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어귀에 앉아 계시던 어느 노인의 손을 본 적이 있나요? 햇볕 아래에서 주름이 깊게 파인 손. 그 손은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마치 오래된 편지처럼 한 자 한 자 접힌 채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손을 지나치면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 손톱 깎지 말고 그냥 놔두면 안 돼요?”
한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묻습니다. 나는 무심코 웃으며 “왜?” 하고 되물었지만, 아이는 다른 곳을 응시한 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왜 그 아이는 손톱을 깎고 싶지 않았을까? 그냥 둬도 괜찮지 않느냐는, 그 질문은 정말 손톱 때문이었을까?
프로이트와 라캉은 알려줍니다. 때로 어떤 말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보다 그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있다고. 우리는 그 자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손톱 깎지 말고 놔두면 안 돼요?”
이 말은, 나는 내 일부를 조금도 잘라내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놔두고 싶어요. 그런 말일 수 있습니다. 그 아이는 무엇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요? 어쩌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침범당한 느낌, 자기 마음을 잘라내야 했던 경험, 잊혔지만 내버려 두지 못한 시간을 ‘손톱’이라는 낱말 속에 담아 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말은 그렇게 때로는 작은 틈에서 실재를 흘려보냅니다. 우리는 자주, 아이들의 말에 반응하지만 그 말에 담긴 삶의 이야기에 응답하지 못합니다.
아이의 말 한마디, 노인의 손 한 자락, 그 안에 담긴 세계. 다시 말해 말이 멈추는 자리. 그곳이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주목하라고 하는 말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