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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파묘 (2024)」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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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55/100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금강반야바라밀경(वज्रच्छेदिकाप्रज्ञापारमितासूत्र)


화림과 봉길은 하나의 의뢰를 받는다. 미국에 사는 한 부자의 아들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곧 그들은 이것이 묫바람에 의한 일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풍수사 상덕을 찾아간다. 그렇게 찾아간 무덤은 악지 중의 악지. 마지못해 일을 받은 상덕은 파묘를 시작하지만, 관이 열리자 그 안에서 나온 험한 것이 의뢰인의 가족들을 해치기 시작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을 불태우지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상덕은 눈치채고, 무덤 속에 또 다른 관 하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쇠사슬로 묶여 선채로 파묻힌 관. 이상하다는 생각에 상덕과 일행은 그것을 불태우기 위해 가지고 나온다. 그러나 한밤중에 관 속에서 무언가가 나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동아시아의 민간신앙들은 공유하는 점들이 많다. 초자연적인 행위를 통해 신격을 대리하는 샤머니즘적 성향, 자영적 존재를 숭배하는 애니미즘적 성향, 자연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적 성향에 도교와 불교, 그리고 유교의 영향을 받아 여러 종교관들이 혼재되어 있고, 이로 인해 신으로 모시는 대상 또한 다양하다.

그렇기에 비교적 진화된 형태의 종교들,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이 그러한 것과는 달리 민간에서 섬겨지는 신들은 선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의 무교와 일본의 신토는 이러한 악신 혹은 악귀에 대한 대응 방식에 있어 차이를 가진다. 한국의 경우 악한 존재들을 성불시키거나 퇴치하는 것에 주력하는 반면, 신토에서는 그러한 방식에 더불어 악귀들을 봉인해 약하게 만들거나, 혹은 악신을 모셔 그들에게 악행을 하지 말아 달라 당부하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일본의 신이 도덕적인 선악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존재로 상정되기 때문으로, 악한 존재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면 신격이 상승하여 신이 복을 내리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쿠멘콘모큐비노키츠네(白面金毛九尾の狐), 백면금모구미호, 또는 타마모노마에(玉藻前)로 불리는 구미호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요괴 중 하나이다. 일본의 제74대 천황이었던 도바 덴노(鳥羽天皇)의 곁에 나타난 타마모노마에는 총명하고 아름다워 도바 덴노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고, 그는 그녀를 곁에 두며 신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마모노마에를 곁에 둔 뒤로부터 그는 병에 들었고, 그는 병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음양사이자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손인 아베노 야스나리(安倍泰親)를 부른다. 아베노 야스나리는 타마모노마에가 병의 원인임을 알아채고,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난 타마모노마에는 구미호로 변해 도망친다. 도망친 타마모노마에를 아베노가 쫓았고, 결국 나스노(那須野)에서 타마모노마에는 살해당한다.

살해당한 타마모노마에는 독석으로 변해 자신 주위에 다가오는 자들을 전부 죽여버렸고, 이로 인해 이 돌은 살생석이라고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훗날 한 스님이 이 살생석을 파괴하고, 파괴된 살생석의 조각들은 일본 각지에 흩어졌다고 전해진다. 현재 일본 도치기현의 한 마을에는 이 살생석의 조각이 모셔지고 있으며, 매년 위령제를 지내 살생석이 해를 끼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런 차이점은 영화 속에서 혼령과 정령으로 구분되어 묘사된다. 혼령은 육신을 가지지 못했기에 결국 인간을 이길 수 없으나 수육한 정령은 간을 빼먹는 등의 방식으로 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화림은 이들을 없앨 수 없다고 말한다.


