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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Nov 04. 2016

결혼할 사람을 찾는 법.

'만나면 딱 안다'는 그 느낌의 실체.

만약 당신이 시험에서 평소 실력의 90%정도의 점수를 받았다면,
당신은 점수에 맞춰 학교를 가겠습니까, 아니면 재수하겠습니까?


결혼할 사람을 찾는 과정의 고민도 이와 비슷합니다.

재수해서 잘 될 수도 있고, 원래 점수보다 더 실망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여자의 가장 무서운 적; 시간  

삽십 대 초반의 어느 겨울, 나는 날이 갈수록 초조했다. 이러다 결혼하지 못할까봐 초조한 것이 아니었다. '제 때' 결혼하지 못할까봐 기분이 나쁜 거였다. 지금 내가 21세기를 사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회가 삼십 대 여성을 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우호적이지 않았다. 나는 번듯한 직업도 있고 자기계발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느라 이십 대보다 더 바쁘고 알찬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 늦잠자고 카페가서 노닥거리는 이십대 후배들을 사람들은 더 아름답게 봐 주었다. 나에게는 더 노력하라 하면서 그녀들에게는 좋을 때이니 즐기라 했다. 내가 애인의 큰 흠을 이야기하면 '그 정도면 눈감아주라' 했고 이십대 여인들이 본인 애인의 작은 흠을 말하면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냐'며 헤어지라 했다. 내가 생각할 땐 이십대 까칠하고 미숙한 나보다 서른 살의 내가 더 가치로웠지만 사회(혹은 연애시장)에서는 확실히 이십대 나의 가치를 더 높기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의 고점을 지난 하향곡선에 있었다. 나의 교환가치는 점점 떨어지는 중이었다.


당시 나는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성실한 사람이었고 나는 편하고 행복했다. 무엇이 결핍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이 90점인 느낌이었다.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게 없지만 또 나쁜 것도 없는 상태였다. 헤어질 이유는 없었지만 결혼이 맞는지는 애매했다. 내 인생이 90점 정도에 머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였던 것 같다. 오히려 상대방의 확신을 더 바라게 된 것이. 내가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상대방이라도 확신을 가져 주길 바랬다. 나만큼 초조하지 않은 것 같은 상대방이 괜히 미웠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것은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에 가까웠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정말이지 삽십 대 미혼 여성의 삶을 더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결혼을 못해..' 라는 생각에 진지하게 몰두하기 전에 그냥 결혼해버리고 싶었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고작 '미혼'인 것 때문에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가 은근 많다는 걸 몸소 겪고 있었다. 나보다 더 시장가치 높은 어린 여인들과 괜히 비교당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중요한 건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좋은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나는 분명 앞으로 내가 100점 이상의 연애를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애매한 수능점수를 받아든 고3 수험생의 고민 같았다.

① 타협하고 현재 점수에 맞춰 사느냐.

② 1년 더 참고 재수해서 더 높은 점수를 얻느냐.

정답은 없었다. 모든 것은 결과로 평가받을 것이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2번을 택했다. 첫 번째로 배우자를 찾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지금 내가 가진 'NOT BAD 옵션'을 포기하더라도 내 운을 믿어 보고자 했고, 두 번째로 어느 순간 '시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게 되면서였다. 결혼하지 못해 초조한 시간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들고 따뜻한 마음을 가꾸는 시간을 잠시 가져 보자고 생각했다. 마법처럼, 운좋게도, 그런 선택을 하자마자 나의 평생 인연이 다가왔다.


결혼할 사람이 누군지 어떻게 알까? 딱. 안다. 그냥 안다.

평생 인연인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오랫동안 다양한 연애를 하며 지냈음에도 진짜 나의 인연을 만나고서야 새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딱 안다'는 그 말은 전설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 더 잘 설명하고 싶은데 다른 말로는 표현이 쉽지 않다. 그것은 분명 사랑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사랑이 아주 깊어지거나 성숙해져야만 아는 것은 아니었다. 연애에는 콩깍지가 필요한데, 이전 연애에서는 '사랑 콩깍지'만 씌였었다면 이번에는 '사랑 콩깍지'와 '미래 콩깍지'가 동시에 씌인 느낌이었다. 함께 있으면 현재 행복한 것 만큼 자꾸만 더 행복할 것 같은 미래가 상상되었다. 우리는 봄에 만났는데, 마치 우리 사랑의 시작을 위해 이렇게 만물이 깨어나는 것 같았고, 또 반대로 우리의 이 사랑이 온 세상에 향기를 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주어도 아깝지 않았고 받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두려움이 사그라들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과 안정이 찾아왔다. 서로의 꿈을 함께 공유하고 그것을 현실로 일궈내기 위해 서로가 어떻게든 도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자리했다. 그것은 '나를 믿어달라'고 한 쪽에서 요구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일이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서로만을 향한 애정 교류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정말이지 신기했다. 이 사랑으로 인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세상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감정의 과잉이나 사랑의 숭배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에 가까웠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또렷하게 되는 것이었다.


(결혼시장에서의 가치와는 상관없는) 나의 삶의 가치 바로 알기

나는 상황상 1번(타협하고 현재 점수에 맞춰서 살기)을 충분히 택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자칭 연애 고수이자 타칭 연애 카운셀러인 나였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꼭 좋은 사람은 만나진다. 마음 편히 먹고 기다려 보라.'며, 초조해하는 지인들에게 수도 없이 조언했던 나 조차 내 시간만큼은 견디기 초조하여 타협했으리라 생각하니 우습다.


기다리면 더 나은 사람이 온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만약 30대 미혼의 삶이 정말 미치도록 견딜 수 없을만큼 초조하고 지겹다면 현재 내 곁의 사람이 차선이라 생각해도 타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그에게 100% 확신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긴 인생에서 갈등의 리스크가 더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나만 과도하게 초조해하지 않는다면 다른 기회는 분명 더 온다는 걸 믿었으면 한다. 시기가 주는 압박감에 눌리지 말고 시간과 함께 축적하고 있는 나의 멋짐에 집중하라 말하고 싶다. 결혼시장에서의 여성의 가치는 특정 시점 이후 지속 하락하는 것이 맞지만, 그것은 내가 만들고 있는 삶의 가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눈을 있는 대로 높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자기평가는 객관적으로.) 삶은 참 아이러니해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고 생각하는 그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항상 현실에 발을 붙이고 멋진 모습으로 걸어갑시다. 모퉁이를 돌았을때 어떤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니. Be always rea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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