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 주의
내가 작업실(지금은 집이 되었지만)을 고른 몇 가지 거부할 수 없는 매력들이 있다. 첫 번째로 집과 지하철 두 정거장으로 매우 가깝다. 두 번째로 방음이 잘 된다. 세 번째로 서울에서 가장 싼 월세 일 것을 의심치 않는다.(서울 지상 최저 월세)
이런 이유들로 작업실 겸 첫 자취방에 나름대로 애정을 가진 편이다. 집 치고는 너무 좁고 작업실 치고는 적당히 긴장감이 있는 공간이라서(작업실이 너무 크면 괜히 딴짓을 하게 된다.) 목적성 자체로는 문제 되는 게 없다. 지금은 거의 집이 되었지만 원래의 목적은 작업실이니.(작업을 안 하는 것만 문제) 물론 내 역량에 비해 주방이 너무 작은 점, 공간이 좁은 만큼 꼬박꼬박 정리정돈을 해줘야 하는 점 같은 원대한 프라블럼도 있지만 정신력 단련으로 잘 진행시키고 있다. 1구 버너와 토스터오븐으로 라자냐, 뇨끼, 카레, 잡채, 김밥 등 웬만한 것은 기인의 자세로 해내고 있고, 아침마다 침구와 러그에 살균제를 뿌리고, 방바닥을 꼼꼼히 닦고(인생은 머리카락과의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화장실 청소도 매일매일 하고 있다. 작은집에 살면서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아담한 분위기로 꾸며주는 게 중요하다. 매일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정이 떨어진다.(이건 좀 맥락이 다른 이야기 이긴 하지만, 언젠가 내가 조금만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정신 차리고 수준에 맞게 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런 폭언을 들을 이후 이상한 오기 같은 게 생겨서 도리어 이 집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튼 여기서 2년간 지내며 그야말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모기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는 벌레청정구역이라는 점이다. 바Q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가 보이면 몇 날 며칠 잠을 설치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이 환청인지 아닌지 몰라도 그의 다리들이 움직이는 소리, 걸음 소리가 들리는 경지에 이른 인간이다.(세상에 이런 일이 제보 가능) 본가 뒤뜰에는 바로 산이 이어져있어서 지금 같은 초가을철에 산에 사는 대마왕 바Q가 한 번씩 가정집을 방문한다. 그리곤 이런저런 살육장치에 다수의 생명이 희생되고는 그 해 다시는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져왔다. 그래도 나는 10년간 본가에 살면서 그 시즌을 도통 적응하지 못했다.
2년간 작업실에 거의 지내다시피 하면서 신기하리만치 벌레가 없는 것이 매우 흡족했었다. 응당 벌레는 숲에 살고 사람은 콘크리트에 살고. 이래야지.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바로 어젯밤, 들은 것이다. 그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닐 거야. 아니야 나 너무 예민해서 그래 갑자기 너무 피곤한 거 같아. 그런데 두려움과 호기심은 나를 가만히 누워있게 두지 아니하였다. 나는 아이폰 플래시를 켜고 냉장고, 세탁기, 싱크대, 기타, 기타 케이스, 쓰레기통 밑, 뒤, 옆을 비춰보기 시작했다. 심장은 정상 BPM이 60 정도라치면 한 980 정도로 뛰었다. 아무도 없었다. 안심하고 샤워를 마치고 얼굴에 무언가 촵촵 바르고 이부자리에 누우려는 순간, 나는 보았다. 세탁기 밑에 드러난 그의 더듬이를. 내 귀는 정확했어. 하지만 그에게 나오라고 해서 나올 것인가? 그렇다고 초고속으로 더듬이를 잡아 뺄 수도 없을 것 아닌가. 나는 숨을 가다듬고 휴지뭉치를 준비하여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5분째 더듬이만 나와있었다. 10분이 지날 즘 나는 참지 못하고 과감하게 종이 따위를 넣어 그의 엉덩이를 툭치면 세탁기 밖으로 튀어나올 것이고 바로 그때 후려쳐서 고통 없이 빠르게 저세상으로 보내줄 계획을 세웠다. 종이를 가져왔다. 그런데, 더듬이가 사라졌다. 나는 정말 울 거 같았다. 지금 쌓여있는 울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바빠죽겠는데 그 모든 순서를 다 재치고 1등이 되었다. 어딜 간 거야 도대체!!!! 결국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세탁기 밑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눈치채고 말았다. 이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는 것을. 그는 어디에 붙어있는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눈치챔을 눈치채고 단념한 채 세탁기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모든 공간을 각종 집기로 하염없이 막아보았다.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쿠팡에서 효과 좋다는 약을 제트배송으로 1만 3천 원어치 주문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오가는 긴장감 넘치는 밤을, 그와 함께 보내었… 다.
약이 도착하면 새 집 도배하는 심정으로 방역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참에 대청소도 하고 좋지 뭐, 고맙다 고마워.
*이 글을 쓰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가 처연하게 뒤집어진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웃 중 누군가 약을 쳤나보다. 나는 그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주었고 혹시 몰라 집 밖으로 나가 저 먼 곳에 그를 두고돌아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