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눈으로 검증하는 법
"경쟁사 분석 좀 정리해줘."
기획 일을 하다 보면 이 말을 정말 자주 듣는다.
신규 서비스 기획할 때도, 사업 제안서 쓸 때도, 분기 전략 회의 앞두고도.
경쟁사 분석은 기획자라면 피할 수 없는 숙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거 진짜 귀찮다.
경쟁사 홈페이지 뒤지고, 뉴스 검색하고, IR 자료 찾고, 앱 깔아서 직접 써보고.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간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AI한테 시키면 안 되나?"
된다. 근데 조건이 있다.
오늘은 그 조건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나도 처음엔 기대가 컸다.
"A사, B사, C사 비교 분석해줘. 서비스 특징, 가격 정책, 타깃 고객 기준으로."
이렇게 프롬프트를 넣으면 꽤 그럴듯한 표가 나온다.
깔끔하게 정리된 비교표. 항목별로 나뉘어 있고, 문장도 매끄럽다.
처음 보면 "와, 이거면 되겠는데?" 싶다.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표에 적힌 내용을 하나씩 확인해보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애매한 것"이 제일 많다.
가격이 작년 기준이거나, 이미 종료된 서비스가 현재형으로 적혀 있거나, 경쟁사가 실제로는 그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거나.
가장 위험한 건, 그 틀린 부분이 "그럴듯하게" 적혀 있다는 거다.
지난 글에서 AI는 검색엔진이 아니라는 얘기를 했다.
경쟁사 분석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터진다.
AI는 "A사의 현재 요금제가 뭐야?"라는 질문에 실시간으로 A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아니다.
학습 데이터에 있던 정보를 조합해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낸다.
요즘은 웹 검색을 지원하는 AI도 있다.
하지만 검색 결과를 긁어오는 것과, 그 정보가 지금도 유효한지 판단하는 건 다른 문제다.
여기서 세 가지 함정이 생긴다.
첫째, 시점의 문제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에는 시간 제한이 있다.
경쟁사의 요금제, 기능, 조직 구조는 수시로 바뀐다.
3개월 전에 맞았던 정보가 지금은 틀릴 수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이라면, AI가 내놓는 정보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났을 확률이 높다.
기획서에 "B사는 현재 무료 플랜을 운영 중"이라고 썼는데, 실제로는 두 달 전에 유료로 전환했다면? 발표장에서 그 한 줄이 신뢰를 다 깎아버린다.
둘째, 깊이의 문제다.
AI는 표면적인 정보는 잘 정리한다.
"A사는 B2B SaaS 기업이고, 주요 고객은 중소기업이며, 월 구독 모델을 운영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기획자가 진짜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A사가 최근 엔터프라이즈 시장으로 피벗하고 있다." "B사의 이탈률이 높아서 리텐션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C사가 올해 초 핵심 인력이 대거 이탈했다."
이런 건 공식 홈페이지에 안 나온다.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 채용 공고의 변화, IR 자료의 행간.
AI는 이런 걸 읽어내지 못한다.
경쟁사 분석에서 진짜 가치 있는 인사이트는 대부분 이 "행간"에 있다.
셋째, 구조의 문제다.
AI한테 "경쟁사 분석해줘"라고 하면, AI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프레임으로 정리한다.
서비스 개요, 타깃 고객, 가격, 주요 기능.
근데 내가 지금 하는 기획에서 중요한 축이 그게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보고 싶은 건 "각 경쟁사의 온보딩 프로세스 차이"일 수도 있고, "고객 지원 채널의 응답 속도"일 수도 있고, "특정 산업군에서의 레퍼런스 보유 현황"일 수도 있다.
AI는 내 기획의 맥락을 모른다.
그래서 범용적인 틀로 정리해버린다.
결과물이 깔끔해 보이지만, 정작 의사결정에 쓸 수 없는 분석이 나온다.
아니다. 쓸 수 있다.
다만, 쓰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AI한테 경쟁사 분석의 "결과물"을 기대하면 안 된다.
대신 경쟁사 분석의 "과정"에서 AI를 쓰면 꽤 쓸만하다.
내가 실제로 효과를 본 방법 세 가지를 공유한다.
경쟁사 분석을 시작할 때 제일 막막한 순간이 있다.
"뭘 기준으로 비교하지?"
이때 AI가 진짜 도움이 된다.
"우리는 물류 업계 탄소 배출 관리 SaaS를 만들고 있어. 경쟁사 분석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비교하면 좋을까? 우리 서비스의 핵심 차별점은 국내 인증 기반 배출계수야."
이렇게 물으면 AI가 비교 축을 제안해준다.
인증 여부 및 인증 기관
지원 운송 모드 범위
배출계수 데이터 출처
API 연동 방식
타깃 고객 규모
가격 모델
이 중에서 내 기획에 맞는 축을 골라서 분석 틀을 세우면 된다.
AI가 분석을 해주는 게 아니라, 분석의 뼈대를 같이 만드는 거다.
