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다큐와 실제의 차이

전쟁보다 평화

by Leading Lady


세렝게티에 온 지 불과 며칠만에 내가 지금까지 TV에서 본 동물의 세계가 얼마나 이들의 작은 일부분이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진짜 동물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편집되고 재단된 영상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도 당연히 작가의 의도와 시점이 반영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카메라의 시점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다른 영상은 그렇게 비판적 눈으로 보면서 왜 동물 다큐에는 그렇게 관대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TV에서 보았던 것은 먹이사슬에 의한 끊임없는 사냥과 도망의 모습, 종족보존과 번식을 위한 동족간의 치열한 싸움 등이었습니다. 영상은 소위 '적자생존'의 생리를 보여주며 그것이 인간과 같다고, 혹은 인간세계가 보다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인간적'인 사회인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마주한 자연은 이러한 먹고 먹히는 전쟁터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곳은 뭐랄까, 그냥 평화 그 자체였습니다. 수만, 아니 수십만 마리의 얼룩말, 누우, 가젤, 임팔라, 기린, 코끼리들이 각자의 삶을 큰 갈등 없이 살아가고 있었고, 육식동물들은 자신들이 먹을 양 만큼을 아주 가끔 사냥해서 오랫동안 먹었습니다. 재미와 장난, 혹은 넘치는 힘을 소비하는 것으로서의 사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개체 수의 너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초식동물이 살아가다가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힐 확률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도 적어 보였습니다.

저녁, 취침 준비를 하는 임팔라들 @Serengeti



인간적인 건 무엇일까요?


나는 한 목장에서 자라는 수천 마리의 소들이 모두 함께 육식동물(사람)의 먹이를 위해 사육당하고 또 모두 함께 도살당하는 우리의 현실과 이곳을 비교했을 때 무엇이 더 '인간적'인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평소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인간성(Humanity)이라는 단어가 이곳에 오니 잔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여기 사는 동물들처럼 주변과 공존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런 본성을 잘 개발하며 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나 혼자 많이 먹고 오래 사는 법만을 배워 온 것 같습니다. 내가 생존할 만큼을 먹고 쓸 수 있는 만큼을 가지고, 나머지의 시간은 서로 사랑하고 본능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일 수는 없을까요? 어째서 인간적이라는 말이 '최소한 동물들이 하는 것 만큼만은 우리도 지키자' 처럼 느껴질까요.


어느 순간 나는 슬퍼졌습니다. 이곳에서 아무리 이런 삶을 보고 느낀다고 해도, 아마 나는 돌아가서 똑같이 누군가와 경쟁할 것이고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치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원을 아껴야겠다', '환경을 보호해야겠다'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에어컨을 틀고 말겠지요. 나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아갈 것이고, 그럼에도 더 많이 가진 누군가를 부러워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미 내가 사는 사회는 '필요한 것'의 최소기준이 높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되어, 지금은 없어도 아무 문제 없는 것들을 미래에 갖지 못해 상실감과 박탈감을 느낄 것입니다. 최소한 종교에 귀의하지 않는 한, 나는 아마도 평생 여기 동물들이 느끼는 행복은 누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해집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삶이 고단한 날,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얼룩말들의 탄탄한 몸통과 순진한 얼굴을 떠올리고 좋아하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는 걸 알게 된 것 만으로 여행의 수확인 걸까요? 어쩌면 내 삶의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나의 행복한 기억이 내 인생을 변화시킬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생각들을 하며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봄, 사상 최대의 조류독감으로 무려 3,800만마리의 닭과 오리들이 도살처분되었습니다. 그런 소식도 잠시였고, 뉴스에서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달걀값에 대해서만 오랫동안 이야기합니다. 나는 생협에서 유기농 달걀을 사먹으며 위안합니다.



참, 잔인할만치

인간적인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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