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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Nov 01. 2023

관음증과 공격성을 한껏 맛보다

더 킬러(The Killer, 2023)


누가 뭘 하는지 빠삭하게 알아야겠고,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은 파괴해 버리고픈 마음.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과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말했듯, 관음증(Voyeurism)공격성(Aggression)은 정신 깊은 곳에 있다. 


이 충동을 쫄깃하게 건드리는 서스펜스를 오랜만에 만끽해 볼까. <세븐(Se7en, 1995) >,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 등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이 만든 이 신작에서는 살인과 폭력을 소재로 현실에선 맛볼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남자 주인공이 마치 "내 일은 이래요" 식 직업 체험용 브이로그(Vlog)를 찍은 듯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인 나 또한 살인자를 관음하는 처지에 놓인 게 아닌가. 남에겐 말 못 하는 이 은근한 호기심을 해소하는 재미란. 이 명감독이 관음증과 폭력을 즐기고픈 관객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아래부터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이 중년 남자는 직업이 킬러일 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성과를 추구하는 모습은 나처럼 평범한 직장인일지도 모른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 킬러(마이클 패스밴더 역). 긴장 상태에서 잠자고 중간중간 자주 깬다. 아침엔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 일에 집중하기도 바쁘니 식사 시간은 최소한으로 한다. 주문하면 바로 나오는 맥도널드 햄버거 세트가 제격이다. 일에 적합한 몸을 관리하려면 알맹이 위주로 단백질만 섭취할 뿐, 빵 덩어리 같은 탄수화물은 버린다. 쓸데없이 사람들 눈에 띄는 건 피곤하다. 독일 관광객처럼 보이게끔 옷을 차려입고 철저한 익명성을 추구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진 단조로운 일상을 반복할 뿐. 원하는 걸 이루려면 권태를 극복할 만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작 <이창(Rear Window, 1954)> 속 주인공처럼, 킬러는 하루 종일 건물 안에 은신한 채, 창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층층마다 커튼이 가려져 있지 않은 베란다 창문을 지켜보며. 암살에 성공하기 직전엔 스마트 워치로 심박을 확인하며 기분을 조절한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할 땐 감정이 개입되는 건 방해가 될 뿐. 그는 침착하게 목표를 조준하려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살해에 실패한다.


아뿔싸, 내가 애석한 건 왜일까. 관객들은 저절로 킬러를 응원하게 된다. 그가 중요한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충동을 철저히 절제하는 모습은 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보편적 태도 아닌가.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원하는 미래 결과를 도출하려고 가능한 모든 변수를 철저히 통제하려는 면모를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내가 현실 감각을 갖고 살인자를 실제로 응원하는 게 아니니 안심하자. 영화를 보는 동안은 내 공격성을 깨닫는 순간이라도 양심에 찔릴 필요는 없다.


이후 줄거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이 킬러가 프랑스 파리에서 암살에 실패한 후 여러 지역을 누비며 자신과 연인을 제거하려는 일당들을 한 명씩 찾아 단호하게 깔끔한 솜씨로 제거해 버리는 내용이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그는 킬러로서 장인 정신을 발휘한다. 매 순간 긴장을 놓치지 않고 얕은 잠을 잔다. 세수를 할 땐 약품을 씻은 자리에 뿌려 흔적을 지운다. 지문이 남지 않도록 조심하는 건 물론이다. 목소리가 노출되지 않게끔 쓸데없는 말은 피한다. 사용한 전화와 오토바이, 총 등 모든 도구들은 사용 즉시 버린다. 룸서비스를 시키면 문고리에 유리컵을 아슬아슬하게 올려놓고 침입자에 대비한 소리 알림을 대비해야만 한다. 이처럼 철저히 군중 속에 몸을 감추며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준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그가 복수하는 과정엔 체력 조절과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한 명 한 명씩 자신을 해치려던 놈들을 찾아내어 살인에 성공하면 비행기나 렌터카로 이동 중 녹초가 되어 쪽잠을 잔다. 목표물인 인간이 내 동정심과 눈물을 자극한다면 이건 위험신호다. 공감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겉으로는 비위를 맞추면서도 내 뒤통수를 노리는 인간을 조심해야 해서다.


철저한 오락 영화로 만들었기에 결말은 관객을 만족시키는 해피 엔딩이다. 침착하고 조용한 킬러가 읊조리는 오디오 에세이를 따라가며 영화는 서서히 관객들을 절정으로 이끌고 간다. 또한 그가 복수를 노리는 인간들을 차례로 만날 때마다 죽음 직전 내보이는 찌질한 모습들도 나름 구경거리다. 저마다 목숨을 구걸하려 아부와 위선, 허풍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 모습에 저절로 조소를 보내는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지난주 10월 25일 CGV에서 단독으로 조용히 개봉을 한 터라 극장에서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곧 11월 10일엔 넷플릭스에도 공개된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11.01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headla.it/articles/UfidOKEpRzt3xM-vDR1E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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