이 단계에서는 AI가 틀려도 괜찮다.
어차피 프레임을 확정하는 건 나니까.
AI가 던져주는 선택지 중에서 고르고 다듬으면 된다.
경쟁사 홈페이지, 뉴스, 보도자료 같은 공개 정보를 일일이 읽고 정리하는 건 시간이 많이 든다.
이때 AI한테 URL이나 텍스트를 직접 넣어주고 "이 내용에서 서비스 특징, 타깃 고객, 가격 정보를 뽑아줘" 라고 시키면 초벌 정리가 빠르게 된다.
핵심은, AI한테 "알아서 찾아줘"가 아니라 내가 찾은 자료를 "정리해줘"로 바꾸는 거다.
AI의 환각이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왜냐면 AI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내가 준 자료를 구조화하는 거니까.
물론 이것도 100% 맞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빈 캔버스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초벌 정리 위에서 검증하고 수정하는 게 훨씬 빠르다.
이건 내가 제일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경쟁사 분석을 어느 정도 끝낸 다음에, 그 내용을 AI한테 통째로 보여주고 이렇게 물어본다.
"이 경쟁사 분석을 보고, 빠진 관점이나 추가로 확인해야 할 항목이 있으면 알려줘."
그러면 AI가 내가 놓친 부분을 짚어준다.
"고객 리뷰나 평판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 경쟁사의 최근 투자 유치 현황이 빠져 있습니다." "파트너십 전략에 대한 비교가 없습니다."
물론 AI가 말하는 게 다 맞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던져주는 건 사실이다.
기획자는 자기 프레임에 갇히기 쉽다.
AI는 그 프레임 바깥에서 "이것도 봐야 하지 않나요?"를 말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 그러면 AI가 내놓은 경쟁사 분석 결과를 어떻게 검증해야 할까?
내가 실무에서 쓰는 체크리스트가 있다.
① 시점 확인
AI가 적은 정보가 언제 기준인지 확인한다. "현재 운영 중"이라고 적혀 있으면, 진짜 지금도 그런지 직접 확인한다. 특히 가격, 요금제, 기능 업데이트는 반드시 최신 확인이 필요하다.
② 출처 역추적
AI가 "A사는 월 10만 원의 구독 모델을 운영합니다"라고 했으면, 실제로 A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가격 페이지를 확인한다. 출처를 추적할 수 없는 정보는 기획서에 넣지 않는다.
③ 비교 항목의 균형 확인
AI가 정리한 비교표에서, 특정 경쟁사만 정보가 풍부하고 다른 경쟁사는 빈칸이 많다면 주의해야 한다.
AI는 학습 데이터가 많은 기업에 대해 더 자신 있게 답한다.
정보량의 불균형이 곧 분석의 편향이 된다.
④ "그럴듯함"에 속지 않기
이게 제일 중요하다.
AI는 모르는 것도 자신 있게 말한다.
"C사는 최근 동남아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문장이 나오면, "어디서 본 건데?"라고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기획서에 들어가는 순간, 그건 "사실"로 취급된다.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추측이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정리하면, AI를 경쟁사 분석에 쓰는 올바른 순서는 이렇다.
Step 1. 분석 프레임 설계 (AI 활용)
내 기획의 맥락을 AI에게 설명하고, 비교 기준과 분석 축을 함께 잡는다.
Step 2. 1차 자료 수집 (직접 수행)
경쟁사 홈페이지, 뉴스, IR, 앱 리뷰 등을 직접 찾는다. 이 단계는 AI한테 맡기면 안 된다.
Step 3. 자료 정리 및 구조화 (AI 활용)
수집한 자료를 AI한테 넘겨서 정리하게 한다. 비교표 형태로 초벌 작업을 빠르게 끝낸다.
Step 4. 검증 및 보완 (직접 수행 + AI 보조)
AI 결과물을 시점, 출처, 균형, 신뢰도 기준으로 검증한다. 검증이 끝난 분석을 AI한테 보여주고 빠진 관점을 물어본다.
Step 5. 최종 인사이트 도출 (직접 수행)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획자가 내린다. AI는 재료를 정리해줄 수 있지만, 전략적 판단은 사람의 몫이다.
경쟁사 분석을 AI한테 통째로 맡기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경쟁사 분석이라는 건,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AI는 그 판단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
대신, 판단에 필요한 재료를 빠르게 모아주고, 내가 놓친 부분을 짚어주고, 정리하는 시간을 줄여준다.
기획자의 역할은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그 결과물 위에 자기만의 관점을 얹는 것이다.
내일 경쟁사 분석을 해야 한다면, 이것만 기억하자.
AI한테 "분석해줘"가 아니라 "같이 분석하자"로 접근해라.
그 한 끗 차이가, 쓸 수 있는 분석과 쓸 수 없는 분석을 가른다.
다음 글에서는 좋은 보고서가 나오는 방식, AI로 보고서 구조를 다루는 법을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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