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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기쿠지로의 여름 (1999)」

by 전율산

「菊次郎の夏」 40/100


내가 지금 느끼는 고통은 내가 느꼈던 행복이었다.

The pain I feel now is the happiness I had before.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 - 《헤아려 본 슬픔 (A Grief Observed)》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꼬마 마사오는 할머니와 단둘이 도쿄에서 살고 있다. 여름방학이 찾아오고, 할머니가 일하러 나가자 마사오는 친구들을 찾아다니지만, 친구들은 전부 가족들과 휴가를 떠났다. 그러던 와중 서랍 속에서 발견한 어머니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주소. 단돈 2천 엔을 들고 마사오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당연히 여행길이 순탄할 리는 없고, 돈을 뺏길 뻔한 마사오를 동네 아주머니가 도와주며 다케다 아저씨에게 돈을 쥐여주고는 마사오를 토요하시시에 있는 어머니의 집까지 데려다주라 하며 둘의 여행은 시작된다. 입이 험한 아저씨는 경륜에 돈을 전부 탕진하고, 둘은 히치하이킹하며 주소 속 장소에 도착하지만, 문패 속 어디에도 어머니의 성씨는 없다. 두리번거리며 이름들을 확인하던 때, 한 집에서 마사오의 어머니가 나오고, 다케다는 그녀를 부르려 하지만, 뒤따라 나오는 남편과 아이를 보고 마사오의 어머니가 마사오를 버렸음을 깨닫는다.

자신 또한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기에 마사오가 받았을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다케다는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마사오를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다케다는 축제에서 난동을 부리다 두들겨 맞기도 하고, 히치하이킹하던 중 만났던 시인, 폭주족들과 캠핑을 즐기는가 하면,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가 머무는 요양원을 찾아가 먼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만 보며 씁쓸해하기도 한다.

그렇게 즐거운 여름날들이 지나고, 어머니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결 밝아진 꼬마와 함께 다케다는 도쿄로 돌아온다. 헤어지는 길, 꼬마는 아저씨의 이름을 묻고, 그는 자신의 이름이 키쿠지로라 밝힌다. 그렇기에 아이를 위해 떠난 이 여행길은 마사오의 여름일 뿐만 아니라 키쿠지로의 여름이기도 했으며, 그에게 의미 있는 날들이 되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코미디언 겸 감독 키타노 다케시가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작품으로, 꼬마와 아저씨의 여행을 그려낸 로드 무비이다. 키타노 다케시가 주연을 맡은 다른 영화들의 등장인물들처럼 다케다 또한 거칠고 불량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코미디언답게 그런 모습들조차 유머와 과장, 풍자와 해학으로 만들어내며 잔잔하고 아릿한 분위기가 주는 무거움을 가볍게 환기시켜준다. 그를 연기파 배우라고 칭하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연기한 다케다라는 캐릭터는 정말 어디엔가 그런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 영화가 마치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며, 종종 그가 내비치는 그의 약한 모습들에 더욱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의 주제가「인생의 회전목마」, 「마녀 배달부 키키 (1989)」의 주제가「바다가 보이는 마을」 등을 작곡한 세계적 작곡가 히사이시 조. 이 영화의 필름 스코어를 편곡한 것이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Summer」로, 무거운 이야기에 추억처럼 깔리우는 가볍고 쾌활한 선율은 영화에 가득 찰뻔했던 습기를 날리고 어느 쾌청한 여름방학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한 아련한 추억으로서 느껴지도록 만든다.


관람 일자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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