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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온 Apr 27. 2016

당신이 이 글을 꼭 봤으면 좋겠다.

파란만장 첫 자취의 역사

 "지금 올해의 첫 눈꽃을 바라보며~♪"

 미친. 저 새끼, 또 시작이다.




 첫 자취를 결심한 나는, 성공적인 홀로서기를 위해 혼자 살기에 안성맞춤인 집을 이리저리 발품 팔아 구했다. 그리고 나의 깐깐한 기준을 통과한 한 자취방에 안착했다. 자취용품을 알아보며 하루 종일 들떴고, '친구들을 데려와서 술만 퍼 마셔야지!'는 나만의 자취방 로망을 망상하고. 어쨌건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행복했다. 물론, 그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안타깝게도, 내 첫 자취방은 고시원급의 방음을 갖고 있는 곳이었다. 벽돌 한 개 사이로 나눠놓은 방의 천장은 두드리면 '터엉' 소리가 나는 붕 뜬 판자가 덮고 있었다. 억지춘향으로 나는 옆집과의 생활 소음을 공유해야만 했다. 친구들을 데려와야겠단 생각이 쏙 들어갈 정도로 방음 문제는 심각했다. 드라이어기 소리, 발자국 소리, 심지어는 화장실 소리까지 서슴없이 들리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도 그 정도의 소음은 갖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문제는 옆집이 집돌이인 동시에 친구를 자주 들이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던 것. 심지어 매주 주말마다 여자 친구를 데려오는데, 그 날만큼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거금을 들여서라도 용인으로 도망갈 정도였다. 새벽 다섯 시까지 다른 짓 안 하고 그저 잘 떠드는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컴플레인을 안 걸진 않았다. 집주인 아저씨에게 미안할 정도로 시끄러울 때마다 전화를 했다. 옆집 좀 조용히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착한 집주인 아저씨는 그 새벽에 내 방에 와서 얼마나 시끄러운지 가늠해보시곤, 옆집에게 나의 불편함을 알리기 위해 너덧번은 찾아간 것 같다. 그것으로 나아졌으면 나는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3월은 4학기 내내 붙어 다녔던 전 남자 친구의 부재로 철저하게 외로웠던 달이었다. 텅 비어 공허한 눈에 뭐라도 채우려 일, 술, 사람으로 하루를 보냈다. 덕분에 스트레스는 극악을 달렸다. 처음 시작했던 학원 아르바이트는 말 그대로 '선생님'이 되어서 언제 배웠는지도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수학을 가르쳐야 했다. 주변에서 다들 '꿀'이라고 했지만, 생각 외로 쉽지 않은 아르바이트였다. 학원 가기 전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구상해놔야 하고, 시험 점수를 파일화 시켜야 하고, 대학생 선생을 탐탁지 않아하는 학부모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 2주 차 되던 날, 초등학교 특유의 극성 학부모들이 학원엘 찾아와 나보고 '그 선생 곱셈 하나 못하느냐'라고 폭언하며 학원을 뒤집어 놨다는 걸 원장을 통해 듣게 되었다. 아이의 계산 실수로 틀린 몇 개의 문제를 맞았다고 채점했다는 이유였다. 훈계 투의 폭언을 원장과 부원장에게 듣고 난 후 이틀 밤을 설쳤고, 나는 나와 맞지 않으니 그만두겠다고 했다. 원장은 '경험이 될 거라'라고 날 회유했고, 여전히 나는 '그냥 그때 그만둘걸' 후회하고 있다. 그때쯤부터였나 뭘 먹어도 윗배가 쓰렸고, 자주 헛구역질을 했다. 덕분에 옅은 역류성 식도염과 가벼운 위염을 앓았다.


 아르바이트의 사정이 이러니 멘탈은 몸 생각도 않은 채 사정없이 알콜을 재촉했다. 3월 초 새내기들과의 왁자한 술자리가 반가웠고 그 이후에는 휴학생 친구와의 술 약속으로 스케줄러는 빠듯했다. 그 때 금요일 밤도 그랬다. 옆집남자의 여자친구가 오는 날이라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데, 소문난 알콜쓰레기인 나는 그 날도 앞 사람은 생각 안 한 채 혼자 달리다가 재미없게 죽어버렸다. 12시 즈음에 자취방에 도착해 침대 위로 뻗어서 알콜 낀 숨을 연신 내뱉었다. 그냥 자려는데 옆집이 뭘 하고 있는지 소란스럽다. '새벽 한시인데, 안 자나.' 특별히 산 귀마개를 끼고 자는데 더 어지러웠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귀마개를 뚫고 들려오는 여자 콧소리가 나를 깨웠다. 겨우 붙인 눈을 떠서 보니 새벽 세시 반을 지나는 시간. 미친 놈들이 장난을 치고 있는지 어쩌는지. '이 시간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야.' 부스스하게 일어나서 어슴푸레한 허공을 멍하니 쳐다봤다. 새벽 정적을 찢는 소리에 어지러워져 구토가 올라왔다. 빈 속에 헛구역질만 하니 위액이 목을 긁었다. 마지막 가래를 뱉고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회색 후드를 입고 지퍼를 한껏 올렸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라 현관문 앞에 서서 많은 고민을 했다. 다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온 덕분에 문을 열었다. 옆집으로 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하면 똑부러지고 정확하게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 똑똑똑.

