 기다리며 읽지 못하고 있었다. 츠네오는 그녀를 위해 속편을 구해다 주고, 처음으로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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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는 조제를 위해 유모차에 킥보드를 달아 그녀와 거리를 쌩쌩 달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츠네오가 중심을 잃고 유모차와 함께 강가에서 굴러 떨어지고, 넘어진 조제는 츠네오와 구름을 올려다본다.

조제가 모습을 내보이고 다녔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알아채고 말고, 할머니는 조제를 내쫓으며 쿠미코를 향해 병신은 병신답게 있어야 한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들키면 어쩔 뻔했냐며 나무란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에게 다리가 불편한 손녀가 있다는 것을 이미 모두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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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는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시에서 집을 고칠 수 있게 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보수공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사업에 신청한다. 할머니와 조제가 사는 집은 보수공사에 들어가고, 조제와 츠네오는 카나이 하루키라는 고등학생이 버려둔 교과서 속에 끼어있던 특이한 취향의 성인 잡지를 보며 웃음꽃을 피운다. 계속해 하루키의 교과서와 공책 속 이런저런 잘못된 점을 찾으며 대화를 나누던 둘 사이에는 야릇한 공기가 흐르고, 둘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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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도 잠시. 츠네오의 대학 친구이자, 츠네오와 미묘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던 카나에가 공사 중이던 조제의 집을 견학하고 싶다며 찾아온다. 카나에가 츠네오에게 건네는 말들을 듣게 된 조제는 츠네오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쉽게 남들에게 했음을 알게 된다. 이에 조제는 마음이 상하고, 츠네오가 타코야키를 사들고 오지만, 조제는 배신감을 삭이지 못해 창문에 마구 책을 집어던지고 소리 지르며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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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는 오토바이에 앉아 허망한 눈빛으로 비를 맞는다. 조제와 멀어지게 된 츠네오는 카나에를 안는다. 그러나 츠네오는 카나에와 함께 있을 때조차도 어딘가에 정신이 온통 팔린 듯 계속해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 채, 붕 뜬 채일뿐이다.

그래도 적당히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츠네오였지만, 신입생 환영회 날 카나이 하루키라는 신입생의 이름을 듣자 조제가 주워와 읽던 교과서와 성인 잡지에 적혀있던 이름을 떠올린다. 만취한 츠네오는 하루키를 불러 그의 성적 취향을 묻고, 그가 책들의 주인임을 확신하자 그의 뺨을 때리고 웃기를 반복하다 갑작스레 돌변해 소리 지르며 잊으려고 노력하던 조제를 다시 떠올리고 만 것에 대해 애먼 하루키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츠네오는 조제의 집을 고쳐주었던 회사에 찾아가 일자리를 알아본다. 그러던 중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츠네오는 황급히 조제의 집에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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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츠네오의 걱정보다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를 따르며 할머니의 장례식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끝났다고 말한다. 장 보는 일도 복지과 사람들이 일주일에 몇 번 와서 도와준다고. 그럭저럭 살만하다고. 그렇게 말한 그녀였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어 옆집 아저씨가 젖가슴을 만지게 해 주면 쓰레기를 치워주겠다고 했으며, 만지게 해 주었더니 정말로 쓰레기를 치워준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츠네오는 적잖이 당황해 다른 방법들을 제시하지만, 조제는 자신을 변호하다가 왜 네가 쓰레기 버리는 것까지 참견하냐며,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츠네오에게 가버리라고 말한다.

츠네오가 떠나려고 하자 조제는 츠네오의 등을 때리며 흐느끼고, 원망 섞인 목소리로 가란다고 진짜 가버릴 놈이라면 빨리 가버리라 말한다. 그런 조제를 츠네오는 감싸 안고, 조제는 거짓말이라며 있어달라는 약한 본심을 드러내 보인다. 둘은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마음을 확인하고 진한 키스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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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찾아간 동물원의 호랑이 우리 앞에 서서 좋아하는 남자가 생긴다면 이런 식으로 가장 무서운 것을 보고 싶었다며, 만약 생기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를 볼 수 없더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보게 되었다며, 츠네오에게 감사한 줄 알라고 말한다.

츠네오는 동생을 찾아가 조제를 부모님께 소개할 계획을 세운다. 킥보드를 단 유모차는 고장 나 더 이상 고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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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네오의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츠네오는 코우지에게 차를 빌리고, 차를 빌려주러 온 코우지가 조제에게 츠네오와 결혼하냐고 묻자, 그럴 리가 있냐며 부정해 버린다.

