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A Man Who Heals the City, 2023)
돈이라는 게 똥과 같아가지고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뿌려놓으면 거름이 된다
돈이 좋기도, 해롭기도 하다는 걸 누가 모르는가. 원할 때 그만두고 싶지만 돈 모으기는 중독성이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자기 배를 불리려 꾀를 부릴수록 영리하단 말을 듣는 세상이다. 그런데 돈을 똥으로 보는 이런 분이 계시다니. 이렇게 말만 하신 게 아니다. 세상이란 밭에 거름이 되도록 번 돈을 모조리 환원한 분이 있다.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착잡한 물음이 내 속에서 올라올 때면 이젠 이 분 이름 석자가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다. 어른 김. 장. 하.
그는 평생 경남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꾸렸다. 성실히 일하며 김장하 선생은 큰돈을 번다. 다른 데보다 직원들 월급도 두둑이 주고, 약값도 싸게 받았다. 값도 싼 데 품질도 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이곳은 한때 사람들로 미어터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분은 부자가 되어도 검소했다. 승용차 하나 없이 걸어서 출퇴근을 했고, 천이 헤어질 만큼 옷도 오래 입는다. 그렇게 아낀 돈을 어떻게 했냐고? 전부 남을 위해 썼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도움을 줄 만한데라면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여태까지 기부한 곳이 워낙 다양하기에 다 알기도 힘들다. 이 다큐 영화는 그가 기부한 환경 단체, 연극 극단, 학교, 신문사, 사회운동 기관,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장학금 등을 제공한 사람들을 찾아가 진행한 인터뷰 모음이다.
이 다큐 영화를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혹시 특정한 종교관이 투철한 분인가? 왜 굳이 MBC에서 이 분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 만큼,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교양 작품상을 받을 만큼, 이렇게 영화관에 개봉을 할 만큼 이분 행적을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걸까?
이 분이 기부한 행적을 되짚어보며 이 궁금증은 서서히 풀린다. 매우 감명받았던 대목은 이 분이 가진 직업관이었다. 누가 아프고 고통받아야 돈을 버는 일이라는 직업관, 누군가가 힘들어야 자신이 한약을 팔 수 있다는 생각, 이런 엄격한 윤리 의식이 기부를 하게 된 동기가 아닐까 감히 상상해 본다. 이런 가치관 때문에 김장하 선생은 '기부'를 자선행위가 아닌, 자기가 아픈 사람들 덕택에 번 돈을 '되돌려줌'이라는 의미로 실천하시는 듯했다. 내 밥그릇부터 챙기고 보는 나 같은 일개 시민이 이런 넓은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순 없다.
사람이 병을 얻어 고통을 느껴야 비로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기에, 돈이 들어와도 나를 위해서만 쓰면 안 된다는 생각. 이런 윤리의식을 평생 동안 실천하신 행보를 지켜보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장하 선생이 그동안 기부한 분야를 보노라면 이분이 정말 다양한 사회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랑이 될 법한 말이 될까 봐 자기 노출을 경계하는 분. 익을수록 고개를 낮추며 밭에 씨를 뿌리는 이런 분이 진짜 어른이 아닐까. 특히 이 분이 한평생 관심을 기울였던 교육 사업은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시민을 키우기 위한 밭 갈기 농사였다.
가끔 매스컴에서 거액을 기부한 사람을 소개할 때면 돈 많은 인간들이나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행동이라 여기곤 했다. 나 스스로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니 '선행(善行)'이란 단어는 추상적인 의미로만 머리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이분 행로를 지켜보면 자기 직업이 어떻게 해서 돈을 버는 일인지를 이해한다는 게 선행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김장하 선생이 기부한 내역 중 인상적인 분야는 '형평운동'이었다. 인간이라면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움직임, 형평운동은 그가 기부를 실천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듯하다. 이런 행보를 오인하고 갈라치기하는 세력이 이분 개인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내고, 협박성 전화를 해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착잡했다. 전화 속 호통에도 감정이 격해지긴 커녕 차분히 듣고 전화를 끊으시다니, 성인군자(聖人君子)라는 표현은 이런 분에게 써야 할 거 같다.
한 사람의 선행이 나비효과처럼 세상에 선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이 이젠 조금은 생긴 것 같다.
덧. 요즘 영화 《서울의 봄(2023)》을 보고 심박수가 올라갈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심신 안정을 위해 이 다큐를 추천하고 싶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關心)_Kino Psycho] 2023.12.20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