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말이죠.
이번 겨울이 지나면 소율이는 초등학생이, 지율이는 유치원생이 된다. 이쯤 되니 아이들이 너무 빨리 크는 게 진심으로 아쉽다. 움트는 나무같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경이로우면서도 ’제발 천천히, 천천히..‘ 라는 말을 되뇌이게 된다.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아 보고 싶었다. 다시 오지 않는 아이들의 유년시절 행복한 기억을 일상이 아닌 무언가 더 강렬한 것으로 박제하고 싶었다.
1년살기 한달살기 등을 생각했던 거창한 포부와는 달리, 나보다는 걱정이 많은 남편의 반대로 발리에서 2주 남짓을 보내게 되었다. 더 가까운 곳들을 제치고 발리를 선택하게 된 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서였다. 첫째, 아이들 단기 스쿨링이 가능하다. 나는 꼭 짧게라도 현지 학교를 다니게 해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소율이가 완전 낯선 환경에서도 본인의 영어 실력을 점검해 보고 앞으로의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영어가 단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국제학교에 다니려면 1개월이나 한 학기 이상 등록해야 하는 시스템과 달리, 발리는 1주일 단위로도 국제 유치원/국제학교 등록이 가능하다.
둘째, 날씨와 수영, 자연과 바다! 발리를 알아볼수록 한 세 달은 여유롭게 머물고 싶었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정말로 추진해보고 싶다. 물론 발리가 아니라도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 건기와 우기 상관없이 항상 수영을 할 수 있는 날씨, 서핑을 너무 좋은 가격에 배울 수 있는 점, 게다가 스노쿨링과 스쿠버다이빙까지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종합적으로 아주 매력적이었다.
셋째, 광범위한 레인지의 숙소 옵션. 발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개발된 전통적인 휴양지다. 가장 하이클래스의 리조트도 발리에 있지만 동시에 가장 저렴한 아파트도 빌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풀빌라의 원산지라 그런지, 낮은 가격의 숙소들에도 왠만하면 거의 수영장이 딸려 있다. 기본 청소 서비스가 되는 투룸 프라이빗 빌라에 수영장이 있는데도 월 렌트가 200만원 이하라는 비현실적인 가격. 한 번의 여행에서도 숙소마다 다양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점 때문에 여행 계획하는 재미가 있다.
넷째, 다양한 클럽 서비스! 처음엔 그 유명하다던 발리 비치클럽이 뭔가 했는데, 알고 보니 수영장 입장권 같은 거였다. 해변가에 위치한, 음악 연주나 디제잉 등이 있고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수영장을 비치클럽이라 한다. 같은 의미로 강가에 있는 수영장을 ‘리버클럽’이라 하던데 그냥 발리는 클럽이라는 이름을 굉장히 좋아하는지도. 보통 호텔들이 투숙객 대상으로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발리의 왠만한 호텔들은 ‘클럽’이나 ‘패스’라는 이름으로 비 투숙객 대상으로도 다양한 서비스를 오픈한다. 호텔 뿐 아니라 각종 사설 기관들에서 비치클럽, 데이패스, 키즈클럽 등을 운영하고 있어 부담없는 가격으로 이곳 저곳 경험해 보고자 하면 매우 좋은 환경이다.
이 네 가지의 장점을 보고 왔고, 막상 와 보니 교통 등의 단점들이 있지만 여행 열흘이 지난 현재까지는 단점들이 충분히 상쇄될 만큼 아주 좋다. 원래 목표한 바와 같이, 우리의 이 낯선 곳에서의 시간이 행복한 기억들로 흘러 넘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