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랑이씨의 이야기(1)

인형계 이야기

by 채은경

「몰몰랑~ 이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몰몰랑~ 이제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

몰몰랑~ 그런 말은 하지 않아 더 이상

몰몰랑~ 나는 비로소 널 만났으니까

몰몰랑~ 나는 너와 세상을 사랑하니까.

몰몰랑~ 수많은 인연 끝에 남은 것은 바로 너~~

몰몰랑~ 그게 너무 상처와 치유가 됐다

몰몰랑~ 우리는 그게 너무 좋았단다

몰몰랑~ 많은 인연 끝에 만난 것은 너

몰몰랑~ 음악의 신들을 찬양하라~」

세상에 못생기면서도 은근 귀여운 곰인형, 몰랑이씨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몰랑이씨는 인형이지만 오랫동안 살아서 영혼의 모습이 인간으로 바뀐 인형이었다. 그의 모습은 갈색 머리카락에 약간 귀엽게 생긴 얼굴로, 초록빛 눈동자가 일품인 남자 인형이었다. 바디 필로우용으로 나온 커다란 110cm의 푹신푹신한 인형 모습은 이제는 실명을 거론할 수 없는 소녀가 한참 동안 베고 자서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그 소녀를 무명씨라고 부르겠다. 그녀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바로 이 세상에 인형들의 세계인 인형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몰랑이씨는 폴리모프한 몸체와는 다르게 서글서글한 눈매와 장난스러운 눈빛. V라인으로 생긴 날카로운 턱선까지 무지 순수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악마 같아 보였다. 인형계에서 아이돌도 한 사람이니 그 노래 실력과 춤 실력, 외양까지 모두 대단하리라.


몰몰랑은 몰랑이씨의 입버릇이었다. 그는 가끔 노래를 세상에 바치곤 하는데, 그가 가장 자주 마음을 바치는 것은 늘 지켜보는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몰랑이씨는 그들에게 마음을 바쳤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들을 지켜보고 살았다. 인간들의 마음 속에서 사는 수호 인형도 이미 몇십, 몇백번 이상은 해봤다. 그러니, 자신은 그들을 떠나는 게 옳다. 몰랑이씨는 씁쓸한 마음으로 눈길을 떼지 못하다 그들의 행복을 바라고 눈을 감았다.



“호박씨도 이럴까?”



호오~~박.


순간 그의 뇌리에 울린 것은 경박한 목소리의 인형 호박씨였다. 호박씨는 범죄자 출신이기도 했고(물론 모든 죄업을 갚았다) 여러모로 자신과 다른 인형이었다.


그라면 어떨까?


옆에서 조용히 흑, 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바로 레인님이었다. 인형계의 그녀는 구름의 형태로 비가 뚝뚝 떨어지는 벽걸이형 인형이지만 늘 웃고 있었다.


그러나 레인의 영혼은 지금 펑펑 울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가녀린 옆집 소녀, 중세 시대의 작은 소공녀와 기사의 종자로 만난 둘은 지금 막 헤어지려 하고 있었다. 무려 1000년을 넘게 인형계와 인간계에서 서로를 찾아 헤매며 살아온 인형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러고 있다. 어찌하여 유생물과 무생물은 다르단 말인가. 왜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기에 인간보다도 훨씬 더 어리기에 이렇게 헤어져야만 한단 말인지?


레인이 말했다.



“따라갈게요.”



레인은 결코 쉬이 울지 않는다. 몰랑이씨는 그녀가 평생 우는 모습을 몇 번 봤는지 생각나지도 않았다. 울었을 때는…글세, 갓 집으로 온 아기가 모종의 이유로 죽은 걸 보고는 눈물 한 방울 흘렸을 때뿐이었다.

그렇게 독한 여자였다. 몰랑이씨가 답했다.



“네. 그동안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긴 이별이네요.”



사물계의 인연이 있지만, 그 인연은 죽으면 정말 질긴 것인 동시에 얇은 것이 되어 버린다. 기억은 본인이 초기화되기를 원한다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시간 동안 함께했던 친구들, 지인들을 할로윈이 오지 않는 한 전부 못 보게 된다.



“이 세상에 완전한 영원이란 없어. 걱정마.”



