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塔洛」65/100
우리는 아직 인류 문화의 착취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We are yet to have a conscience at all about the exploitation of human cultures.
아서 에릭슨 (Arthur Erickson, 1924-2009) - 캐나다의 건축가
시골의 한 양치기, 타를로가 중국 정부의 명령으로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도시로 내려온다. 그는 신분증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관으로 향하고, 사진관에서는 그에게 머리를 감고 오라 말한다. 머리를 감으러 들어간 미용실에서 만나게 된 여자에게 타를로는 반하게 되고,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타를로는 그녀를 위해 그의 가축들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그의 정체성이었던 땋은 머리를 밀지만, 여자는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 타를로는 신분증을 수령하기 위해 경찰서로 가지만, 경찰서장은 그의 모습이 달라졌다며 사진을 다시 찍어 오라 말한다. 타를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로 향하지만 오토바이가 고장 나 멈춰 서고 만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던 타를로는 폭죽을 손에 들고, 폭발음과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페마 체덴은 암도 티베트의 모습을 카메라에 인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잘 짜인 화면의 구성과 섬세한 오브제의 배치가 각별하다. 많은 장면들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그러한 화면의 구조를 감상하기 좋다. 단순히 미적인 부분 이외에도, 암도 티베트어를 비롯해 그곳의 생활상과 같은 문화적 요소들 또한 잘 녹아있어, 이제는 칭하이가 된 암도의 사라져가는 티베트적 문화에 대한 기록으로서도 가치 있다.
영화는 티베트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국 정부에 의한 티베트 착취를 그려내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산골짜기 오지에 살고 있는 타를로를 찾아내어 신분증을 만들게 시키는, 한국인에게는 당연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국민을 식별하기 위한 신분증을 의무화하는 국가는 드물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행정력과 이를 더욱 강화하려는 시도, 혹은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들어서까지 마오쩌둥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를 달달 암송하는 타를로를 비롯한 장면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티베트를 착취하는 것은 중국 정부뿐만이 아니다. 타를로에게 새로운 문화를 소개해 주고 그를 미혹한 뒤 돈을 훔쳐 달아난 양춰는 흔히 중국 정부를 은유하는, 이 경우 타를로는 티베트에 대한 은유가 되겠다, 것으로 해석되고는 한다. 그러나 그녀를 티베트인에 의한 티베트 착취에 대한 은유로 해석하게 된다면, 조금 더 재미있는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우선 작중에서 타를로에게 신분증을 만들도록 하는 것은 중국 정부이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에 따르며 타를로 또한 중국이 정한 규칙을 따르게 하도록 그에게 명령하는 일은 전부 티베트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진관 주인이 좋은 예시이다. 사진관 주인은 사진을 찍으러 온 타를로에게 머리를 감고 오라고 한다던가, 특정한 장신구들을 벗으라고 하기도 하고, 어떠한 얼굴 표정을 지으라고 명령하기도 한다. 여느 사진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티베트인이 또 다른 티베트인에게 중국의 규칙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티베트인에 의한 티베트 착취를 은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은유가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인물이 바로 양춰이다. 그녀는 티베트인임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식 이름이 아닌 중국식 이름을 사용한다. 중국을 내면화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양춰는 타를로와 동침한 후 그에게 잘 해주고 싶다 말하며, 양을 팔아 돈을 마련해 라싸와 베이징으로 떠나자고 그를 꼬신다. 그렇게 타를로가 양을 팔아 돈을 마련해오자 양춰는 돈을 들고 도망친다.
티베트는 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중국과 티베트의 정체성 모두를 긍정하거나, 중국을 내면화했다. 타를로는 이름보다 '땋은 머리'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다. 그러나 그는 양춰에게 속아 넘어갔고, 양치기였던 그는 양을 팔아버리고 머리를 민다. 양치기 타를로도, '땋은 머리' 타를로도 이제는 없다. 타를로는 더 이상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를 암송하지 못한다.
그러나 갑자기 달라진 그를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경찰서장 도르제는 그저 그가 신분증 속 모습과 다르다며 사진을 다시 찍어오라 명령하고, 사람들 앞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를 암송하게 시킬 뿐이다.
타를로 또한 중국을 내면화 한 개인 중 하나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는 모든 인민은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마오주의의 기본적 규범을 담고 있다. 작중에서 타를로는 내내 암도 티베트어만을 사용하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았기에, 그가 마오쩌둥의 말을 그저 외우고 있을 뿐 이해하지 못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는 중국이 지은 초등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았다. 중국은 티베트어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있으므로, 그가 중국어로 교육받았음을 알 수 있다. 타를로는 그곳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를 배운 것이므로 그가 중국어를 아는 상태에서 그것을 배웠음을, 즉 그는 이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타를로는 영화의 초반에서 양을 치는 자신의 일 또한 인민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렇기에 양을 파는 장면은 그가 인민에 대해 봉사하기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인민을 위해 봉사하기를 포기한 그는 더 이상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为人民服务)》를 암송하지 못한다. 더불어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작중에서 폭죽을 구매했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터뜨린 것은 분명히 폭죽일 것이다. 그러나 폭죽의 생김새도 폭발음도 폭죽의 그것보다는 폭탄의 그것에 가깝다. 폭죽과 폭탄은 대조적이다. 전자는 축하나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만 후자는 노동이나 폭력을 위한 것이다.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 14세의 명령과 티베트 불교적 영향에 따라 독립운동을 위해 무장과 테러 등의 방식보다는 평화 시위와 분신자살 등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티베트 속 폭탄은 굉장히 이질적인 오브제다. 티베트가 무장 투쟁의 길을 가야 한다는 주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페마 체덴은 중국을 내면화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중국미술학원의 영화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중국 영화 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타를로」 또한 중국 정부에 의해 검열된 작품이다. 이러한 인물이 검열까지 마친 영화에서 티베트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가능성이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타를로」는 왜 폭죽이 폭발하며 끝을 맺는가. 의문투성이인 엔딩이다.
관람 일자
2024/12/04 - 연세대학교 언더우드기념도서관 미디어감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