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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 Dec 17. 2021

샘플 테스트

02. 통번역사가 받는 최초의 평가

통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에게 즉각적인 평가와 크리틱은 일상과 같다. 작게는 내부적으로 번역회사의 프로젝트 담당자(PM)나 파트너 감수자, 더 나아가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와 대중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된다. 긍정적이고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는 경우도 많지만 외국어 실력자들이 늘고 있는 (심지어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외국인까지 많아지고 있는) 요즘 그 피드백은 훨씬 빠르고 다양하다. 지금은 어떠한 피드백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나은 작업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만한 내공이 어느 정도 쌓였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이렇게 단련되기까지 많은 시간 자책하고 맘고생을 해온 것 같다.




알고리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키워드라도 입력하는 순간 쏟아지는 정보에 노출된다. 우리 일에는 그것이 때로는 약이 되기도, 다른 한편으로 독이 되기도 한다. 외국어와 통번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한 번이라도 검색해본 적이 있다면) 이 알고리즘에 힘입어 온라인 커뮤니티, 통번역사 카페, 번역회사의 블로그, SNS 등 다양한 채널이 제공하는 통번역사 구인 광고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나 통번역사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통번역사가 되고 싶은 지원자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치열한 시장의 경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체와 플랫폼이 다양해진 만큼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입문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 넘쳐난다. 하지만 어떠한 경로를 통하든 최종 프리랜서 등록에 앞서 대부분 테스트 번역을 경험하게 된다. (현직 통역사도 관련 분야의 번역 테스트를 요구받기도 한다. 물론 테스트 번역 비용은 거의 지급되는 편이다.) 물론 이미 작업 이력이 많은 경력직 번역사는 예외일 수 있지만... 이 샘플 테스트로 대부분의 통번역사가 최초의 평가를 받게 되지 않을까.




석사과정을 채 마치기 전에 본격적으로 번역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당시 유일한 채널이었던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포털의 번역 카페에 가입을 했다. 독일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한국의 통번역 회사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 카페에는 내 기대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넘쳐났다. 구인/구직 정보, 경력자들의 작업 수기, 다양한 QnA, 심지어 업체 블랙리스트까지. 조심성 많은 성격 탓에 공부하듯 카페글을 읽고 또 읽고 난 후에도 여러 번역회사 중에 어디에 지원을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저 가볍게 경험 삼아 지원해본다 생각한다면 전혀 부담이 없는 프리랜서인데 말이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해서 고른 딱 한 군데 번역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첫 샘플 테스트를 경험하게 되었다. 기억이 정확 치는 않지만 업계 평균에 속하는 A4 용지 반 페이지 남짓한 분량의 기사를 번역했던 것 같다. 알고 있는 표현도 일일이 사전을 다시 찾아보고, 검색해서 확인하고, 제출하기 전까지 고치고 또 고치기를 거듭했다. 마지막으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장 가까운 한인 유학생 친구에게 번역본을 읽어봐 달라고 부탁도 하고... 공대생이었던 나에게 본 투 비(born to be) 문과생인 그 친구가 가장 믿을 만한 조언 상대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나치게 분석적인 나의 문체가 번역에 있어서 다른 고민거리가 되었고 지금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 짧은 번역문에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고민했던 덕분일까 나는 그 샘플 테스트에서 더없이 좋은 평가를 받고, 수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업체와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다. 나름 여러 담당자들의 믿는 구석이 된 느낌이랄까...

 



우리는 대부분 학창 시절에는 등급과 등수에 얽매어 살아왔고, 또 사회에서는 업무적인 크리틱과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가까운 사람들, 동종 업계의 사람들,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가까운 사이인 만큼 나의 부족한 점을 내보이기 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섣부른 확신으로 훨씬 더 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달은 지금은 진심 어린 피드백과 크리틱을 아끼지 않는 나의 친구와 동료들을 믿고 의지하며, 그럴 수 있는 환경에 더없이 감사한다.


그래서 통번역을 준비하거나 시장에 갓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 또는 경험 있는 주변인과의 전문적인 교류를 권하고 싶다. 단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통번역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다면 다양한 스터디 그룹, 커뮤니티 활동이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업무적인 크리틱과 평가에 대한 대비와 연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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