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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Jan 31. 2021

5살 딸은 한창 효도 중입니다.

내가 잘 키워서 이렇게 예쁘게 크는 걸까?

요즘 내 베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소율이다. 얘랑 다니면 쉴 새 없이 쫑알대느라 전혀 심심하지 않은 장점이 있다. 또 내가 뭐를 조금만 잘 해도 '우와 대단한데? 잘하는데? 최고!'라며 계속 칭찬받을 수도 있고, 실수하더라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음부터 잘하면 돼.'라며 격려받을 수도 있다. 뭐 하나 같이 먹었을 때 제 입에 맛있으면 맛있다고 맛있다고 계속 좋아해서 나까지 자꾸 맛있게 먹게 만든다. 남편도 잘 안 찍어주는 내 사진을 하루에도 몇십 장이나 찍어주고, 공연도 같이 몰입해서 매우 잘 본다. 그 와중에 심쿵 발언들을 중간중간 하는데, 이를테면 어제는 "엄마, 나는 엄마가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어. 설겆이 할 때 막 방해하고 이럴래."라고 해서 제발 방해해 달라고 날 오도방정 떨게 만들었다. 평생 항상 자기와 같이 있자는 내 아이. 매일 함께 놀아도 매일 재미있는 내 친구. 아이들은 원래 다 이렇게 예쁜가, 소율이가 특히 예쁜가, 아니면 내 딸이라서 내 눈엔 다 예쁜가.


내가 잘 키워서 그런 걸까?


사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부모가 애를 잘 키웠네”라는 말처럼 뿌듯한 말이 없다. 그 순간 내 노력과 인생이 보상받는 느낌.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하는 진실은, 고작 세 돌 조금 넘은 아이라도 엄마의 훈계가 아닌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매 순간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아이가 보여주는 이 티 없는 예쁨, 조건 없는 사랑, 순수한 상상력에 대해 ‘내가 애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워서 그래. 내가 예쁜 말들을 잘 가르쳐서 그래’라고 맘 편히 해석해 버리긴 글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달까. 애써 겸손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까지 아이에게 예쁨받을 행동을 한 건 진짜 없다. 주 양육자로서 밥 차려주고, 어린이집 데려갔다 오고, 밤 되면 재워주는 일상을 반복했을 뿐. 오히려 '해라'보다는 '하지 말라'는 말을 훨씬 많이 하게 되고, 내 계획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욱하고야 마는지라, 소율이가 이런 나를 거울삼아 크고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부정적인 아이여야 할 것 같다. 모자란 엄마 밑에서 이렇게 예쁘게 자라서, 또 나를 이렇게나 커다랗게 사랑해 주는 것에 진정 신비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부모는 아이를 완성시키지도,
파괴시키지도 못한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가설]에 보면 '부모는 아이를 완성시키지도, 파괴시키지도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은 생각처럼 막대하지 않다는 것이 주제인 그 책은 흥미롭긴 했지만 어쩐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부모의 영향이 그렇게나 적다면 내가 뭐하러 이렇게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데?' 하는 반감이 들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소율이를 보며 나는 그 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무리 내가 낳고 키우는 자식이지만 소율이가 이렇게 예쁘게 말하고 착하게 생각하는 것이 온전히 내 공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만한 능력이 없다. 만약 반대로 아이가 나중에 크면서 고집을 피우고 못된 행동만 한다면 그것 또한 부모의 책임일까. 아닐 거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만한 능력이 없다. 내가 아이를 완성할 수 없는 것 처럼, 나는 아이를 파괴하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애초에 아이가 예쁘게 자라는 것은 신의 선물이자 자연의 당연한 섭리가 아닐까? 소율이가 남달리 천사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이 시기는 엄마가 원래 이렇게 황송하리만치 아이로부터 사랑받는 시기이지 않을까? '평생 효도는 다섯 살까지 다 한다’는 옛말이란 바로 그런 뜻인지도. 


아무튼 요즘 아이에게 하루에도 열번 스무번씩 고백받는 일상이 날 마음 가장 깊은곳에서부터 웃음짓게 한다. 엄마인지 친구인지 헷갈리는 둘만의 데이트가 너무나 꽁냥꽁냥 행복하다. 내 천사같은 5살 딸아, 좀만 더 오래도록 효도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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