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
얼룩말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얼룩말들은 성격이 아주 방정맞아서 사람들이 길들일 수 없는 동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아주 자유분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매우 다정하고 사회적입니다. 혼자 있을 때가 없고 항상 7~3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얼룩말들은 상대의 등에 자신의 목을 얹고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있곤 했습니다. 나는 그 장면이 신기하여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수많은 얼룩말들이 서로서로 하는 행동인데, 이를 보고 있으면 참 따뜻하고도 묘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나는 네가 좋고 너를 믿어."라고 소리없이 말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연인간의 애정표시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친구끼리 친밀감을 표시하는 행동이라 합니다.
이렇게 편하게 믿고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나에게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를 생각했습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근황을 나누어도, 가끔은 필요적이고 형식적으로 되어가는 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나는, 그리고 그들도 나에게는, 본인의 감정을 배출하고 가진 것을 드러냄으로서 위안하는 관계인 건 아니었을까요? 그냥 서로 가까이 있다는 것 자체를 나누는 '우정'을, 나는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누군가와 쌓아 갈 수 있을까요?
바쁜 생활, 흩어진 관계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이런 단절감이 싫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는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역공동체가 해체되고 사회적 신뢰도가 자꾸만 떨어지는 우리 사회가 문제인지, 날이 갈수록 나를 누군가에게 이해시키는 것에 대해 피곤해지는 나 자신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얼룩말의 목 기댐 스킨십은 관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내 어린 시절 집에 엄마가 없으면 옆집 아줌마가 밥도 챙겨주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유치원생이었던 내가, 지금 성인이 된 나보다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말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나는 엘리베이터에 낯선 남성과 동승만 해도 괜시리 무서워지고, 혼자 있을 때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면 문을 열기가 꺼려집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요..
이 사회에서 어언 30년이 넘게 살고 있기에 이제는 다른 누굴 탓할 수도 없어집니다. 결국 나부터 나의 이익만을, 성장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탓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단 한번 궁금해하지도 않았으면서 막연히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이 공동체가 날 보호해주리라 믿는 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습니다. 그냥, 가끔은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한 친구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목 기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여 있으면 마치 커다란 줄무늬 덩어리로 보이는 얼룩말들처럼, 옆사람에게 기꺼이 나의 등을 내어주고 의심 없이 목을 맡기는 얼룩말들처럼,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