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 많이 다른 첫째와 둘째 육아
우리 둘째딸을 생각하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귀여움이 마구마구 밀려온다. 두찌는 무지하게 귀엽다. 굳이 말하자면 첫찌보다도 더 귀엽다. 첫찌 볼이 가장 통통한 줄만 알았는데 여기 물이 한계까지 올라 금방이라도 톡 터질 것 같은 통통한 모찌 뽈따구가 있다. 첫찌 피부가 가장 매끄러운 줄 알았는데 여기 최고급 순면에 투명 유약을 도포한 느낌의, 가장 어린 아기만이 가진 보드라운 살결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우리 두찌 지율이를, 나는 생각보다 자주 안아주지 못하고 잘 바라봐주지 못하고 있다. 첫째를 키울 때는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루할 정도로 내내 보고 있었는데, 둘째는 그렇게 바라보는 존재라기보단 큰아이와 놀아주는 와중에 그냥 옆에 있는 존재이다. 쉴새 없이 말 걸고 질문하면서 나의 혼을 빼 놓는 소율이와 지지고 볶다가 가끔 지율이를 바라보면 아이는 내 눈을 쳐다보며 정말 행복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게 어찌나 고맙고 미안하던지. 자기 전에도 자꾸만 아른아른 그 웃는 얼굴이 생각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애초에 엄마를 독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여 그걸 서운해할 줄도 모르는 착한 아기. 자신을 가뭄에 콩 나듯 바라봐주는 엄마를 둔 둘째의 짠한 생존법칙이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니 당연히 힘들다. 육체노동량이 급증하고 타이밍 맞추기 난이도는 2배 아닌 4배가 되어서 하나일 때 보다 훨씬 정신없고 자유시간도 거의 없긴 한데, '그게 과연 지율이 때문에 힘든 것일까' 냉정히 자문해 보았을 때 왠지 그게 아닌 것 같은 요상한 상황. 큰아이 8개월 땐 아이가 귀여운 것과는 별개로 여기저기 기어다니는 거 잡으러 다니고 낯가림 때문에 자주 울어서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우리 지율이는 8개월이 되자 나에게 힘듦은 거의 없이 그저 귀여움만 주는 것이었다. 쳐다봐 주기만 해도 웃고(첫째랑 놀아주느라 잘 쳐다봐 주지 않아서), 칭얼대다가도 안아주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였고(역시 첫째랑 놀아주느라 평소에 거의 안아주질 않아서), 막무가내로 울어제낄 때에도 그것이 (첫째가 부리는 잔꾀 섞인 울음과는 다르게) 순수한 요구의 울음처럼 느껴져서 막막하거나 밉지가 않다. 오히려 정말 힘든 점은 두 아이들 사이를 쉼 없이 중재해야 한다는 점인데,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마치 첫째 때문에 힘든 것처럼 느껴진다.(암 암, 네가 뺏으려는 건 본능이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네 언니를 달래야 하는 게 힘들 뿐.) 어쨌든 아이 인원수에 관계없이 육아를 한다는 것 만으로 기본적으로 투입되는 육체적/정신적 노동량이 크다 보니, 둘째 하나만 봤을 땐 첫째 키울 때의 1/3 정도의 노력밖에 안 들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 모름지기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기대하기 마련인 것. 어쩌면 둘찌가 뭘 해도 더 귀여워 보이는 것은 엄마가 평소 둘찌에게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첫째를 둘째처럼 키워라
육아서적이나 강연에서 '첫째를 둘째처럼 키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예전에 나는 그 말이 사소한 것에 안달복달하지 말고 마치 한 번 해본 것처럼 여유롭게 육아하라는 뜻인 줄로만 알았다. 둘째를 키우면서 그 말의 뜻이 ‘아이에게 기대보다는 사랑만 주라'는 의미라는 걸 깨닫는다. 지율이는 9개월이 되도록 ‘엄마’나 ‘아빠’ 말을 못 하고 짝짜꿍 곤지곤지도 못 했다. 그렇지만 잡고 서서 걸어다니고, 가족들의 얼굴과 이름을 확실히 알고, 까꿍놀이와 잡기놀이, 거울놀이를 좋아했기에 나는 오직 그게 고맙고 대견했다. 첫째 키울 땐 그렇게 현재에 만족하는 게 잘 안 되었다. 소율이는 또래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발달이 빠른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늦는 발달요인이 있으면 그게 걱정되어 계속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마음이 조급했었다. 그래서 아이와 놀이할 때에도 아이가 현재 잘하는 것을 칭찬하고 강화시키며 놀기보단, 아직 못하는 걸 시키면서 격려하고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조금 빠른 발달은 무의미할 뿐더러, 심지어 발달이 느린 게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첫째는 매우 빨리 서고 걸었는데 결국 무릎에 무리가 가서 살짝 안짱다리가 되었고, 이가 빨리 나는 바람에 남들보다 더 신경써서 관리해주어야 했고, 기저귀도 일찍 떼어서 몇 개월 동안 매일 이불빨래를 하며 살았고, 지금도 말을 또래보다 훨씬 잘하는데 그래서 아직 어리디 어린 아이를 자꾸만 다 큰아이 취급 하게 된다. 정말이지 아직까지는 육아에서 남들보다 빨라서 좋았던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어차피 육아는 산을 넘으면 언제나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기에, 아이가 뭘 먼저 잘하게 된다고 해서 엄마가 편해지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거. 그래서 자연스레 둘째에게는 불필요한 기대가 적어지고, 그저 자꾸 사랑을 속삭이면서 얼굴만 바라봐주게 된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9개월에 그 흔한 개인기 하나 없던 지율이는 돌 무렵이 되자 엄마, 아빠, 짝짜꿍, 잼잼, 만세, 메롱, 안녕 등등을 하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재롱(이라 쓰고 '난동'이라 읽음)을 부린다. 행여나 느리다고 걱정했으면 무지 억울할 뻔 했다. 둘째는 정말 빨리 큰다. 첫째 키울 때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갔는데, 지금은 잠깐 설겆이하고 돌아서면 훅 자라 있다. 이 통통한 팔다리가, 순진무구한 눈빛이, 이미 많이 연해져서 얼마 안 남은 젖내마저 곧 사라질 걸 생각하니 안을 때마다 소중해 죽겠다. 첫째에게는 책도 많이 읽어주었었는데 지금은 아기 손과 발, 목, 귀, 머리에 코를 박고는 냄새 맡고 뽀뽀하느라 정신 없다. 어린 모습 그 자체가 너무나 귀하다. 우리 사랑스런 작은딸, 그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만 커 다오. 더 오래도록 아이답게 지내 다오.
*** 다만 남아있는 과제가 있는데, 아직도 첫째를 둘째처럼은 못 키우고 있다. 첫째는 첫째처럼 키우고 둘째를 둘째처럼 키우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