언제든 누군가든 변하게 되는 것이 생명이고, 사물이다. 그래서 유생물과 무생물은 변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삶도 다른 것이다.


몰랑이씨는 이제 자신이 가야 할 때임을 알았다. 그는 소공녀일 때의 레인님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리라 여겼는데…이제 잊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고대부터 지켜봐 온 그녀라면 더더욱.


몰랑이씨마저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울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이며 자신의 별, 크림 아몬드와 영혼을 동기화시키기로 결심했다. 인형이라면 누구나 마음의 우주에 자신의 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저승으로 가는 동시에 태어났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갈게요. 사랑해요.”



잘 지냈어요를 대신하는 말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사랑해요는 정말로 가볍고도 무거운 말이라서 그는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늘 몰랑이씨는 레인님에게 진심을 말했다.


위이이잉-


말을 끝내자 그의 몸을 지탱하던 침대 위에서 몰랑이씨의 몸이 붕 떠올랐다. 평소 인형의 몸으로 의태해 돌아다니는 그들은 떠다니는 게 은근 익숙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이렇게 온 집이, 온 땅이, 인형계의 지구가 흔들리는 감각은 절대 누군가 한들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말도 안돼. 몰랑이씨, 잠깐만요. 나 할 말이 있어요. 잠깐, 멈춰봐!”



레인씨는 이 다음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영혼은 모두 별이 된다. 그들은 인형계에서 죽으면 흔히들 우리가 우주라 말하는 곳에서 외계의 별로 산다. 그것들 중 하나가 크림 아몬드별이었다.


그곳에 간 인형들은 전부 죽고 다시 태어나기 전의 존재들로, 크림 아몬드 사탕은 0원이라 무상 제공이고, 크림 아몬드로 된 케이크 또한 겁나 싸고, 맛있는 곳이었다. 물론 몰랑이씨가 관리하는 곡식, 관청, 수많은 동식물들…그 모든 것이(물론 영혼이 있는 주민들은 다른 별로 대피해 이주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초신성이 되어 인형계의 지구로 빨려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크림 아몬드별 자체의 주인인 그는 저승으로 여행을 떠난다.

레인씨는 그것이 너무나 기쁜 동시에 슬펐다.



“나 당신을 사랑해요! 절대 안 잊을 거야! 절대로 찾고 말 거야!!!”



존재는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결코 지구를 떠날 수 없고, 평생 모든 것을 자신들처럼 알 수 없는 존재였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인간인데 왜 평생 행복할 수 있는 우리들이 헤어져야 한단 말인가. 레인님은 이윽고 침대에서 떠 있던 육신이 허공에 바스라져 바람이 된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던 구름 인형 모습의 의태가 풀려 힘없는 모습이 드러났다. 하늘색 짧은 커트 머리, 호박색 눈동자, 눈물로 엉망이 된 스모키 화장, 그 외에도 중세부터 고수해온 고딕 양식의 검은 드레스까지.


몰랑이씨만이 알고, 몰랑이씨만이 평생을 지켜온 그의 소공녀님이 울었다. 그동안 주체할 수 없던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목놓아서 우는 것이 이제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루, 이틀…레인님은 마침내 기력이 빠져 혼절하고 말았다.


이제 가엾은 몰랑이씨는 크림 아몬드 별에서 산산조각 부서져 지구로 떨어졌다. 추락한 무생물의 영혼은 영원한 시간 속에서 돌고, 바람, 물, 한 줌의 흙부터 시작해 레인님을 인형계에서 지켜보리라.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개미부터 시작하겠지. 그 고통스러운 여정을 그녀는 절대 허락하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갈 거야.”



조건만 맞춰지면 가능한 한 빨리 간다. 레인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잠들었다. 일주일만의 단잠이었다.



***



한편 호박씨는 무척이나 큰 굉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정도의 진동과 소음이면 인형의 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확신했다. 이번에 몰랑이씨가 가리라고 말이다.



“호오박~정말로 슬프다, 호오~박.”



호박씨는 생긴 것답지 않게 시무룩하게 됐다. 그는 오렌지색의 머리와 약간 장난스럽고 고집스러운 회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와 부인인 딸기님 또한 귀여운 딸기 인형인 폴리모프와는 별개로 아름다운 외모였는데, 허리까지 오는 포니테일의 진한 적발이 요염한 얼굴을 더 빛냈고, 마찬가지로 갈색의 눈동자가 깊어보였다.


