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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부력 (2019)」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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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oyancy」 60/100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본뜬 존재들이며, 살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Tutti siamo riflesso dell'immagine di Dio e siamo convinti che non possiamo tollerare che l'immagine del Dio vivo sia soggetta alla tratta più aberrante.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 (1936- ) - 2014년 국제 노예제 철폐의 날 연설 中


「부력」은 이러한 어업에서의 노동 착취와 인신매매, 그리고 아동 노동을 그려낸 작품이다. 캄보디아에 살던 14세 소년 차크라는 어느 날 태국에서 일을 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브로커에게 찾아간다. 그러나 태국으로 이동할 교통비가 없어 이를 외상하고자 했던 차크라와 케아를 브로커는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 사람들은 트럭에 서로 포개어진 채 실리고, 그 위로 방수포를 덮어 태국으로 밀입국한다.

브로커는 그들이 파인애플 농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차에서 내려보니 그들은 항구에 있었다. 케아는 이것이 사기라는 것을 직감하고 도망치려 하지만, 브로커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차크라는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배에 오르고, 그물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들을 삽으로 어창에 퍼 담는 일을 하게 된다.

어선의 생활은 열악했다. 동이 틀 때부터 한밤중까지 일해야 했지만, 식사로 제공되는 것은 한 컵의 맨밥과 더러운 물뿐이다. 그렇게 고된 작업을 하던 중 한 선원이 탈진하자, 그들을 감시하던 롬 란은 쓰러진 선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고, 그래도 일어서지 못하자 그대로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후로도 도망치려는 사람의 몸에 밧줄과 돌을 묶어 바다에 빠뜨려버리는 등, 일꾼들을 쉽게 죽여버리는 모습을 보며 케아는 배에서 살아나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케아는 롬 란을 살해하기 위해 그를 배에서 밀어버리지만, 선장이 쏜 총에 그는 간단히 제압되고 만다. 분노한 선장 일행은 다른 배를 불러 그의 양 팔과 양 다리를 각각 다른 배의 모터에 묶고, 차크라를 불러 배를 전진시키도록 한다. 케아는 사지가 찢어져 죽고, 차크라는 구토한다.

차크라를 지켜주던 케아가 사라지자 다른 일꾼들을 차크라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괴롭히기 시작한다. 어느 날 밤, 차크라는 자신의 잠자리를 빼앗고 자신 몫의 밥까지 먹은 한 일꾼을 나무 몽둥이로 내리쳐 살해한다. 그의 살해 행각은 롬 란에게 들통나고, 롬 란은 차크라가 죽을 때까지 도망치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물에 정강이뼈가 함께 걸려 올라온다. 밤이 되자 차크라는 발전기를 고장 내고, 이를 고치러 온 선원을 살해한다. 이후 선장실에서 밤새 선장을 기다리던 차크라는 선장도 살해하고, 눈치채고 선장실로 올라오려는 롬 란까지 죽이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된 차크라는 캄보디아의 고향 마을로 돌아와 김을 매고 있는 아버지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극 중에서 케아는 이곳이 죽음의 바다라고 말한다. 살아서 나갈 수 없는 죽음의 바다. 그 말대로 선원들은 일꾼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물에 사람의 정강이뼈가 걸려 올라오기도 하고, 바다 위에 누구인지도 모를 시체가 떠다니기도 한다.

이러한 죽음의 바다는 비단 영화 속 세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2015년 3월 24일, 미국의 비영리 언론사 AP통신은 하나의 기사를 내놓는다. 태국의 노예제 어업을 통해 어획된 수산물들을 추적한 결과, 월마트와 시스코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을 통해 유통되고 있었기에, 당신이 산 물고기들은 노예제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제목의 기사. 인도네시아의 한 섬마을 벤지나, 그곳에서는 미얀마에서 온 노예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으며, 그 물고기들은 태국을 거쳐 전 세계로 팔려나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는 것.

벤지나의 노예들은 어업 회사가 어린이와 장애인을 고용해 노동하기도 하였으며, 수년간 임금을 전혀 주지 않았고, 마약을 먹여 이주민들을 납치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살인 또한 빈번히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해당 보도 이후 인도네시아 해양자원수산감시국의 아셉 부르하누딘(Asep Burhanuddin)은 그들을 구조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320명가량이 벤지나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이 노예제를 통해 생산되었다는 일련의 기사들은 전미에 충격을 가져오기 충분했다. AP 통신의 최초 보도가 기사화된 이후로 유엔 국제이주기구는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 약 2000여명의 노예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2016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어린이나 노예가 만든 생산물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며 86년 만에 미국에서 노예제를 통해 생산된 생산물의 유통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해당 기사는 2016년, 퓰리처상의 수상이 시작된 지 100주년 되는 해에 공공서비스 부문에 선정되어 수상하였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어업에서의 노동착취와 노예제는 완벽하게 근절되지 못했고, 국제인권감시기구에 따르면 태국 어선들의 노동 착취 문제는 일부 개선이 있었을 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이다.


영화는 각각의 암울한 장면들 사이 공중에서 촬영된 원경의 모습을 아름답게 롱테이크로 비추어주며 서사의 처량함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처량함은 차크라를 연기한 삼 행의 눈빛 연기를 통해 더욱 강조된다. 그의 무기력하면서도 슬프고, 또 어딘가 모르게 형형한 분노가 서린듯한 눈빛은 차크라라는 캐릭터와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차크라가 첫 살인을 저질렀던 장면을 뽑고 싶다. 차크라는 극중 내내 체제에 순종적이고 무기력한 인물로 묘사된다. 선원들의 온갖 폭언과 만행을 참아온 그가, 그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계획적인 살인을, 그것도 다른 일꾼을 죽이는 장면은 조금은 핍진성이 결여되어 있지 않나 싶어 아쉽다.

물론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는 선원들을 전부 죽여버릴 계획을 세우기에, 이 시점부터 그가 더는 소극적인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치로서는 훌륭히 작용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연관되는 장면으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을 매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차크라는 아버지에게 가지 않고 다시금 길을 떠나며,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그것이 과연 아들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것은 소년이던 차크라가 더럽혀졌고,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관람 일자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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