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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Jun 05. 2020

아이의 감정 2

앞으로 점점 더 알기 힘들어질 너의 속마음


뭘 해도 울고 싶은 그런 날이 있어.
그게 하필 오늘이구나...


지난 주 부터 어린이집 등원을 힘들어 했었던 소율이, 어제 아주 정점을 찍었더랬다. 하원하고 집에 오는 짧은 길에서 소율이는 총 여섯 번을 주저앉아 울었는데, 왜 울었냐면, 그냥 모든 것에 대해 울었다. 무조건 울고 싶은 날이 분명했다. 심지어 ‘엄마가 네 방을 예쁘게 꾸며놨다’고 하는 말에도 울었고, 소율이가 좋아하는 친구 이름을 대며 그 친구가 놀이터에 있는지 가보자는 말에도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 당장 자기 옆에 그 친구가 옆에 없다는 이유로.. 집까지 오는 데 거진 두 시간이 걸렸고 마지막에는 결국 현관에서 애를 질질 끌고 들어와야만 했다. 집에 와서도 끝난 게 아니라 또 한 시간 넘게 울었는데, 신발을 안 벗겠다고 울었고(벗으라고 한 적도 없는데) 머리를 안 풀겠다고 울었다.(풀라고 한 적 역시 없는데.) 언니가 집이 떠나가라 울자 잠에서 깬 지율이도 울음을 터뜨렸고 안고 달래 주자 좀 그친 듯 울먹울먹하다가 다시 으앙 울다가를 반복했다. 생지옥이 따로없었다. 그 시간의 90%는 알아서 스스로 그치기를 기다렸고, 10%는 어르고 달래고 갖가지 방법으로 꼬셨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결국 7시가 넘어 강제로 목욕을 시키고 나왔더니 그제서야 약간 전환이 되고 힘이 빠지면서 좀 누그러졌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다음부턴 안 그러겠다며 먼저 사과까지 한 후 도란도란 책도 잘 보고 침대에 누워 3분만에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난 오늘은 내내 천사 모드였다. 오전에 어린이집에서는 거의 3주만에 쿨하게 바이바이 하면서 헤어졌고, 긴장했던 하원길에서는 더욱더 행복하게 집에 왔다. 매번 빵 사달라고 실랑이 한번씩 하는데 그것조차 없었다. 오늘은 사줄 의향이 있었음에도. 집에 와서 나는 소율이 오늘 너무 잘했다고 최고였다고 말해주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싱크대 장난감 세트를 선물로 줬는데 뜯지마자 엄마 고마워요를 연발하며 설겆이와 과일씻기와 수돗물 차 타주기 놀이에 무아지경이 되어 놀았다. 동생도 내내 예뻐해 주면서 돼지저금통에 동전 넣기 놀이도 시켜 줬다.


‘엄만 아무것도 모르면서.’
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라도


네 살 아이의 속은 뭐가 그리 복잡하길래, 그 속상한 마음 말로 표현도 못 하고 다른 이유로만 투정을 부렸을까. 동생이 생겨서 그런가, 어린이집 반이 바뀌어서 그런가, 어디가 아픈가, 낮잠이 부족한가... 여러 가지 추측을 해 보지만 정확한 이유는 오직 소율이만 알고 있다. 내 아이에 대해서만은 내가 다 안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요즈음 서서히 이 아이만의 속내가 생긴다. 궁금하고, 신기하고, 한편으론 대견하고, 왠지 서운하기도 하다. 어제 소율이와 힘든 감정싸움을 하면서 나는 문득 앞으로 우리 사이가 예전같지 않게 되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천사 소율이를 만나고 나자 다시금 깨달았다. 앞으로 아이가 나에게 혹은 다른 무언가에게 화가 나거나 힘이 들 때, 항상 이렇게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속상해도 엄마 연락 안 받는 일, 집을 박차고 나가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나의 소율이에게는 점점 내가 모르는 영역이 커져서 급기야는 “엄만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말하는 순간마저 오겠지만, 살면서 힘든 일 화나는 일 속상한 일이 가득해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문득 한 가닥 실낱같은 따스함이 있어서 그걸 따라 가 보았을 때 그 끝에는 언제나 그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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