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노예이자 국가 폭력의 희생자, 사북 광부들

1980 사북(1980 Sabuk)

by 녹색광선

이 작은 흑빛 다큐는 하필이면 대한민국이 간만에 화려한 주목을 받을 때 개봉했다. 매스컴에선 APEC 회의가 아니면 뉴스거리가 안 되는 요즘이다. 관광지에선 꽃단장을 하고 관광객을 맞이하느라 들떠 있는 지금, 이 나라의 초라했던 시절을, 부조리했던 과거사를 다루는 이런 작품은 인기를 얻기 힘들다.


그래도 몇몇은 극장을 향하리라. 1980년 사북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광부 노동자들이 군사 정권 하에서 어떤 탄압을 받았는지, 왜 누구는 이 사건을 노동 항쟁이라 하고 당시 국가에선 데모를 한 직원들을 빨갱이, 폭도라 했는지. 이 사건 당사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상영관을 찾아보리라.


대학 1학년 때
나만 사북을 탈출했다


사북에서 성장했던 이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기가 도대체 어땠기에 "탈출했다"라고 할까. 박정희에 이어서 전두환 정권까지 언론 보도가 가위질당하던 시절 강원도 오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한국 사람들 태반은 모른다. 그렇기에 이 다큐는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방송처럼 미스터리를 파해치는 추리 소설 느낌도 난다.



당시 광부 가족들이 살던 마을 전경은 내 눈엔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보였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많은 노동자 가족들은 다닥다닥 엉겨 붙어 삶을 지탱했으리라. 주 6일제였던 시절, 퇴근 후에도 광산을 벗어날 길이 없으니 여가 생활이란게 있었을까. 사택이란 이름으로 가장한 여기가 수용소가 아니라면 도대체 뭔가.


기반 시설은 부족했다. 남탕만 있을 뿐 여자 목욕탕이 없었다. 생필품을 사러 시내로 나가기엔 거리가 멀어 회사 차원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해야만 했다. 목숨을 갈아 넣어 힘들게 돈을 벌었건만 광부 가족들은 시장보다 훨씬 비싼 이윤을 붙인 가격에 울며 겨자 먹기로 물건을 사야만 했다.


임금이라도 정당히 지급받았다면 고단한 노동을 견딜 만했을까. 말만 도급제일 뿐, 광부들이 힘들게 캐낸 석탄량을 사측은 속였다. 실제보다 채굴량을 적게 잡으니 노동자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광산 사고가 날 때마다 죽어 나가는 노동자들이 수십 명이었다. 해마다 200명이 넘게 탄광 안에서 죽었다. 이들이 바로 산업전사라 불렸던 광부들이었다.


이미지 출처: www.eidf.co.k


분노는 들끓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교묘한 방법으로 광부들을 감시한다. 암행독찰대라 불리는 이들은 평소 광부들인 척하며 직원 중 반발자를 색출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인위적인 방법으로 직원들을 억누를 순 없는 법. 급기야 광부들은 노조 대표를 직선제로 뽑을 것 등을 주장하며 1980년, 시위를 시작한다.


공수부대 투입까지 임박했던 극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일단 광부들의 요구를 수용해 줄 것처럼 사측에서는 사태를 무마했지만 이후 잔인한 국가 차원의 보복이 이어진다. 회사명으로 위장한 군부 세력은 시위에 가담한 노동자들을 사찰한다. 수많은 직원들이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고 군사 재판을 받았다. 죄명을 뒤집어쓰고 징역을 살았다. 시위 사진에 찍힌 광부들과 배우자들은 야밤에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이들에게 끌려갔다. 수 일 간 이들은 동물 학대 당하듯 고문당한다.



1980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탄광촌 노동자들이 오늘날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 붙잡혀 온 사람들과 다를 게 뭘까. 이들이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거짓 선동하에 강제 노동에 내몰렸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포로들과 다를 게 뭘까. 러시아 전쟁터로 팔려 가 목숨값만큼 외화 벌이를 해야 했던 북한 사람들과 다를 게 뭘까.


이들이 최근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서 과로사한 젊은 청년과 다를 게 뭘까. 이름도 삐까번쩍한 양식 레스토랑에서 CCTV로 감시받으며 작은 실수도 해고 사유로 꼬투리 잡히며,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며, 경영자의 알량한 법 기술 때문에 퇴직금도 지급받지 못하는 조건으로 혹사당하는 노동자들과 사북 광부들이 도대체 다를 게 뭘까.


아시아 경제 성장을 부르짖는 거대한 회의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지금, 주요 정상들 간 협력과 교역을 위한 외교 회의가 넘쳐난 지금, 오늘도 어딘가에서 탄압받는 이 지구 위 무명의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살고 있을까.


어지럽다. 지금이 1980년인지, 2025년인지. 이 현기증을 어찌해야 할까. 지금이 과거보다 낫다고 할 만한지, 이제야 겨우 노동권을 외칠 만하다 싶더니 이젠 AI가 인간 노동을 휩쓸어가는 세상에서 그나마 남은 일자리라도 거머쥐려 경쟁해야 하다니. 과거가 현재가 되니 착취의 형태만 바뀔 뿐. 자본과 권력을 거머쥔 갑이 을 위에 군림하는 세상은 그대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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