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경 Jun 30. 2024

테이프

인연

양면 테이프

집요한 면이 있다.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기어이 벗겨내면 끈적한 자국을 남긴다.

여러차례 긁어내야 비로소 말끔하게 지워진다. 오래 붙어있었을 수록 더더욱.

정이 많아서 그런 걸까.

평소엔 둥글게 휘감긴 채 필요한 순간 자신의 일부를 잘라 내어준다.

양면테이프는 순수함으로 맺힌 약속을 닮았다. 맞닿은 순간 하나가 된다.

영원히 함께했으면 하는 기대감이 발라져 있다.

인내심이 강하다. 자주 사용되지 않아도 늘 서랍 한 구석에 의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처음 붙일 때 신중해야 한다. 끈적해서 손에 달라붙기 쉬우니까. 대신 붙으면 오래간다.


포스트잇

가벼운 면이 있다. 바로 떼어낼 수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했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붙었다가, 어느날 쿨하게 툭 떨어진다.

변덕이 많아서 그런걸까.

붙였던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떼어내고 다른곳에 붙이면 된다.

포스트잇은 양면테이프의 순수함이 없다. 맞닿아 있어도 하나가 아니다.

아픔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이 적혀있다.

편안하고 효율적이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필요할 때마다 부담없이 사용하면 된다.

많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느순간 바닥에 구겨진채 버려져있기 쉬우니까.


양면테이프의 진면목은 비바람 불고 이리저리 나뒹구는 험난한 상황에서 드러난다.

서로 꼭 잡아당기기에 끄떡없다. 그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그러나 양면테이프같이만 살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많은 걸 기대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건 포스트잇이다.

양면테이프에게는 없는 적절한 거리감이 포스트잇은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둘이 맞닿고 있다.


fin






작가의 이전글 카메라같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