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에서 정말 많은 동물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동물을 고르자면 단연코 가젤입니다. 가젤은 임팔라보다 작고 수컷은 뿔이 있습니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너무나 귀엽게 살랑거리는 꼬리가 특징이죠. 아아,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귀엽습니다. 가젤은 너무 순수하고 순진해 보여서, 과연 이렇게 풀밭에서 노니는 것 외에 이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수컷끼리의 싸움도, 교미도, 심지어 출산마저도 뭔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집니다. 원래부터 이 상태로 무결하게 창조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 가젤들은 이상하게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있다가 육식동물의 희생양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게 왜 바보같이 무리에서 떨어져서 괜히 잡아먹히나' 하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실제 세렝게티에서는 혼자 다니는 가젤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잡아먹히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육식동물들에게 가젤은 달리기가 빨라서 잡기는 힘들고, 힘들게 잡아봤자 덩치가 작아 별로 먹을 것도 없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먹잇감이었습니다.
나는 만약 내가 육식동물이었다면 가젤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세렝게티에 사는 한 젊은 표범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표범은 사냥을 위해 호시탐탐 가젤 한 마리를 지켜봅니다. 그런데 그 순수함과 우아함에 점점 빠져들어 이젠 예뻐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표범의 순수한 마음도 모르고 작은 인기척이라도 느끼면 풀쩍풀쩍 저만치 가 버리는 가젤. 표범은 계속 그런 가젤의 주위를 맴돌며, 뜨내기 하이에나들을 쫓아 버리기도 하면서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물을 마시고 있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 좀더 가까이 만지고 싶어 몰래 다가가 붙잡았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빠져나가려 하는 완강한 가젤의 저항에 실수로 발톱을 할퀴고 가젤은 큰 상처를 입고 말죠. 놀란 표범이 그녀를 놓자마자 그녀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그런 건 중요치 않다는 듯 황급히 절뚝절뚝 도망칩니다. 표범은 겁에 질린 그녀의 마지막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치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워하며 자기혐오에 빠집니다. 그 후로 사냥이 두려워진 표범은 곤충과 과일 등등을 먹고 연명하다 객지에서 숨을 거둔다는-..
불쌍한 표범ㅠㅠ 드넓은 세렝게티 어딘가는 이런 '동물판 로미오와 줄리엣', 종을 초월한 이뤄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가젤은 이런 상상마저 가능케 할 만큼 작고 우아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게다가 조금만 가까이 가도 폴짝폴짝 뛰어 저만치 가버려 아주 안달나게 하는 밀당 능력까지 갖추었지요.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동물, 여자로서 왠지 닮고 싶은 청순가련 워너비 동물, 가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