 자기네들끼리 주구장창 떠드느라 못 듣나보다. 다시 한 번 힘껏 두들겼다.


 - 똑똑똑똑.

 ...... 누구세요!

 저기요.



 드디어 옆집 남자가 문을 열었다. 면상이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마주한 얼굴은 너무 낯이 익었다. 내심 나를 알아주길 바랐는데, 다만 그 사람은 내 상태가 '매우 생얼'이라 몰라보는 눈치였다. 전 남자친구의 선배였고 오며가며 몇 번 만난 사람이었다.



 저기요, 옆집인데요. 죄송한데 너무 시끄러워요. 진짜 다 들려요. 정말 너무 시끄러워요. 제발.



 어떻게 똑 부러지게는 무슨. 아는 사람을 만나 놀랐던 탓에 횡설수설 얼마나 시끄러운지만 피력했다. 그 사람은 당황한 표정으로 미안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알겠습니다' 딱 다섯 글자만 했다. 다행히 그 날 만큼은 조용했다. 근데 그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없는 날엔 동성 친구를 데려오고, 동성친구가 없는 날엔 여자친구와 한 시간 넘는 통화를 새벽 내내 했다. 참다 참다가 빌라 맨 꼭대기층에 살고 계신 집주인 아저씨를 다시 불렀다. 집주인 아저씨가 내려오는 소리에 맞춰서 옆집 남자가 나왔다. 자신들에게 뭐라고 할 지 단박에 알아차린 듯 했다. 옆집남자와 아저씨는 복도에서 실랑이를 했다. 대강 들어보니, 옆집 남자는 '저 여자가 예민한 것 같다. 난 조용히 말했고 조용히 행동했다.'고 자신의 무고를 열심히 피력하고 있었다. 내가 예민떤 게 나름 스트레스이긴 했나보다며 나는 바보같이 미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미안해졌으면 안 됐다.


 나는 편지지 한 장을 꺼내 힘을 주어 한 장을 꽉 채워 완성했다. 요약하자면 방음이 잘 안되는 건물인 것 같다, 나는 당신의 소음 때문에 많이 힘들다, 저녁 10시 이후엔 조용히 하자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허전한 것 같아서 추신도 적었다. '개강 화이팅하시라고 달달한 거 넣어놨어요! ^^'고. 문고리에 칙촉과 초콜릿, 편지지를 걸어뒀다. 그 이후엔 잠잠했다. 딱 3일이었다.


 언제 조용했냐는 듯 그 사람은 친구를 데려왔다. 이젠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너도 친구 데려오냐, 나도 데려올게! 너도 음악 크게 틀어놓고 듣냐, 나도 그럴게! 너도 여자친구 데려오냐, 나도……. 와 같은 마인드로 한 달을 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생활패턴과 정말 맞지 않아서 그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나는 카톡을 받게 된다.


 - 안녕, 나 기억나니? 철수선배야.

 - 너 혹시 A빌 살아?


 내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인 옆집 남자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카톡 친구였다.


 -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네, 저 A빌 살아요. 무슨 일이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답신을 보냈는데 연락이 없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 이제서야 내가 A빌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내 우편함을 확인해 당시 훈련병인 전남자친구로부터 온 편지를 통해 보았다는 것 아닌가? 자신이 원하는 대답만 듣고 쏙 빠지는 그 사람의 태도에 한번 더 실망했다. 사람의 인성이라는 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 후 후배의 여자친구가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사람은 여전했다. 새벽 두 시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사람은 여자친구와 통화 중이다.




 그랬던 나는 오늘부로 지옥같은 곳에서 이별한다. 그래서 이렇게 회고한다. 차곡차곡 갠 옷을 박스에다가 담으며 문득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근 두달을 버텼던 날 토닥토닥 해 주려고 말이다.

 내 이름으로 1년 계약 월세를 계약했지만, 아는 언니에게 남은 기간 양도를 주기로 했다. 언니에게 옆집이 시끄러워서 나가는 거라고 말 했더니 괜찮다고, 자기가 더 시끄럽다고 걱정 말란다. 충분히 그럴 것 같은 사람이라서 마음이 놓인다. 나는 고시원엘 들어가려한다. 방음이 더 안되겠지만 여자끼리 사는 곳이고 나름 '사감'도 있으니 관리는 잘 되겠지. 집 주인 부부에게 양도 소식을 알렸더니 매우 미안해 하셨다. 내가 나가야하는 게 아니라 옆집이 나가야 하는 거니까 미안해 하셔야하는 것은 맞는데 되려 내가 더 죄송했다. 많이 귀찮게 해드린 것 같아서. 끝까지 좋은 분들이셨다. 싫은 말 잘 못해서 그렇지.


 집주인 아저씨는 옆집 남자에게 최후 통첩을 하셨다고 했다. 나 말고 그 남자의 다른 옆집에서도 컴플레인이 들어왔고, 나도 나간다고 하니까 심각성을 더욱 느끼셨나보다. 한번만 더 그 소리가 들리면 내 쫓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으셨는데, 그 남자는 안 그래도 여자친구랑 깨졌다고 했단다. 벚꽃나무 아래 여자친구와의 다정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지우고 말 하던가. 끝까지 참 가소로운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꼭 이 글을 봤으면 좋겠다.

 잘못을 깨닫고 평생 이불킥했으면 좋겠다.

 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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