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Monster, 怪物, 2023)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며 잃어버리는 건 뭘까?
'나'라는 존재는 시시각각 변한다. 몇 분 전, 몇 시간 전, 혹은 어제를 살았던 나는 지금 나와 다르다. 경험은 첩첩이 쌓여 과거와는 다른 나를 만든다. 이러다 세상을 바라보는 견고한 시선이 생길 쯤이면 나도 모르게 어른이 된다. 이쯤 되면 어린 시절의 나와는 이별이다.
긴 시간이 지나 내가 옛날과 다르다는 걸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하지만 눈과 귀가 흐려지면 예전과 바뀐 내 모습을 알기 힘들다. 이럴 땐 좋은 거울이 필요하다.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깨끗한 거울, 바로 이 영화가 그렇다. 《괴물》은 마치 지금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다. 나이가 들 수록 마음에 묻은 때를 발견하게끔 해준다. 동시에 내가 잃어버린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 상실감은 뭘까. 아마도 아이가 어른이 되면 잃어버리는 건, '아무것도 몰랐던' 나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유치한 단어로, '순수'라고 해보자. 말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가 내 안에서 사라졌음을 깨닫는 순간, 슬픔은 조용히 밀려온다.
사람은 사실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나를 모르니 남은 더더욱 알기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와 친해질수록 우린 어쭙잖게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곤 한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를 제일 모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모자(母子) 관계처럼,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 역)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 역)를 오해한다. 그녀는 세상 다정한 엄마처럼 보인다. 적당히 유머감각도 있어서 아들과 농담을 섞는 것도 능숙해 보인다. 하지만 아직 품 안의 자식이라 여겼던 12살 초등학생 5학년 아들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평범한 엄마와 아들 사이에 생기는 불통(不通)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엄마 사오리는 경악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그녀는 밤중에 아들이 혼자 숲 속에서 “괴물은 누구게?”라고 떠드는 걸 찾아냈다. 사오리는 자식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한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이해 안 될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샤워 중 머리를 자르더니 휴대용 물통엔 흙을 넣질 않나, 운동화를 잃어버리질 않나, 돼지 뇌를 인간에게 이식하면 어떻게 되냐고 묻지를 않나. 이 희한한 행동은 뭔가? 엄마 눈엔 아들이 낯설었다.
사오리는 아들이 고민되어 학교를 방문한다. 그런데 교사들이 이상하게만 보인다. 내 앞에서 뭔가를 감추려는 걸까. 엄마 시선으로는 선생이란 작자들이 교육자로서 책임을 면피하기에 급급해 보였다. 교사들은 학생에게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기보단, "미안합니다"라고 굽신굽신 하기에 바빴다. 이토록 학부모 앞에서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고 여기니 사오리는 분노에 휩싸여 눈이 멀어 버린다.
엄마 사오리에게 교사는 괴물이었다.
아들 미나토를 담당하는 호리 선생은 사실 고충이 있었다. 그는 같은 반 학생인 '요리'와 '미나토' 사이를 오해한다. 이 두 학생이 몸싸움을 하는 걸 말리기도 하고, 미나토가 갑자기 교실 집기를 던지는 걸 제지하면서 그는 미나토가 폭력적인 학생이라고 여긴다. 호리 선생은 미나토 엄마를 직접 만나려 했다. 하지만 선배 교사들과 교장은 그를 만류한다. 이들은 호리 선생에게 무조건 사과하도록 강요했다.
교사들이 학부모들과 직접 소통하는 걸 두려워하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학부모를 갑을 관계상 철저한 '갑'으로 대했다. 연차가 오래된 선생일수록 학부모와 최대한 마찰을 피하도록 '을'로서 머리를 조아리는데 선수가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학부모를 대할 때 얼마나 피로감이 쌓였길래 이렇게까지 무턱대고 저자세일까. 학교 선생님에게 학부모는 괴물이었다.
때론 부모 눈에 자식이 괴물로 보이기도 한다. 요리 아버지는 술에 자주 취한 채 아들을 거칠게 다루는 편이다. 아비랍시고 그는 아들 요리에게 서슴없이 언어폭력을 행한다. 돼지 뇌가 심어져서 아들이 저리 이상한 괴물이 되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요리는 밝은 미소로 상처 난 마음을 감추는 데 능숙해졌다.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가 괴물로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나이 든 인물일수록 진실을 말하는 걸 포기한다. 그중 최고봉은 교장 선생님이다. 이 여자 선생은 호리 선생도, 담당 학생 미나토도 잘못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교장은 깨달았다. 어차피 학부모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갖고 있기에 사실을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교장은 아는 듯하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살면 살 수록 내가 왜 이리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 왜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지, 반대로 왜 자꾸 어떤 이에게 끌리는지를 말로는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다. 미나토도 그렇다. 자기감정과 생각이 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미나토는 어쩌면 우리가 어렸을 때 모습일 지도 모른다.
언어가 마음을 모두 담지 못할 때, 우린 비밀을 간직하곤 한다. 미나토도 엄마에게 숨기는 마음이 있었다. 말해도 편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까봐 미나토는 입을 굳게 다문다. 영글어지지 않은 아이들 특유의 말습관 때문에 영화에선 호리 선생과 엄마 사오리, 그리고 아이들 간 오해는 깊어져만 간다.
초등 5학년, 같은 반 남학생 미나토와 요리는 서서히 가까워진다. 12살이란 어쩌면 가장 예민한 나이일 지도 모르겠다. 어른과 어린이의 경계에서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 온갖 감정들이, 세상과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용암처럼 폭발하는 나이. 12살에 미나토와 요리는 친구가 되었다.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진실한 자기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미나토와 요리처럼 말이다. 둘이 거리를, 숲 속을 질주하며 마음껏 놀이하는 모습은 어쩌면 잃어버린 내 과거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숲 속에서 서로를 탐험했고, 폭풍우를 엔진 소리 삼아 질주한다.
괴물은 누구게?
이 물음은 영화에서 주인공인 초등 5학년 남학생 '미나토'와 '요리'가 놀이할 때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처한 속사정을 들여다볼수록 이 질문은 "당신도 괴물인가요?"라고 들린다.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말라붙은
나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
- 펄벅
아이들 목소리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나요?라고. 내 안에 있는 괴물이 누구인가요?라고 말이다. 내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색안경은 어떤 모양일까.
오랜만에 때 묻었던 마음을 씻은 듯하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영상으로 마주한 느낌이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든 OST가 흐르는 엔딩 크레딧 화면을 끝까지 마주하며 맑은 물에 목욕을 한 듯한 깨끗한 기분을 마주해 본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12.12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headla.it/articles/YqKqg6etgNoMujQnMsgb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