나들이에 나선 둘은 즐거워 보인다. 삶아 껍질을 전부 벗겨낸 계란, 봉지에 든 전병 한 팩과 밀감, 그리고 녹차까지.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안내 음성에도 조제는 신기해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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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아쿠아리움에 도착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아쿠아리움은 휴관 중이었다. 조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떼를 쓰며 어떡할 거냐고 짜증을 부리고, 생떼를 쓴다. 츠네오는 지친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잠시 휴게소에 들렀을 때, 조제를 업은 츠네오는 휠체어를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묻지만, 조제는 네가 업어주면 된다고 말한다. 츠네오는 너무하다며 웃어넘긴다.

츠네오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본가에 가기로 한 약속을 무른다. 동생이 지쳤냐고 묻지만, 츠네오는 대답하지 않는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츠네오는 장애인 화장실 문을 열고 미소 지으며 조제를 바라본다. 조제는 웃는 얼굴로 보지 말라 말하며 휴지를 던진다. 츠네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 들어와 조제 앞에 서더니 무너지며 그녀를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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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다시 차에 타고, 내비게이션은 안내를 시작하지만 조제는 그걸 꺼버리고 바다로 가자고 말한다. 바다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바다에 조제는 신나 하고, 둘은 바닷가를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해가 지고, 숙소를 향해 가던 중 물고기 그림이 그려진 간판을 발견한 조제는 그리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둘은 섹스하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 같은 조명을 보며 조가비 모양 침대에 걸터앉아 조제는 츠네오에게 눈을 감아보라 말한다. 무엇이 보이냐는 질문에 츠네오가 그냥 깜깜하기만 하다고 답하자 조제는 말하기 시작한다.

그곳이 예전의 내가 살던 곳이라고. 깊고 깊은 바닷속. 외로웠겠다는 츠네오의 말에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그저 천천히 천천히 시간이 흐를 뿐이지 별로 외롭지 않다 말하는 조제. 그러나 두 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거라며,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난 길 잃은 조가비처럼 데굴데굴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만, 그건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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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이 지나고 둘은 이별한다. 츠네오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담백한 이별이었다 말한다. 조제는 이별 선물로 하루키의 성인 잡지를 건넨다. 츠네오는 이별의 원인은 단 하나뿐이라며, 자신이 도망쳤노라 말한다.

돌아가는 길, 츠네오는 카나에를 만난다. 카나에가 대수롭지 않게 밥을 해주겠다고 말하자, 츠네오는 눈물을 터뜨리며 길에 무릎 꿇고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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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장을 본다. 혼자 남은 집은 적막하다. 고등어를 반 마리만 굽고, 여전히 조리대 앞 발판에서 가볍게 다이빙한다. 카메라의 시선 밖으로 조제가 사라지고, 빈 주방만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때때로,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것과 작별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까지 떨쳐내야만 한다. 한쪽이 무른 귤은 버려야만 하는 것처럼, 썩기 시작한 사랑을 포기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귤의 성한 쪽만 쪼개는 것과 달리, 사랑의 괴저부 만을 깔끔하게 절단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사랑을 도려내고 난 자리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거대한 공동으로 남고는 하며, 별것 아닌 몸짓에도 자꾸만 들쑤셔져버리고 말아 참기 힘든 격통으로 찾아오고는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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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된 무기력감 때문일까, 혹은 감정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많은 것들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간혹 이와 정반대로 여과하지 않은 감정을 분출하듯 터뜨리기도 한다. 병신은 병신답게 있어야 하며, 일도 못하면서 남들 노는 것처럼 놀아서는 안된다는 할머니의 말에도, 가슴을 만지게 해 달라는 옆집 아저씨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그녀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는 한다. 차를 빌려주러 온 코우지가 츠네오와 결혼하느냐고 묻자 그럴 리가 없다며 체념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 그건 그녀의 무기력감과 낮은 자존심이 현재의 행복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 자신의 기대감을 낮추려는 시도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츠네오가 조제를 찾아갔을 때, 조제는 츠네오에게 괜한 자존심을 부린다. 모든 것이 괜찮은 양 무덤덤한 척하고, 츠네오의 사소한 말에도 괜한 자존심을 앞세워 화를 낸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그녀의 방어기제로, 자신의 약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던 그녀의 허장성세일 뿐이었다. 츠네오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녀가 진심을 끄집어내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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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마주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마음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가장 두려운 것. 그러나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처음으로 드러내게 되는, 그렇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내밀한 곳에 감추어 자신도 보지 못했을 자신의 진실되고 연약한 마음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는 그와는 정반대 되는 성질의 마음 또한 숨어있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여물지 못한 자기주장. 아쿠아리움에서 보여주는 미성숙한 모습과도 같이 조제는 의사 표현에 있어 절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러한 모습은 츠네오를 힘들게 한다.