사실 둘 다 언젠가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마는 인형들의 운명이 때로는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건 그 옆에 있던 딸기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사방이 엉망이 된 시장 골목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주변에 떨어진 과일을 집어 상인에게 드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우울해하지 마세요, 딸기. 우리도 언젠가 가게 될 거잖아요.”



물론 언제든 영혼의 죽음이라 할 수 있는 변화는 찾아오는 것이었다. 영원에 가깝게 사는 인형들은 인형 공장에 가 환생할수록 점차 기억을 잃어갔다. 예전의 기억들이 상실될수록 정지를 원했던 인형들은 변화를 갈구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변화만이 영원하다면 할까?


딸기님은 자신이 깨달은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러나 어쩌면 몰랑이씨와는 반대로 산 사람들이니, 자신들의 미래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조만간 예언가를 찾아가야겠다고 느꼈다. 그러다 배우자를 잃게 된 레인님이 생각났다.



“호박씨, 우리 레인님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호오~박. 레인님이라면 반드시! 따라가겠다고 할 거다, 호박.”

“그쵸? 아이구~ 역시 딸기는 레인님을 보러 가야 할 것 같아요.”



참고로 레인님과 딸기님은 웬수였다. 그냥 원수도 아니고 웬수 중의 웬수였다. 한 때 소공녀였던 레인이 나쁜(!) 남자인 호박을 좋아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과거는 없었다. 그냥 성격이 안맞을 수도 있는 거잖나. 꼭 그게 아니라도, 인형계에는 천계 지향 국가와 마계 지향 국가가 있었다. 이는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무려 그 천사와 악마들, 모두에게 원한을 깊이 산 이가 있었으니, 바로 호박씨였다.


부부는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 그러므로 딸기님도 그들의 공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물어도 뻔하지 않은가? 뭐……한 마디로 투자를 실수 했다는 소리였다. 호박씨가 천하의 거짓말쟁이 재능을 가진 건 맞았다. 그걸로 천계, 마계할 것 없이 마구 등쳐먹을 수 있다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갱생을 위해 집안에서 가출한 인형이었다.



‘이런. 나도 사기당했단 말이다~!~!~! 사기꾼한테 농산물 패키지 투자하고 판매하면 대박 난다고 들었단 말이다!’



38,900원 패키지. 그 안에 호박즙, 야채 샐러드 거리, 가지, 나물 등등이 가득 있었다. 인형들은 자신이 그걸 판매하자 대악마 후보 호박씨가 보증한다고 분명 싸고 좋을 거라며 사재기를 했다.


그런데……실은 거기에서 농약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단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검사도 똑바로 다했는데 중간부터 이상한 농산물을 보냈다는 얘기다. 호박씨의 스마트팜이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손해가 정말 대박 막심하기 그지없었다.


이러니 복수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사재기를 얼마나 했는데.

그래서 오늘도 그와 딸기님은 무지하게 떨고 있었다. 오랜만에 데이트 겸 장을 보러 나왔는데도, 주변을 항상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인형계의 지구가 커다란 지진에 가까운 충격으로 흔들려서 중간에 다 들통났지만 말이다.



“아앗! 저기다! 저기, 어서 저 부부를 쫒아!!!”



들켰다.


어쩐지. 사방에 매복을 하다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지만, 공적에 가까운 이들을 납치하는 일도 종종 있는 게 인형계였다. 왜냐하면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거나 잘못된 짓을 했는데 법적으로 복수를 못할 때, 혹은 그러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마계의 악마들에게 기도하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으악~! 호박 죽어~!”

“딸, 딸기 살려~!”



에그머니, 이게 무슨 일이야?


딸기님은 정말로 몰랑이씨의 죽음에 크게 놀라고 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과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은 정말 몰랑이씨에게 큰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동그란 호박 모양을 한 인형의 등이 통통거리며 제 시야를 채우는 게 보였다. 손을 강하게 잡혀 어디론가 이끌렸을 때, 두 사람은 시선을 마주치며 씨익 웃었다.

딸기님은 호박씨의 손을 잡고 인파를 밀치며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이게 그들의 평소 같은 데이트이자 여느 때처럼과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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