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 '엄마'라는 잔인한 직업

(Full Time, À plein temps, 2021)

by 녹색광선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일하는 엄마'의

어느 하루


'일상 스릴러'라는 반어적 문구가 왠지 끌려서 본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워킹맘으로 매일 열일하는 어떤 엄마이다. 그녀의 하루는 바쁘게 시작된다. 아이들의 밥을 정신없이 챙기며, 엄마에게 건네는 꼬마다운 질문들을 놓치지 않고 답해주려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어렵기만 하다.


허둥지둥 두 아이를 돌보미 할머니에게 맡기고 자, 직장으로 출발..!


그녀의 직장은 파리의 어떤 5성급 호텔. 열심히 호텔 객실 내부를 동료들과 치운다. 그리고 은근 고대하던 새로운 직장 면접에 대한 짧은 대화도 나눈다. 동료들과 식사 시간을 함께 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여기까지는 호텔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 지를 스케치하듯 보여주기에 그야말로 간접 직업체험을 하듯 편히 보았다.


그런데 파리의 열차 직원들이 파업을 하면서 스릴러는 시작된다.




왜 그녀의 일상은
재앙이 되어야 하는가?


제시간에 퇴근을 하지 못하니 돌보미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사정을 설명해야 하고.. 그야말로 골치 아픈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된다. 다음 날에도 그녀는 출근 전쟁을 치른다. 호텔에서의 일은 현재 그녀에겐 생업이기에 늦으면 안 되는데.. 파리로 진입하는 교통편은 막히고.


이건 그야말로 재앙이다.

도대체 이게 재앙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녀에게 교통수단 파업은 그야말로 한 동안은 피를 말리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재앙(Catastrophic Event)'이었다. 예전에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그녀의 조마조마한 마음이 너무나 실감 났다. 당시 난 파리에서 스위스로 넘어가야 했는데 갑자기 다음 날 열차가 파업 예정이라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듣고 영화 속 그녀처럼 사설 택시를 겨우 잡아 탄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교통 파업 시기를 그녀가 어떻게 하루하루 헤쳐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워킹맘으로서 각종 일정에 늦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택시 등을 이용한다. 급기야는 아이의 생일 선물을 때 맞춰 손수 미리 운반하느라 트럭을 동원하기까지. 자신의 빠듯한 형편에 비하면 정말 엄청난 교통비를 써대는 듯했다. 계속 영화 속 그녀의 출퇴근길을 보면서 숨이 턱턱 막혔다. 얼마나 피를 말리는 시간일까?


도대체가 편하게 잠깐 휴식을 하거나 식사를 하는 모습도 영화에서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시시각각 울리는 전화벨 소리, 호텔 직원용 무전기 소리, 잠깐의 여유나 휴식도 허용되지 않는 그녀의 일상은 너무나 잔인하게 보였다. 특히 객실 청소를 담당하는 수습 직원을 교육할 때 그녀의 당부란.


이 일은
존재감이 없어야 해요.


먼지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청소 후, 직원이 머물렀다는 흔적 없이 사라져야 그녀의 일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 일은 그런 것이다. 존재감 없이 마무리해야 하는 일.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절대적인 존재, '엄마'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기에 이 고된 일상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 고된 노동을 버틴다. 하지만 정작 그들과 제대로 하루를 마감하며 자식들과 따뜻한 대화를 나눌 만한 여유는 없다. 퇴근 후에도 그녀는 돌보미 할머니로부터 아이를 데려갈 시간을 지켜달라는 엄포를 들어야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반성했다.

'나라는 인간도 이렇게 부모의 몸과 정신을 갈아 넣어 성장했구나.'




또 하나의 스릴러,
구직 면접


이리도 정신없는 하루하루이지만 그녀가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계속 시도하는 구직 면접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원래 블루칼라(blue color) 노동자가 아니었다. 경제학 석사까지 마치고 전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해오던 회사가 폐업 후 임시로 호텔에서 몇 년 간 일해오던 도중 틈틈이 구직을 위한 도전을 해오던 차였다.


그녀는 반갑게도 어느 회사에서 최종 면접 대상자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지만 호텔 근무시간과 면접 일정이 겹쳐 버린다. 이럴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단 무조건 "Yes!"라고 답하고 면접 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묘안을 짜낼 수 밖엔 없다.


'아 그녀가 제발 최종 합격했으면..!!'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제발 영화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단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영화에 몰입했다.




또 힘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하루는 사실 특별한 재난이 없더라도 힘들게 버티는 시간일지 모른다. 매일 그렇듯 자명종 소리를 들으며 깨고, 직장에서 별 다른 위기 없이 꾸역꾸역 일하고, 집에 와서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이런 무난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사실 피곤하지 않은가.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난 유럽 사람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행동거지에 여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건만, 영화를 보고 나선 보기 좋게 이런 선입견이 깨졌다. 자식을 키우는 동안에는 전 세계 어느 부모라도 하루하루가 숨이 턱에 차듯 바쁠 수 밖엔 없구나.


사실 내게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은 어느 날 그녀가 출근 준비 중 화장을 하면서 조용히 계속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날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평일 아침이었다. 그런데 닦아도, 닦아도 그녀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또 힘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얼마나 힘겨울까.


우울증은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구나. 그저 버거운 일상이 쌓이면서 시작되는 거구나.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수고했어요, 오늘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