결국 츠네오는 지쳤기라도 했냐는 동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은 채 무릎 꿇은 채 무너진다. 조제는 이별이 머지않았음을 느끼며 그에게 해변으로 떠나자고 말하고, 침대에 앉아 츠네오가 사라지게 되는 것을 가정하는 독백을 내뱉는다. 어쩌면 바다에 가자며, 물고기의 성에 가자며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츠네오가 확실히 자신을 떠나버리도록 만드는 조제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제는 만남의 시작부터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회피하려고 하며, 무언가 체념한듯한 모습이다. 쉽게 상처받고, 사람과의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 몸의 병은 마음의 병을 낳았다. 자꾸만 기대감을 낮추는 방식으로 상처받지 않으려 하고, 이러한 방식은 자신의 기대감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적용되어 츠네오는 이를 버겁게 느낀다.

그렇기에 조제가 츠네오와 결혼할 리는 없다고 한 말은 그리스식 신탁처럼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었다.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아들인 오이디푸스를 죽이려 한 것으로 인해 결국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를 살해하는 파국으로 치달은 것처럼. 츠네오는 자신이 도망친 것이라고 말하지만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은 조제였다.

조제는 츠네오가 자신이 제멋대로 구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바다로, 물고기가 그려진 모텔로 가자며 즉흥적이고 제멋대로 군다. 그녀는 츠네오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도망치는 조제, 츠네오는 그저 조제를 따라가다 지쳐 뒤쫓기를 포기하고 도망친 것뿐이다.

또 어쩌면, 츠네오는 쿠미코에게 필요한 존재였을 뿐, 조제에게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츠네오는 말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라고. 내가 조제와 만날 일은 이젠 두 번 다신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쿠미코는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고, 조제만이 남았기에 쿠미코의 애인 츠네오는 조제와 만날 일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조제에게 있어 이별은 그녀 자신이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결말인 것이다. 츠네오는 밥을 해주겠다는 카나에의 말을 듣곤 조제를 떠올리며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한 채 오열하고 말지만, 조제는 밥을, 그것도 츠네오에게 구워주었던 것과 같은 고등어를 이제는 자신의 몫만 구워내면서도 가볍게 조리대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것도, 그녀에게 있어 사랑의 끝은 사랑이 시작되기 앞서 미리 받아들여둔 결말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담백한 이별. 그것은 조제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그녀에게 있어서만 깔끔한 뒷마무리로 남는다.


쿠미코는 조제라고 불리기를 원했고, 츠네오는 그런 그녀를 조제라고 불러주었다.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1935-2004)의 소설 《한 달 후, 일 년 후》와 《신기한 구름 (Les Merveilleux Nuages)》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그녀는 무척이나 즉흥적이면서도, 또 행동력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사랑은 유약하다 생각하는 그녀는 이별에 거침없으며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쿠미코가 조제로 불리우고 싶었다는 것은, 그녀가 늘 외로운 존재로 형상화되어 버린 쿠미코의 이미지를 버리고, 조제를 덧씌우고 싶어 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이름에는 힘이 있다. 하나의 몸짓을 호명할 때, 그것이 내게 와 꽃이 되듯. 고치를 찢고 날아오르는 것을 애벌레라고 부르지 않듯. 새로이 탄생한 존재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고, 그렇게 부여된 새로운 이름은 재탄생을 축복하는 세례이자 대상이 완벽히 변모했다는 언어적 증거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츠네오가 그녀를 조제라고 불렀을 때, 그녀는 무기력한 쿠미코에서 탈피하기 시작해 진짜 조제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타인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열등감과 무기력함을 덜어내고, 자신만이 있던 세상에 타인을 들여놓는 변태의 과정. 그렇게 유모차 속에서 태아처럼 웅크려있기만 했던 조제는 하나의 독립적인 객체가 되어간다.

새는 어미가 자신을 품어주지 못할 정도로 커졌을 때 둥지에서 떠난다. 조제가 츠네오를 떠난 것처럼.


전반적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들을 오마주한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강변에서 넘어진 조제가 저 구름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은, 사강의 소설 속 조제가 미국을 떠나 프랑스로 돌아오며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며, 조제와 이별한 후 츠네오가 자신이 도망친 것이라 말하는 대사는, 신기한 구름 속 조제가 계속해서 앨런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관람 일자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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