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라는데 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해서.
“왜 사람들이 아기를 안 낳는지 모르겠어.”
첫째 아이가 6개월 쯤 되었을 무렵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 출산율이 또 최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를 본 후였다. 물론 왜 안 낳는지는 잘 알고 있다. 일단 혼인율 자체가 낮아지고 있고, 결혼 후에도 일하는 여성이 많아지고 있으며, 그에 비해 직장 및 사회의 육아 인프라는 매우 더디게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아무리 가방끈이 길다 해도 아기를 키우는 경험만큼 인간에 대해 이만큼 생생하고 깊숙히 배울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높이 승진한다 해도 아이가 없었다면 이런 충만한 행복이 과연 내 마음속에 왔을까. 이것의 가치를 안다면 과연 이를 마다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경험하기 전까지는 절대 알지 못했으니까.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에서는 아무도 이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가정을 이루는 일은 인간이기 이전에 한 종의 개체로서 매우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부터 미래의 계획을 말할 때면 그런 주제들은 항상 빠져 있었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계획을 묻는 것 자체가 성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대학에 가도 취업을 해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었는데, 결혼을 했더니 그 이후부터 갑자기 ‘그래서 애는 언제?’라는 질문들이 여기저기서 쇄도했다. 인생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주제에 대해서, 갑자기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히 진행해야 하는 것처럼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 왔다. 나는 딱히 딩크족이 아니었음에도 거부감부터 들었다. “꼭 낳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생겨났다. 그것은 비단 반항심에서가 아니라,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꿈을 좇아 일하는 것과 육아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임신을 알았을 때 나의 기분은 앞으로의 인생이 없어지는 것 같은 무력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그럴 필요 없었던 일인데도. 오히려 크나큰 축복인데도.
왜 아무도 안 가르쳐 줬나요.
이렇게 행복할 거라는 걸.
집안일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면 월 300만원 이상이라는 기사를 보며 끄덕끄덕 공감할 때 조차, 나는 사실 우리의 어머니들이 대대로 살았던 삶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육수준이 낮아 아기를 낳는 줄 알았고 열정이 부족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그 모든 이유를 다 알겠다. 본인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냥 아이와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정말 중요하고 가치있고 행복한 일인 것이다. 시대가 변해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경제활동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면, 애초에 남녀 모두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해 가르치고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마치 청소년들에게 남사스럽다고 성교육을 하지 않아 왜곡된 이미지만 생기는 것처럼, 사전에 적절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 나는 은연중에 육아를 구시대의 산물로 여겼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심화되는 저출산 시대에서 아이로 인한 행복을 공감받기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맘카페는 맘카페대로 고립되고 조롱받는다. 서글픈 일이다.
아이를 둘 낳은 지금, 나는 하루빨리 다시 일하고 싶다. 새로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그것은 힘든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교육받은 여성이어서도 아니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의 삶에서 가장 커다란 사랑과 행복이 된 나의 꼬마들, 나의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화이팅을 외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