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육아의 일상에서 마주친 단색화

by Leading Lady

몇주 전 국제갤러리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하종현 작가 전시에 다녀왔다. 크고 강렬한 캔버스들을 보니, 문득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기억이 소환되는 것이었다.


첫 아이가 아직 첫돌이 되지 않았을 때, 내 시간은 흐르는 듯 멈춰 있었다. 연약한 생명과 함께하는 나날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동일한 리듬으로 반복되었고, 나는 막연히 숨만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 세 끼의 식사, 함께하는 낮잠, 짧은 외출의 순환—이 모든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나선에 있다 보면 출구가 잘 보이지 않았다. 삶의 전환점에서 맞이한 이 낯선 리듬은 도전이자 시련이었다. 무엇보다 갈증을 느꼈던 것은 지적 자극의 부재였다. 몸은 분주했으나 마음은 고요했고 무료했다.


그때 우연히 하종현 선생님의 작업실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한국 단색화의 철학이 나에게 위안을 건넸다. 평론가 윤진섭은 단색화의 특징으로 '반복적 수행성'을 언급했다. 단색화는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두는 신체적 행위의 축적이며, 그것이 진정한 물질성의 발현임과 동시에 삶이자 예술 그 자체를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국의 단색화가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와 시작점부터 차이가 있는 것을 보여준다. 서양의 모노크롬 회화가 강렬한 색채를 마주할 때 주는 감각의 일깨워짐, 순수함의 재현 등을 목적으로 한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캔버스를 매개로 반복적 수행의 과정을 드러내려 한다. 단색화의 '단색'은 목표가 아니지만 같은 행위를 반복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단색으로 구현된다. 수행을 드러내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색이나 형태가 강조되지 않으면서 하나의 색으로 수렴하게 된다.


하종현 작가 역시 박서보, 이우환 작가 등과 함께 단색화의 대표적인 화가로서 한국 추상미술계를 이끌었다. 1974년 39세였던 그는 군용 마대로 만든 캔버스의 뒷면에 물감을 발라 앞면으로 밀어내는 '접합' 연작을 선보이면서 이를 본인의 시그니처 화풍으로 지속 발전시켜 왔다. 그날 하종현 선생님 작업실 마당에 뒤집어져 있는 커다란 마대 캔버스들을 마주한 것, 내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도 오래된 4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물감을 밀어내고 있는 작가의 수행을 직접 만난 것은 무료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에 묵직한 의미를 남겼다. 나는 나 이전의 모든 어머니들이 수천 년간 먼저 걸어온 길 위에 있었다. 나와 내 가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매일 감내해야 했던 무수한 행위들, 지친 몸으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억겁의 반복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 위에, 몇 개월 전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나 또한 티끌같은 흔적 하나를 더하고 있었다.


굳이 필수성이나 중요도에서 위계를 따진다면,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행위가 어찌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행위에 견줄 수 있으랴. 그러나 하찮은 캔버스를 자신의 방식으로 과정으로 시간으로 채운 것이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듯, 나의 일상 또한 언젠가는 보상받으리라는 묘한 희망이 느껴졌다. 작가가 자신만의 반복을 행하는 것이 예술이 된다면, 요즈음 나의 반복도 예술에 견주어 볼 무언가는 될 것이었다. 작가의 수행과 나의 수행 사이의 병렬성을 발견하자 왠지 모를 위안이 되었다. '남들 다 자신만의 반복을 견디며 사는구나..' 싶은, 단순하고 거칠지만 효과적인 위로. 단색화 예술인들이 동일한 동작의 반복 속에서 신체의 움직임을 체화했듯이, 나 역시 양육이라는 수행 속에서 존재의 진동을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삶을 살든, 인간다움의 본질은 필수적 행위들의 반복에 있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과정은 그 자체로 가치롭다. 그것이 언젠가는 나타날 결과의 모습을 더욱 숭고하게 만들기에.


국제갤러리 <Ha Chong-Hyun>, 2025. 3. 20. ~ 5. 11. 전시 전경(kukjegallery.com)
전시에 선보여진 접합 연작들 및 디테일컷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