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서브스턴스 (2024)」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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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bstance」 78/100



인간의 끝없는 제국주의는 결코 충족될 수 없다.

Man's boundless imperialism is never satisfied.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1973) - 《도구적 이성 비판 (Eclipse of Reason)》


한때 유명했던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나이가 들어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강제로 하차하게 된다. 그녀는 분노하고, 그러던 와중 '더 서브스턴스'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알게 된다. 주사 한 대만 맞으면 젊고 아름다운 새로운 자신이 복제된다는 서비스. 엘리자베스는 주사를 맞고, 그녀에게는 수라는 이름의 또 다른 자신이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부리면 벌받아요' 과의 이야기가 다 그렇듯, 수가 된 엘리자베스는 더 서브스턴스의 이용 수칙을 어기고, 엘리자베스의 의식과 수의 의식이 분리되기 시작하며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는다.

비주얼적으로 굉장히 강렬한 영화가 나왔다. 올해 본 신작 영화 중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 (2023)」 다음으로 훌륭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영화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중 대부분의 쇼트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색이 사용되고 있다. 자칫하면 쇼트들이 산만해져, 관객들의 주의를 흩트려뜨릴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서브스턴스」에 사용된 색들은 그 색감 간의 대비가 선명하고 강렬하지만, 적절히 정돈되어 있다. 이러한 색감의 사용이 영화 전체에 흐르는 모던한 팝아트 느낌을 선사했다. 더불어, 강력한 자기주장이 있는 색들을 사용하며 영화 전반에 놓인 강렬함과 잘 어우러지게 한 것 또한 좋았다.

특수 분장과 효과 또한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실리콘 질감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의 기괴하고 불쾌한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현실보다 조금 더 물컹해 보이는 피부 속으로 커다란 바늘들이 푹푹 박히는 장면은 그 현실보다 강조된 질감으로 인해 불쾌감을 더한다.

영화는, 특히 호러 영화는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대상이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바꾸어 말하면 무엇을 카메라에 담아 재현할 것인가를 선택함에 따라 대상으로부터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정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쇼의 프로듀서 하비가 새우를 먹는 장면이 그랬다. 단순히 새우를 먹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음식물이 짓이겨지고 있는 입과 기계적으로 새우 머리를 비틀어 따고 있는 주홍 액체로 더럽혀져 지저분한 손가락을 가까운 거리에서 클로즈업해 보여주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클로즈업은 작중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주삿바늘, 탈락되는 손톱, 뒤틀린 손가락, 뽑히는 치아, 누렇다 못해 새까만 치석이 낀 잇몸 등등. 특히나 하비 역의 데니스 퀘이드가 익스트림 클로즈업 되어 볼록거울 속 세상마냥 뒤틀린 채 미소 짓고, 담배를 피우고, 음식을 섭취하고, 욕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던지는 장면들은 썩 불쾌하다.

「서브스턴스」는 전반적으로 존 카펜터의 「괴물 (1982)」를 비롯하여 많은 호러나 B급 영화들을 오마주하고 있다. 우선 괴물의 외양은 존 카펜터의 「괴물 (1982)」 속 갈라지는 얼굴, 「AKIRA (1988)」 속 비정상적으로 분열하여 비대한 괴물이 되는 시마 테츠오, 「철남 (1989)」 속 점차 괴물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몸을 뒤덮은 호스와 파이프들 -서브스턴스에서는 내장으로 변주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등으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수에게 자신의 시간을 빼앗겨 등뼈가 툭 튀어나와 꼽추가 된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에이리언 (1979)」 속 에이리언의 모습을 닮았고, 등뼈를 뚫고 나오는 서브스턴스의 탄생 또한 에이리언 속 체스트 버스터와 같은 외계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립스틱을 칠해 웃는 표정을 그려둔 엘리자베스의 얼굴 사진으로 만들어낸 마스크는, 특히 둘 모두 웃기를 강요받고 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커 (2019)」 속 조커의 새빨간 립스틱 분장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다. 「스마일 (2022)」또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 상 오마주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밖에도 괴물이 또다시 분열하며 토해낸 내장이 달린 유방은 「이레이저 헤드 (1977)」의 헨리 스펜서의 망상 속 거대한 정자에 대한 오마주로 보인다. 괴물이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는 장면에서「엑소시스트 (1973)」 속 쏟아지는 피의 폭포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바탕 피분수를 뿜으며 소동을 벌인 이후 괴물이 쓰러지며 엘리자베스는 머리만 분리된 채 기어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더 크롤링 핸드 (1963)」 속 기어다니는 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가던 엘리자베스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자신의 명패 위에서 녹아 사라진다. 이때 명패 위에 놓인 엘리자베스의 머리는 마치 아테나의 방패, 아이기스에 박힌 메두사의 머리처럼 보인다.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아테나보다 자신이 아름답다며 으스댄 죄로 괴물이 되었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욕심을 부려 괴물이 되었다. 크게 연관이 있지는 않지만서도 외모가 원인이 되어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연결성을 찾을 수 있겠다.

허나 스토리의 플롯 자체는 전형적인 금기 모티프를 따르고 있어 진부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욕심으로 인해 위험성 있는 일을 벌이고, 금기를 어겨 파국을 맞게 되는 진행은 이젠 식상하다. 하지만 금기를 한 번 어기는 것이 아닌 총 세 번, 7일의 교대 기한을 어겼고, 종료용 주사제를 주사하다가 멈추었으며, 단 한 번만 투약해야 하는 서브스턴스 시작제를 서브스턴스가 맞았다, 어겼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장면들에서 장르를 급격하게 블랙 코미디로 선회하며 의도적으로 긴장을 이완시켰다는 점에서 기존의 금기 모티프와 어느 정도의 차별화는 두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관람 일자

2024/12/12 - 메가박스 송도 컴포트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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