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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Nov 28. 2023

나쁜 놈 옆에 더 나쁜 놈은?

서울의 봄(12.12: The Day, 2023)

어릴 적 두 전직 대통령이란 인간들이 TV 속에서 나란히 푸른색 수의를 입고 법정 앞에 섰을 때 난 혼란스러웠다. 누가 더 나쁜 놈인 건가? 세상 물정을 몰랐던 어린 나이니 이런 질문에 혼자 답을 내리기란 어려웠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당시 어른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욕을 하며 지켜보는 5공 청문회를 따라 보곤 했다. 그들이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청문 대상자가 바뀔 때마다 쌍욕은 물론 손가락을 가리키며 조폭 패거리 우두머리, 똘마니, 이런 식으로 별명을 붙이던 기억이 난다. 그 와중에 정치라곤 전혀 몰랐던 어린 나이에도 잊을 수 없었던 인물은 전두환을 따랐던 장세동, 그리고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던 노무현이었다.


장세동이란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전혀 표정 변화가 없이 동요가 없고 쉬 대답도 하지 않아서 마치 돌덩어리 같다고 느꼈다. 또한 질문자 노무현은 정치라곤 모르는 학생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주 쉬운 문장으로, 시원시원한 말투를 썼다. 항상 어려운 말을 쓰는 정치인과는 다르게 노무현이 하는 말은 어린 학생 입장에서도 이해가 아주 쉬웠다.


당시 확실히 알게 된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탐욕을 꿈꾸는 자들이 저 높은 자리에 떡 하니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이 사회가 굴러가는 방식인 건가? 어린이가 품기엔 무거운 질문이었다.




범죄 사건을

현장 검증하듯 보다



〈서울의 봄〉 개봉한  많은 사람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수년  〈남산의 부장들〉 1987, 〈택시운전사〉 개봉했을 , 혹은 〈그때  사람들〉 개봉했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근현대사 사건  12.12 사태는 보다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까닭이라고 본다.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영화를 일종의 충격(trauma)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본 반응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이나 80년대 민주화 투쟁 등은 12.12에 비해 그래도 꽤 알려졌다. 물론 아직도 전모를 밝히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12.12 사태는 통금 시간대에 갑자기 서울 한복판에 탱크와 무장을 한 군인들이 쫙 깔린 미지의 사건이었다.


이런 까닭에 지금 이 영화는 마치 범죄 수사로 치면 현장 검증 비디오를 보여주는 듯하다. 범죄자를 수사할 때 현장 검증을 하는 이유는 범행을 저지르는 행동 하나하나를 빠트리지 않고 파악하기 위해서다. 누가, 언제, 누구와, 어떤 말을, 한 마디 한 마디씩 주고받았는지, 그런 과정이 범죄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검증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지금 관객들은 12.12 사태를 이번에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셈이다. 이젠 찬찬히 영화를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질문할 수 있다. 이 시각 대에 왜 이 사람은 제대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는지, 왜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았는지, 행동 하나 말 하나를 주목하면서. 물론 영화는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1979년 12월 12일에 도대체 시시각각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좀 더 많이 알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 워치로 충격을 인증하고 있다. 울분과 슬픔 등 충격을 받은 후 기분을 몸으로 느낀 결과다. 이런 챌린지가 나타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알고 보니 순간순간 반란자들을 진압할 만한 기회가 꽤 있었음에도 당시 공직자들 태반은 하지 않았다.


물론 과거 제5 공화국을 다룬 TV 드라마나 시사 언론 자료, 청문회 기록들이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도, 자료도, 희석된다. 이젠 12.12를 직접 겪은 세대와 들어는 본 세대, 전두환이 깡다구는 좋다고 범죄자를 미화할 만큼 역사를 모르는 세대가 분리되어 있다. 이 와중에 역사적 비극에 대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경종을 울리는 영화는 소중해진다.




독재가 남긴, 찌꺼기.

집단 무의식



역사에 충격을 안겨준 사건은 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집단 무의식으로 남는다. 심리학자 융(C. G. Jung)이 말한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은 세대를 거쳐 전수되기도 한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을 거친 후 농담이라도 군인 정신을 미화하는 말버릇은 당대를 넘어 후손인 우리에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독재를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라고 미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 이 공격적인 무의식은 아직도 일부 사람들 뇌리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이런 정신 상태는 가끔은 불쑥 말버릇처럼 튀어나오기도 한다. "정신 차리려면 삼청교육대에 보내버려라", "해병대를 가야 정신을 차리지"라는 일상 속 농담은 어찌 들으면 섬뜩하다.


당시 나 같은 어린이도 5공 청문회를 지켜보며 법도 권력보단 무력한 건지 혼란스러웠다. 사기꾼과 범죄자가 힘을 가지면 호위호식할 수 있는 건지, 지금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나이가 드니 이런 천박한 놈들이 권력을 어떻게 움켜쥐는지는 대강 알겠다.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놈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세를 과시한다. 사적 이익을 위해 우선 통신망을 장악해서 정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학연, 지연, 혈연, 직위를 총동원해서 사람들에게 으름장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가스라이팅 당한 다수는 자기 안위를 우선시했다.




독재는

여론 장악과

탐욕의 합작품



전두환 일당들이 반란을 성공시킨 과정은 히틀러와 괴벨스가 독일을 장악한 과정과 비슷하다. 맨 처음 히틀러는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언론을 장악하지 못해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사람들을 선동하는 연설을 하다가 희한하게 자기 주특기를 발견한다. 바로 언변이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만난 후 짝짜꿍이 되어 나치 독재를 공고히 하려고 언론을 장악했다. 히틀러 참모로서 그는 방송을 통제하고 독일 국민들이 나치 방송을 듣게끔 라디오를 저렴한 가격에 보급했다. 지금 윤 모 세력들이 KBS를 장악하려 하고, 정치 군사 대신 정치 검찰이 활개를 치며, 여론조사로 민심을 재단하려 하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원칙대로 자기가 맡은 본분을 다하니 비로소 1987년 민주화 시위가 가능할 수 있었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 땅에 왔다. 하지만 전두환이 집권하지 않았다면 피를 흘릴 필요가 있었을까. 서울대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기까지 소리소문 없이 이 땅에서는 고문과 납치가 이루어졌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군부가 호위호식한 걸 단죄하지 못한 대가를 우리는 앞으로 치러야 할 것이다. 웬만한 사기를 쳐도 내가 이익이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이 후손에게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으면 그 폐해는 상상하기 조차 싫다.
 

자, 이제 팩트를 정리해 보자.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을 넘어서 전두환, 노태우가 집권했던 시기까지. 이 나라는 한때 군인들이 지배했다. 전두환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군사력으로 누르며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자행했다. 이렇게 전쟁 무기를 동원해서 광주 시민을 학살한 사실은 이동과 언론 통제를 통해 감췄다. 80년대 후반까지 젊은이들은 최루탄을 맞으며 시위를 벌였다. 영화를 보며 민주주의란 결코 쉽게 얻는 게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11.28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headla.it/articles/pKBqzJ6OnWbV9MBChJx0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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