극 중에서 나타난 정령은 도깨비(おに)로 묘사된다. 씨름을 좋아하고 도토리묵 등 먹을 것을 탐하며, 장난기가 많고 천박한 존재로 묘사되는 한국의 도깨비와는 달리 일본의 오니는 악한 존재이다. 붉은 얼굴에 머리에 돋아난 뿔, 뾰족하고 긴 송곳니. 사람들을 죽이거나 잡아먹는다고 알려진 오니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형상화된 존재였다.

파묘에 등장하는 오니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죽은 무장으로 보여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숨을 거둔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발생하였고, 두 세력이 맞붙은 것이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였다.

신토에서는 조상신을 섬긴다. 죽은 자의 영혼이 되돌아왔을 때, 이를 섬김으로 그 신격이 상승하면 그것이 곧 신이 된다는 믿음으로, 그러한 조상신들 중에서는 무인들 또한 있었다. 이러한 무인들은 종종 그 포악함으로 인해 오니라는 별명이 붙고는 했고, 이후 신격화되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오니의 이미지로서 섬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장수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섬겨졌다.


파묘는 이러한 신토의 신앙과, 일제가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도시괴담을 적절히 결부하여 신선하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외세의 침략이 형상화된 오니와, 조선을 침략한 일제. 신체로 모셔진 장수의 뱃속에 칼을 넣어, 그 관을 세워 묻음으로 그 신이 쇠말뚝 그 자체가 되었다는 플롯. 침략자의 메타포 그 자체가 지맥을 끊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니와 코스믹 호러를 결부시킨 부분 또한 흥미로웠다. 약간은 조악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인해 퀄리티적인 측면에서 조금 불만족스럽기는 했지만, 외세의 침략이 형상화된 오니가 거대하고 압도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그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화림과 봉길은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오니에 맞서는 상덕 일행은 해방자로서 묘사된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의 번호판은 0815로 광복절을 떠올리게 한다. 음양오행에 있어 정반대되는 속성을 이용해 오니를 무찌르는 그들은 침략자로 인한 긴장 상태를 해소시킨다.


전반적으로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한국의 토속, 민속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극에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흉내 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철저히 고증한 것이 눈여겨볼 만한 요소였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역설하는 것에 너무 힘을 주어 후반부로 갈수록 한국적인 요소보다는 일본적 요소들의 향취가 짙어져 버렸고, 그러한 부분이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나리(稲荷)와 우카노미타마노미코토(倉稲魂命)는 일본의 곡물신으로, 현재는 동일한 신으로서 모셔지고 있다. 오사카 이즈미시에 위치한 쿠즈노하이나리신사(葛葉稲荷神社)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베노 야스나(安倍保名)라는 이름의 남자가 이나리 신을 모시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베노는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흰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하고, 여우를 지켜주기 위해 사냥꾼과 싸우다가 크게 다치고 만다. 그 흰 여우는 보통 여우가 아닌 우카노미타마의 식신이었고, 그 흰 여우는 쿠즈노하(葛の葉)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둔갑하여 아베노를 극진히 간호해 준다. 이윽고 둘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여우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여우라는 것을 눈치채고, 들키고 만 쿠즈노하는 그 길로 사라져버린다. 떠나기 전 쿠즈노하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지혜의 구슬을 남기고, 아이는 장성하여 음양사가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아베노 세이메이(安倍晴明)이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일본 최고의 음양사로 뽑히는 인물이다. 음양사란 음양오행을 기초로 한 음양도를 이용해 풍수지리 등을 파악하는 관직의 하나로, 천문과 기상, 지리 등을 연구하는 직업이나, 이를 바탕으로 도술 등을 부리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극 중에서 묫자리를 추천해 주었던 음양사가 사람이 아니라 여우 새끼일 것이라고 한 것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또한 묫자리에 여우는 상극이라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의 법명 기순애는 여우를 뜻하는 일본어인 키츠네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 여우로 묘사되는 존재가 묫자리를 봐주었으니, 좋은 자리일 리가 없는 것이다.


관람 일자


2024/02/22 - 메가박스 검단 리클라이너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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